수산궁에서
페이지 정보
본문
느헤미야서의 첫장 첫구절은 짧고도 의미가 깁니다.
느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다스다 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
소위 족보를 말하고 있는데 느헤미야 자신뿐만이 아니라 아닥다스다 왕은 에스더서의 아하수
에르 왕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낯설지 않은 수산궁도 등장합니다.
이 아닥다스다 왕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적이었던 부림절에 대해 듣거나 보았을 것입니다.
자연 하나님 지식과 믿음도 있어 이스라엘민족과 느헤미야에 대한 친절도 여기서 출발했다고
여겨집니다.
느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무슨 의미인가요?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호의가 앞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동생 하나니가 전해준 말에 충격과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느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무엇에 관심을 갖느냐 어떤 말에 얼마큼의 반응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웅변합니다.
요즘은 골프와 부동산과 주식과 인공지능로봇과 정치와 전쟁이 관심 사안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마음을 들이며 시간과 돈을 사용하고 심지어 자랑도 합니다.
이유는 시대의 얼굴이고 때론 재미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경외한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고국에 남겨진 자기 민족들의 곤란과 망가지고 불타버린 예루살렘소식에 아예 자리 잡고 울었습니다.
수산궁이 어떤 곳인가요? 왕이 머무는 곳입니다.
우리의 청와대처럼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여 국정으로 분주하게 돌아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근무하는,, 자국민이 아닌,, 포로민의 느헤미야가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은
여간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닌,, 아,,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 분명했습니다.
그의 애통하는 기도에는 회개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은 기도여야 합니다.
특히 주의 일에서는 가슴을 치며 출발하여야 기쁨으로 단을 메고 돌아오는 때가 있게 됩니다.
느1:6) 이제 주의 종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
여,,
문제는 이 기도가,, 이런 애통의 기도가 내가 한다고 해서 되질 않습니다.
훈련되고 생활되어야 한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애당초 그런 성향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렇듯 느헤미야는 종교적인,, 만드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에 수일동안,, 얼굴에 수색이
있을 만큼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서에서 이런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현대에는 구상만 있습니다.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물 닦으며 기도했던 일 보다 컴퓨터 앞에서 검색하고 계획서 짜고,, 보고서 만드는 일로 만사 가능하리라 믿는다
면 큰 착각입니다.
최근 어느 과학자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방송에서 인공지능로봇이 곧 터질 것이고 엔비디아 주식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던 장본인이었는데, 자신은 엔비디
아주식을 단 한 주도 사질 않았답니다.
진행자가 그 이유를 물으니 “ 나 같은 학자들은 이론만 붙들 줄 알지 행동할 줄 모르는 탓이라”며 웃었기에,, 나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사람은 세상 속에서 돈타령과 사람타령을 한다지만 하나님은 사람 찾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은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그 하나님의 눈물을 닦아드리려 자기 손수건을 꺼내는 사람
인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는 수산궁에서 정치를,, 경제를,, 국방을 생각했고,, 더러는 돈 벌고 호의호식할 정보에 눈 크게 뜨고 귀 기울였
겠지만 느헤미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는 파샤국민이 아닌 이스라엘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비록 땅에 살아도 하늘 소식에 웃고, 우는 등의 하늘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신기하게 느헤미야는 이 기도하는 때에 왕을 대면할 수 있는 술 맡은 관원으로 임명됩니다.
느1:11) ~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요약을 한다면,
1) 사람의 종류도 여러 가지라는 사실입니다.
큰 집에 금그릇과 질그릇이 있듯이 하나님께는 만물이 속했고 만인이 속한 줄 믿어야 합니다.
잠22: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이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나요?
생긴 대로 살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되기 힘쓰지 말고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하며, 하나님나라 확장에 마음을 두고 힘써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잠21: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 보다 여호와를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특별히 사람에 대한 사랑은 곧 하나님께 행하는 일이라 믿어야 합니다.
곧 약한 자, 작은 자,,, 어린아이에게 행하는 일이 주님께 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권존중이 없이 특히 사람을 밟고, 푸대접하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3) 기도는 특별한 비결이라는 믿음입니다.
모든 종교, 모든 신앙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기도는 특별한 보장이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기도는 목적부터 배워야 가능합니다.
내 부족과 결핍을 채우는데서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영광과 나라를 우선 구하기 때문입니다.
로또복권을 구입하는데 두 부류가 있다면 믿겠나요?
대체로 당첨을 기대하면서 로또를 구입하지만, 소수는 사회적기부이기에 구입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적인 기도는 후자와 같습니다.
주님의 가르치신 기도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데서 차별화를 위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주문한 말씀이 있습니
다.
눅11:1) ~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유대교아 차별된 순기독교적인 기도인 줄 믿습니다.
음성을 들으면 성질과 년령과 지적 능력과 고향을 알 수 있듯이 기도는 그를 증명합니다.
우리의 기독교적인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기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또 개인적인 필요를 간구하지만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하나님나라를 구하며 발전합니다.
한나 여인은 개인적으로 아들을 구하였지만 아들을 낳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아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기를 계속 기도하였고 생전에 이 기도가 멈추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결국 그 아들 사무엘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족장정치에서 신정국가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에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사회적이고 신앙적인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이 기도에는 언제나 삶이 있는 감사와 회개가 꼭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수산궁에서 자기 출세를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민족을 위한 큰 기도를 했습니다.
앞서 수산궁밖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모르드개가 기도했기에 유다인 처녀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또 궁 안에서는 왕후에스더가 민족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며 금식 기도로 민족을 살리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결론) 하나님과 성도에게는 우연이 없고 우연 같은 필연만이 있습니다.
느1:11) ~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