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하였고(부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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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성전보수의 당위성을 외쳤습니다.
느2:17) ~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놀랍게도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무너진 성과 불탔던 문을 건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3장에 많이 등장한 단어가 '중수하였고'입니다.
실제 무너진 성과 불탄 문들은 망한 역사의 흔적입니다.
이 역사의 흔적 앞에서 교훈을 받을 수 있고 어쩌면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무엇을 이루느냐는 전적으로 현재의 몫입니다,
없애는 가치보다는 남겨서 후대에 교훈 삼는 일도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수치스런 역사였기에 지우고 다시 중수하여 굴기를 이루고 싶었나 봅니다.
“ 예루살렘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아니 하나님 뜻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14:18~19)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내가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되자 중앙청건물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습니다.
다수는 치욕의 상징물을 잘 제거했다고 했지만,
한편 이전 했으면 일본의 식민지 만행을 영구히 증거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없어졌으니 일본이 제일 좋아라 했을 듯합니다.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의 돌과 불탔던 문짝이 행여 역사 기념물이 되었는지는,,모릅니다.
동독과 서독의 분단 담이 무너진 후 그 철조망과 담장의 조각은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이시기에 역사물 보다 하나님을 기억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공사는 덕스럽게 대제사장집부터 자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좋은 징조 아닌가요?
느3:1)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
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베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교회당 건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장로들부터 헌금을 작정해주니 비로써 건축헌금 얘기가 가능했고,
담임목사가 헌금하니 교인들이 따라서 동참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이를 선두의 법칙이라 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는데 말보다 실천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을 닮고 후배들은 선배를 따르게 됩니다.
이 공사에는 참여도가 높아 여성들도 동참했습니다.
느3:12)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
주님은 교회를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또 “선생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대한 책임 있는 선두라는 의미였습니다.
교회가 이런 성덕이 없으면 맛 잃은 소금이 되어 빛도 없이,,
세상은 어둡고 무질서하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여하한 교회는 이 선함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믿는 자가 날마다 더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대 교회의 자화상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가 교훈되고 여기의 성도들이 귀감 됩니다.
성을 중수하는 망치소리,,일꾼들의 “응차” 소리를 믿음으로 듣게 되니,,가히 역동적입니다.
집 앞에서 노후 난방배관 공사를 했었는데 시끄럽고 불편했습니다.
차량 통제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의 중장비 작동소리로 한 여름인데 창문을 못열었습니다.
소음과 분진 때문에,, 이들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된 신분이 있었으니 귀족은 귀족이었나 봅니다.
느3: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그러나 고맙게도 이 귀족들로 인한 갈등은 없었습니다.
“주의 역사에” 이처럼 믿음으로 동참했고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날마다 그 모습이 달라졌고 수고의 보람과 완공의 꿈도 매일 커졌으라 믿어집니다.
느3:32)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
느헤미야서의 공사를 보면서 화성 성을 쌓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꿈과, 그 뜻을 받들어 실제 공사를 진행시켰던 정
약용이 연상되었습니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 거중기,,그리고 구역을 나누어 성을 쌓고,, 중수일과 일꾼의 이름을 기록해서 수고에 대한 보상
과, 후대의 기념과 책임을 지우게 했던,, 느헤미야서와 흡사합니다.
이를 보면 사람은 동서고금은 달라도 사는 이치는 다 같고, 따라서 복음도, 성경도, 구세주가 같은 이유가 성립되는
데 나 사는 동안 무엇으로 주의 역사를 중수할까요?
요약점,
*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아름답습니다.
합력과 협력은 다릅니다.
합력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편입니다.
전능하셔서 무엇이든 다 맞춤으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는,,아니 사람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라서 혼자 못 살고 합력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하셨겠나요?
그래서 짝이 있고,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어 품앗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이기심으로 정은 다 사라지고 오직 법만 많이 생겼으니 약한 자가 더욱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농어촌 보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도시에는 인프라 곧 품앗이가 가능한 시스템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뒤집어진 거북이가 하늘을 보고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감동인 것은 그 곁의 놈이 뒤집어 진 놈을 주둥이로 밀어서 본래대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가장 잘 이루어지는 곳이 교회이고 성도여야 합니다.
또 세상에 교회가 많아야 할 이유가 됩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너가 아닌,, 나의 무책임과 무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몸만이 아닌 가슴도 맞대고 함께 살도록 해야 합니다.
* ‘주의 역사’에서는 주가 구심적이 되어야 합니다.
올해의 부활절연합예배는 진보와 보수 등의 모든 교파와 교단이 하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을 그동안 왜 못했나요? 안 했던 것입니다.
자기네 교파와 교단의 이익을 우선 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해에는 자기네라는 명분과 이익을 초월하고 주의 역사에 방점을 찍은 덕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은 바로 이 모습입니다.
주의 영광을 위해서 나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양보도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무너진 신앙을 중수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약하디 약한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불면 날아간다.” 고 합니다.
부활 신앙은 죽음을 이긴 신앙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신앙이 있습니다.
범사를 겁먹고 두려워 떠는 신앙이 있고, 긍정으로 보는 믿음의 신앙이 있습니다.
무엇이 성경적일까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결론) 부활 신앙은 죽었다가 다시 산 신앙이기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비온 후에 땅이 굳는다.” 는 속담처럼 무너졌다가 중수한 성과 신앙이 좋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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