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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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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6-04-12 08:35 조회 4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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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랏은 사마리아 지도자의 이름입니다.(호론 사람, 신(달)이 생명을 주셨다는 뜻)

그것도 좋지 않은,, 또 있습니다.

4장은 그의 일당들의 악행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느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느4: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느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보수되어 간다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어느 사회학자가 느헤미야의 후손과 산발랏의 후손을 추적 비교한다면 알만 할 듯합니다.

의인의 후손은 번창하며 악인의 후손은 망하리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꼭 갚아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 전 7: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 보다 낫고” 말씀을 좋아하며 무겁게 여기고 있습니다.

좋은 이름이란 예쁘거나 편한 이름이 아니라 훌륭한 이름입니다.

또 좋은 기름이란 비싼 기름일 테고,, 둘 다 가치 있지만 이름값이 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존재냐 소유냐” 의 긴장 속에서,,자본주의 국가에서 가난할지언정 존재라는 정체성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았

습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이 목사냐? " 는 참 부끄러운 지적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목사님이셨군요,,어쩐지,,” 이는 최소한의 내 모습이라 여깁니다.

완전하진 못해도 완전을 향한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돌에 맞고 죽어가는 스테반은 자신에게 돌을 던졌던 무리를 향해서 용서기도를 드렸습니다.

행7:60)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러나 그들의 죄가 하나님께 용서되는가 는 별개입니다.

살후1:6~7)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시니

 

언제나 악인들의 대표적 특징이 있는데 하나님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이들은 거짓을 앞세우고 선동꾼을 불러 더 부추키며, 생명경시 사상이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물론 사도바울, 나봇, 스테반 등, 숱한 의인들이 당했으며 느헤미야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마귀의 승리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느4:15)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하나님이 저희 꾀를 폐하셨으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잠잠하고 되레 축복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모를 때 흥분하며 내가 복수하고자 칼을 갈며 마침내 복수가 복수를 낳게 됩니다.

이는 유감이거니와 불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께 의탁하며 하나님께 읍소합니다.

시94:1~2)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믿는다고 해서 무방비나 태평으로 지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의탁했으면 상황에 맞는 사람의 도리를 해야 합니다.

느4:23)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

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었느니라

 

이 균형,, 이 조화가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령사람들의 건강미입니다.

여기에는 호들갑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었기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있습니다.

아,, 멋있습니다.

세상에는 없는 멋이기에 세상이 놀라고 반하게 됩니다.

 

요점,


*성도의 원수는 하나님께서 친히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으로 계시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된 이유는 하나님불신이었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들은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스라엘을 친 복수를 하나님이 하신 이유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훈육하실 때 사용하신 매를 훈육 후 꺾어버린 이치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복수는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의 행동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분이기에 자존감이 높은 만큼 사사로운 복수는 없어야 좋습니다.

나아가 나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은 높은 자존감의 사람입니다.

박사가 바보 소리에 예민하지 않고 어른이 아이들에게 뺨맞고서 분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성도의 선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좌소입니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나 명심할 바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혹은 억지로 이루는 선행은 금물입니다.

선,,의,, 다 주께 속한 특성이기에 먼저 성숙해야 진짜입니다.

꽃이나 열매가 성숙할수록 알짜가 되고 향기도 짙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만난 노예출신 오네시모를 믿음의 제자 빌레몬에게 부탁했습니다.

이유는 빌레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몬6~7)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의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느

니라

성경적인 선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등불이고 길이 됩니다.

 

* 성도의 믿음에는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이성, 지성, 감성이 있습니다.

교육은 이 3성품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며, 훈련은 몸의 행동을 숙련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성과 동떨어지지 않고 함께 합니다.

성령 충만했다고 해서 감성과 지성만 발달하지 않습니다.

이성도 함께해서 성경이 더욱 믿어지고 기도에 더욱 힘을 쏟게 되며 이웃을 더욱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단의 경우 치우치거나 자제력을 잃는 이유는 악한 영의 통제를 받아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성령은 보혜사이며 지혜의 신인 줄 믿어야 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역사를 이루는 성을 쌓으면서 대적을 경계하면서 일도 했습니다.(느4:14~23)

대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지만 무시하지 않았고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무장한 체 일하면서 두려워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14절) ~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

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느4:23) 나나 형제들이나 종자들이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

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우리는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말씀한대로 이성, 지성, 감성의 인성이 균형이 있고, 말씀의 믿음이 삶의 경험과 균형이 있어야 건강하고 좋습니다.

시34:8) 너희는 여호와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맛보아 알지어다.” 경험입니다. 그렇다고 믿음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가 여기에 있듯이 신앙도 그렇습니다.

말씀이 경험되어야 하며, 나아가 기도가 고프고, 전도가 고프고, 성경읽기가 고프고,, 결국 천국을 갈망하여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결론) 마5:3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위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내가 맛보아 알아야 성숙하고 건강한 믿음이고 삶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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