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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원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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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6-04-26 07:01 조회 3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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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느6: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 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

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못한 때였더라

 

이들은 공사처음부터 훼방했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하여 떼를 지었기에 “원수들이” 되었습니다.

중상모략하고, 지금은 살해하려 하고, 또 뇌물을 주어 거짓 예언도 시켰습니다.

느6:12) 깨달은 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

언을 함이라

 

이쯤해서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시 로마교황청과 맞서 싸우느냐 피곤과 두려움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낙심하고 있

을 때 부인이 “ 하나님이 죽었나요? 왜 좌절하시나요? ” 라고 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 말에 힘을 얻고 지은 찬송시가 연상되었습니다.

찬346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담대하게 싸울지라 저기 악한 적병과 심판 날과 멸망의

날 네가 섰는 눈앞에 곧 다가 오리라 영광영광 할렐루야 영광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

하리라

 

흔히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느헤미야도 공사가 끝날 때가 되니 원수들이 큰 기승을 부렸습니다.

느6: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그동안 공사면 공사,, 원수들과의 싸움이면 싸움,, 어느 한 가지만 했으면 좋으련만 두 가지를 다 했기에 피곤도 갑

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단결력도 갑절, 하나님께 향한 믿음도 갑절이었기에 승리의 개가도 갑절이 된 줄 믿습니다.

느6: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

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라

 

이러다 보니 정치적인 중매인들이 나타나 원수들과 화해하도록 합니다.

느6:17) 또한 그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

으니

 

이때 지도자가 주관이 없으면,, 좋은 게 좋다는 식에 말려가며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고맙게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붙잡으신 종답게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느6:12) 깨달은 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거짓 화해, 거짓 평화가 있습니다.

말과 구호가 앞서는데 대체로 불리한 측에서 먼저 요구합니다.

때론 민족성과 미래성을 앞세우고,,그러나 과거사 반성과 잘못 사죄는 없습니다.

이런 경우 손잡을 필요가 없는데 저들의 탐심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느6: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랴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가의 아들 므슬람

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십자가죽음을 앞둔 주님께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눅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놀랍지만 정치적으로 앙숙이었지만 예수를 제거하는데 마귀하수인으로 동지가 된 것입니다.

이때 유대교가 함께했었음을 인류 역사가 다 아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교회를 공격하거나 목회를 방해하는데,,아무나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사람들이 “위한다.” 는 명분을 들고 나섭니다.

그러나 그 위함이 실제는 자신입니다.

그리고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더 연대하곤 합니다.

느헤미야도 당했습니다.

느6: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그러나 그는 이미 원수였기에 빨아도 걸레일 뿐 결코 행주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고 마귀도 사람을 통해서 반대적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은 사람이 먼저 좋아야 되고 그 다음은 믿음입니다.

사람이 먼저 좋으면 믿음은 작아도 가르치면 커지기 때문입니다.

 

사람 좋은 느헤미야는 믿음도 좋았기에 지혜는 물론 담대함까지 있었습니다.

총독이라는 정치직에 있었으나 정치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 소신이 있다 ” 혹은 “ 고집이 쎄다.” 고 하지만 아닙니다.

주와 가까이 했던 것이니 이런 사람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느6: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다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세상과 시대는 발전해서 마차는 자동차로,, 바닥에서의 잠은 침대로,, 없던 컴퓨터가 발명되고 인공지능이 냉장고

에도 탑재되었지만,, 이런 변화 말고는 사람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하고 만물보다 심히 부패함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처럼 범사에서 간구해야 합니다.

“ 14절, 내 하나님이여 ”

 

-요점-

* 내 믿음이 믿음으로써 효능을 발휘하려면 주님께 막힘이 없어야 합니다.

요1서3:21~24) 함께 읽읍시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의 계명을 지키면 주 안에 거할 때인데, 곧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이 실천될 때입니다.

22절) 무엇이든지 구하는 자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고난과 고통은 힘들고 두려워도 이길 때 하늘의 보약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원수나 아님 원수들의 궤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대항하느냐 따라 사약이 되고 보약이 됩니다.

다윗에게는 사울 왕이 원수였으나 집중하며 의식했던 대상은 사울 왕이 아닌 하나님이었기에 역경이 유익되었습니

다,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결론) 성도는 원수들보다 성령을 더 의식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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