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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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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6-05-17 06:08 조회 18회 댓글 0건

본문

인봉이란 도장 찍고 내용물을 봉했다는 뜻인데 본문에서는 무슨 비밀이 있어서 일까요?

실제는 하나님께 언약을 세워서 드린 문서였습니다.

느9:38) 우리가 이 모든 이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

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그러므로 다음의 10장에는 그 인봉한 인물들이 기록되었습니다.

 

8장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에스라학사로부터 잊혀졌던 율법책을 통해 참 빛을 받았습니다.

배고팠다가 포식하면 어떨까요?

식곤증이 오듯 이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니 통회 자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시작은 앞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황폐한 소식을 듣고는 금식하며 통회 자백한 결국이라 해도 과언은 아

닙니다.

여하한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폭로됩니다.

느9: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이 회개운동이 자연이나 인위적으로 된 일이 아니고 성령님의 활동으로 되어진 일입니다.

현대는 영성이나 성령운동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려 하는데 억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이고 하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유심히 대하면 그 은혜의 문턱까지 다다른 줄 믿습니다.

 

본문을 묵상할수록 개인적으로 사도행전 7장의 스테반집사 설교가 많이 닮았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 온전해서 입니다.

6절)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7절)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9절) 주께서

32절) 우리 하나님이시여

 

온전한 호칭은 온전한 신론 아닌가요?

온전한 하나님의 지식과 믿음이 견고한 터전을 이루어 생활신앙이란 건축을 견고케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진부한 듯해도 확실해야 그 후가 좋아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구원역사를 온전히 알았습니다.

제사장들이나 혹은 제사장 아들들이 불량해서 제물을 먼저 취하거나, 거룩하지 못한 불로 사르거나, 회막에서 수종

들던 여인들과 덕스럽지 못한 행위가 왜 있었나요?

가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존재와 구원의 역사를 믿지 못한 이유가 아닌가요?

 

그런데 이들은 넘쳤습니다.

4절)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부니와 세례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절)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6)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9절) ~그밖에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11절) ~깊은 물에 던지시고

12절) ~비추셨사오며,,

14절) ~선한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그밖에도 많습니다.

 

그리고 자기 조상들의 죄와 허물을 알았습니다.

느9:26절)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

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그밖에도 많습니다.

 

회개나 반성이나 사죄에는 무엇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야 하고, 앞으로의 처신에 있어서도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

시되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견고한 언약을 드릴 수 있었다는 신뢰가 부럽습니다.

 

- 요점 -

 

* 복음적인 신앙일수록 하나님께 드리는 인봉이 잦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주님의 피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보답은 우리의 피땀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핍박에서는 견디는 정금 신앙이 합리적 이성의 자유에서는 무너지곤 했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박해가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열매라면, 거짓자유는 마귀가 주는 죽음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거짓자유에서 방종과 변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는 성경의 교훈을 명심해야합니다.

생선은 운동력이 있듯이 산 믿음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성장하고 익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와 결단이 자주 있게 됩니다.


*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주의 일을 자꾸만 하려고 합니다.

조직이나 시스템을 만들고 일꾼들을 훈련해서 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이럼이 문제가 됩니다.

시민 없는 시민단체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경쟁적으로 무엇을 하기 보다는 때로는 양보나 절제나 안 함도 필요하고 좋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진리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형식이나 규칙이나 전통을 붙잡고 있다면 유감입니다.

그 안에 확실히 있으면 하든, 못하든, 크든 작든,,진리와 동행하기에 자유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전쟁 중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불신인 블레셋에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하나님을 몰랐기에 언약궤를 기뻐하지 못했고 창고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그들은 화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달랜다면서 자신들의 방법인 우상섬기는 방법으로서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더 큰

화를 자초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롬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

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

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주님이 하나님이시고, 주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믿을 수 있고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믿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 고 하셨고, 주님 맞이하는 준비에 분주한 마르다 보다는 주님 곁에서 말

씀을 듣고 배우는 마리아를 칭찬하셨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강의 물고기를 혼자서 다 못 잡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의 일에는 손을 놓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주의 일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드는 제자들을 왜 부르셨을까요?

첫째가 함께 있길 원하셨고,

둘째가 전도도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이는 아담 하와를 창조하신 이유와 동일합니다.

아담 하와를 창조된 후 첫 번째의 일이 하나님과 안식한 쉼입니다.

 

결론) 죄는 하나님과 분리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믿음을 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

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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