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봉한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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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많은 인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만 해도 산발랏 같은 악인들과 이처럼 인봉이란 거룩한 일에 이름을 올렸던 인물들
이 있습니다.
이는 운수나 팔자소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로 결정된 일로 영원의 분수령 이 될테니,,
참 두렵습니다.
느10:1) 그 인봉한 자는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느헤미야는 여기서도 첫 번째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혼자가 아닌 아비까지 이름이 올려 졌고 총독이란 사회적 직책도 올려 졌습니다.
아비는 자식이 잘한 덕 같습니다.
“자식이 잘하면 부모가 죽어서도 고해를 면한다.” 는 굳이 불교설법이 아니라도 일반적인 복입니다.
총독이라는 직책은 대표성이고요. 학사 에스라가 빠졌는데 그 이유를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부흥회를 인도하고는 엘리야처럼 감람산이나 세례요한처럼 광야에서 충전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하한 여러 분야의 대표적 인물들이 앞장섰고 그 밖의 인물들과 민족들은 맹세로 갈음했습
니다.
느10:29)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
여 주신 하나님이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며
현대처럼 저마다 제 잘 난 멋에 각개약진 한다면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일입니다.
사회주의도 아니고 전체주의도 아닌데 이처럼 하나된 것은 민족성도 하나지만 주님이 한 분이
신덕인 줄 믿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대망하신 일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면 믿겠나요?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기도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성도는 언제나 여기에 관심을 갖고 하나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됨은 거룩한 일처럼 성령이 함께하심이요, 나누어짐은 마귀의 훼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시장논리가 들어와서 하나나 거룩보다 큰 것에 꽂혔는데 이는 속물주의
라 할 수 있고 천박해진 원인도 됩니다.
이제 이들의 삶은 생활신앙으로 변환되었으니 큰 사건입니다.
순수혈통을 보존하려 했는데 이는 순수 신앙 보존 노력이기도 합니다.
느10:30) 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
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이후 얼마나 많은 젊은 선남선녀들의 눈물이 있었을까요? 상상해 보았습니다.
또 불편해도 성결하기 위해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려했습니다.
각종 제사와 제사장을 율법대로 섬기도록 했으며 첫 열매와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했습
니다.
느10:35)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
였고
한마디로 기본을,, 기초를 다시 튼튼히 세우도록 한 것입니다.
여기서 잘못되면 진보나 개혁이 아니라 변질이고, 신앙적으로는 이단과 사이비가 나오게 됩니
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는 선언이 성경의 선언 아닌가요?
대충적인 기본과 기초에서,, 쉽게 가고 좋은 게 좋을 거라는 안일함과 편리주의에서 탈이 생
기고 때론 대형 사고로 이어 지는데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키려는 가상한 노력이 또 다른 제사이고 기도인 줄 믿습니다.
- 요점 -
*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일 보다는 사람입니다.
한 영화를 보았습니다.
헐리우드의 유명배우가 돈과 이름은 얻었으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젊은 날에 꿈을 찾아 나선 결과인데 일 우선이다 보니 이혼했고 아이들과는 추억도 없고,,
어느 덧 주변사람 모두에게 다 배척당했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방향성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반면 이 배우의 매니저는 일 보다는 가정이고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함께했던 팀원들이 떠났고 마침내 동업자들인 스타들도 떠났습니다.
결국 그도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도 잘 못 살았던 것입니다.
결국 이 둘이 깨닫는 것으로 영화는 마칩니다.
소유냐 존재냐의 문제를 다룬 영화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우선인가요?
무엇이 우선이냐 보다는 “ 책임을 갖자” 로 생각을 전환하면 어떨까요?
주님은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셨으니,, 느헤미야가 총독으로써,, 또 하나님 경외하는 성도로써 충성
한 것이 최선을 다한 것이고,, 결국 존재와 소유를 다 잘 이룬 것처럼 우리도 이래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최초의 7집사를 뽑는데 그 자격이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있으며, 칭찬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순서를 보면 성령 충만이 우선이고, 그러면 지혜가 따라 오고, 마침내 칭찬도 듣는 덕행을 이룹니다.
세상은 언제나 양면성이 있기에 누구나 져야 할 책임이 따릅니다.
책임을 진다는 태도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책임감에 스트레스를 받고, 실수와 약점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되지만,, 가장 경계할 점은 “그 사람 무책임 하다” 는
평판입니다.
그 평판은 불명예를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내팽개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임지려는 기본 자세는 책임감도 자라서 마침내 태산 같은 책임도 감당하게 됩니다.
곧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주변의 신뢰를 받는 이치입니다.
* 책임은 삶입니다.
28절) ~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29절) ~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며,
30절) ~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31절) ~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그들에게서 사지 않겠고, 일곱 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32절) ~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33절) ~ 하나님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34절) ~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사르게 하였고,
35절) ~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게 하였고,
36절) ~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37절) ~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사람들에게 주리라,
38절) ~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고,
39절) ~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결론) 이처럼 실천하는 삶은 책임으로 불편하며 부담을 갖는 삶입니다.
기분이나, 형편이나, 날씨나, 다수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께 언약한대로, 또는 말씀대로, 성령님의 감동따라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복의 언약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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