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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거주자들, > 설교말씀

예루살렘의 거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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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6-05-31 08:13 조회 1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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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중요합니다.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거주의 자유는 직업, 표현, 종교 등과 함께 큰 인권입니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그렇지 못한 국가와 국민이 참 많습니다.

 

옛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이 있는 수도 예루살렘을 선호했습니다.

모든 인프라가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 거주할 수 없었기에 거주자들이 비거주자들에게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회개를 이루었던 예루살렘만의 성숙한 신앙자태이고 정겨움입니다.

느11:1~2)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고 십분의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였으며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무엇이든 선호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싸움은 있을지언정 축복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지도자들, 유다자손과 베냐민 자손, 레위사람들, 성 문지기, 노래하는 사람 등이 거주하였으니 놀고

먹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자녀 교육을 위한 성읍은 아닌 덕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도 거주자끼리의 구역이 구분되었습니다.

그래야 왕래가 편리하고, 업무의 효율도 오르며 비슷한 이웃 간의 정도 돈독하게 됩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산다는 것은 여간 불편할 것입니다.

더욱이 직급이 다르다면 어떨까요?

이런 면에 있어서는 사람 사는 모습은 다름이 없습니다.

 

옛 한양은 어땠을까요?

왕이 사는 궁궐을 중심으로 좌측 고을인 옥인동, 효자동에는 시종들이, 반대편 고을인 삼청동에는 대신들이,,앞쪽

고을인 정동, 필동, 묵동 등에는 말 그대로 선비들이 살았습니다.

또 일제 강점기의 옛 경성은 종로 화신백화점 중심으로는 조선인들이,, 충무로 진고개와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중심

으로는 일본인의 활동 본거지였습니다.

사람도 동물이나 식물처럼 경계에 매여 사는 모습입니다.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늘의 새들도 다른 하늘에서 저마다 날고, 동물도 저 사는 터가 있어 행여 영역을 침범하면 전쟁이 납니다.

물고기가 수온 따라 다르듯이 이런 경계는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그럼에도 하나님은 때로 합하는 은혜도 누리게 하셨습니다.

느11:36) 유다에 있던 레위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함께 합하였느니라

또 흩어지게도 하셨습니다.

유다지파는 예루살렘만이 아닌 파샤국의 여러 고장에서 분포되어 살았습니다. (25절)

어쩌면 먼 훗날 예수님이 오셔서 두루 다니시면서 제자삼고 전도하실 것을 예표한 듯합니다.

 

11장은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살까?” 보다 “왜 살까?” 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 안에서 왜 살까요?

 

- 요점 -

 

* 왜 살까요?

성도는 정체성을 알아야합니다.

엡4: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하심이니라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의 정체성은 단순합니다.

성도마다 성향과 은사가 다른 이유는 찬송할 일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그리고 “나를 찬송하려 함이라” 같은 뜻입니다.

 

* 어떻게 살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님은 성령을 보내셨고, 또 구하라 하셨기에 성도라면 성령 안에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보내신 이유는 거룩하고 선한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은 절대적인 보혜사이십니다.

그러나 성도는 편향된 성령 지식으로써 불같고, 바람 같은 성령이나, 성공과 확신과 만족을 주는 성령을 믿고 좋아

하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성령은 성공만을 주는 신이 아니고, 성장의 기술을 가르치는 교사도 아니며. 감정의 체험을 높여주는 에너지 바도

아닙니다.

엡4:20)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요16:8) 그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롬8:26)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의 연약함을 단번에 제거시켜 주시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우리 연약함 가운데 탄식하며 함께 짐을 지시는 하나

님이십니다.

또한 성령이 충만하면 할수록 병 고치며 기적을 일으키는 큰 사건보다는 새 창조의 새 성품이 이루어지게 하심으로

회개가 일어납니다.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A)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열매는 매우 중요한 증거입니다.

내 노력으로 쉽게 이룰 수 있는 도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꼭 이루어야 할 소원리스트도 아닙니다.

그냥 살아지는 자연스런 인품이기에 교회를 다니는 일보다 내가 교회가 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이 임하시고, 믿음으로 따르면 더 큰 영향력이 생기고, 더 큰일들을 더 쉽게 이루고, 더 강력한 힘을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마귀도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성숙하면 인간미가 더 있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며, 자신과 타인의 삶과 사회에 책임을 갖게 되

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게 되는 성품과 삶의 변화, 곧 존재의 변화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목사노릇, 장로노릇, 집사노릇이라는 노릇은 사라지고 진실된 인격으로 이중적인 생활이 없어집니다.

 

B) 나아가 교회를 거룩하고 든든하게 세웁니다.

교회는 주님이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몸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은사 따라 서로 유기적인 지체의 관계를 맺고, 주님중심으로 날마다 장성한 분량의 예수를 닮아가는

교회가 됩니다.

외적인 교인 수나 헌금의 증가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오직 인격과 삶이 성숙할 때 세상도 칭찬을 하는데, 교회역사를 보면 성도가 이처럼 성숙할 때가 칭찬이 풍년이었

고 믿는 자가 더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은 성도의 말을 듣기 이전에 존재의 방식을 보기 때문입니다.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서로를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현대는 어떤가요? 주변의 교회나 성도를 보면서 천국과 주님을 볼 수 있나요?

세상을 향한 희생이나 양보나 배려는 고사하고 교회와 성도 간에 치열한 경쟁이 있습니다.

동네교회가 짜장면데이를 한다면서 현수막을 붙였는데 그 교회 30보 앞이 중국집이었습니다.

전도합네, 기도합네, 성령 충만합네 하면서 이기심과 자만심과 부자됨과 성공확신을 붙잡다 보니,, 천국을 침노한

다면서 땅을 일을 구하는 모습이 되었고 신뢰를 잃는 지름길에 서있습니다.

 

결론) 우리 믿음과 신앙의 목표와 목적은 무엇인가요?

주님이 자신을 비워 종으로써 죽기까지 순종하심처럼 그 모습이어야 합니다.

더 하나님 공경하고, 더 이웃 사랑하고, 더 나누고, 더 책임지는 삶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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