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노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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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옛부터 갈등하고, 전쟁하고, 때론 평화롭게 삽니다.
그래서 말이 있습니다.
“영원한 동맹도 없고 원수도 없다,”
1) 세상 나라
최근 우리는 전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구소련시절에는 동맹이었지만 지금은 원수지간입니다.
이란과 미국도 그렇습니다.
전쟁의 저변에는 강대국의 탐심과 자기우선주의가 있습니다.
이 탓에 지구촌의 전 세계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선교사말로는 러시아에는 청년들이 없어졌다니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강대국의 침노로 사람부터 죽고 다쳐서 아프고 세상이 괴로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 후과는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6,25 한국전쟁으로 그 후과를 70년이 지난 지금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침노는 하지도 말고 당하지도 말아야하겠기에 안보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계국은 약소국을 돕기 위한 기구로 유엔과 안전보장위원회를 만들었는데 강대국들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특히 미국이 이란을 아니 앞서 베네수엘라를 공격함으로 강함이 정의가 되었고, 그 후 동맹의 가치가 흔들려서 각국이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단초를 제공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점점 더한 갈등과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예언하신 말씀인데 말세의 초기현상이 됩니다.
마24:7~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
이 세상 나라는 정치와 자본력이 침노하는 운동력 되었습니다.
언제고 국방력은 경제력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에 우리나라도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일에 관심과 말들이 많습니다.
지난 주간 동안 여러분이 듣고 한 말들을 살펴보십시오,
무엇이 대중적이고, 무엇이 지배적이며, 무엇이 주제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식, 선거, 월드컵축구, 아파트값, 정당정치,,일반적인 관심 사안입니다.
이런 일이 나쁜가요? 좋은가요?
시대의 혼란이고 혼돈이기에 무엇 보다 나의 중심과 자세가 중요합니다.
성도는 중심이 있고 색이 있고 태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성도는 세상 나라만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국민이어서 그렇습니다.
2)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주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곧 천국이라고 하는데 이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가시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성도의 마음과 생각에도 임하고, 가정에도 임하고, 시대에도 임하고, 교회에도 임합니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서 창조의 신이요, 나의 주인이시라는 성경의 계시를 받아드리는 생활입니다.
성도는 어느 깃점에서 이런 인식의 변화가 있는데 곧 거듭남입니다.
그리고 성령 받으면 주님의 다스리심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믿기 보다는 적극적으로서 이 천국을 사모하며, 누리고 확
장함이 나타나는데 곧 침노함입니다.
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에게 찾아 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우리가 밤낮 일하면서 걱정하며 사는 나라는 몸을 위한 나라요,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가 다스리는 나라이기에 하나님
나라와는 원리가 정반대입니다.
이런 나라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침노한다는 일은 육체와 세상을 거슬리고 싸우면서 나가는 생활이기에 결코 쉽지 않습
니다.
주님께 순천자가 되어서 사는 일인 만큼 나를 부인하고 날마다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일인데 오죽 할까
요?
외롭고요, 가난하고요, 멸시천대 받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생명의 문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마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성도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상 나라의 자신을 향해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에스더가 외쳤던 “죽으면 죽으리라” 했던 말도 이 뜻입니다.
죽는다고 하며 죽었더니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둘 다 가지려고 합니다.
또 죽지 않고 죽은 체 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학식이나 기술이나 재산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서의 주님 닮은 거룩이고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믿음의 모습을 보십시오,.
삼상12:3~4)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
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
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
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이처럼 믿음은 삶이고 인격입니다.
3) 침노함
성도의 침노함은 이 바탕위에 하나님 앞에서의 바름, 정직, 거룩함, 충성 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런 성도를 찾으시며, 기억하시며 높이시는 줄 믿습니다.
늙은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 물러났지만 하나님은 그를 높이셨습니다.
사무엘이 죽어 장사되었으니 사무엘상 후반부는 ‘사울서’ 라고 하고, 사무엘하는 ‘다윗서’ 라고 하지 않고 계속 ‘사무엘
상하’ 로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또 사무엘 역시 은퇴 후에도 사명감을 알았습니다.
삼상12:23~24)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 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
음으로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기도가 쉬면 그럴 수 있고,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 아니라 “죄”로 여겼던 것입니다.
월드컵을 즐기면서 응원하려고 외국 경기장을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광화문에 응원하려 휴가 내고, 또는 가게 문 닫고 등은, 축구를 침노하는 모습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세상 나라의 삶부터 성실히 잘 살아야 합니다.
그 모습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막힘이 없도록 모든 불
경건은 모양이라도 죽어 영혼을 살리는 모습입니다.
결론) 성도로서 천국을 침노하는 일은 쉽고도 어렵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해도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는 쉽고 가능한 줄 믿으십시오.
며칠 전 한 성도가 메모한 성경구절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밤에 성경 읽다가 감동된 말씀이라면서,,
늘 사는 일이 힘들어서 성경 보기가 어려웠는데,, 그날 밤 카톡은 하면서 성경을 못 본 일이 자책 되었고 결국 다시 성경 앞에 자신을 세웠다는 간증입니다.
말씀을 침노했더니 말씀의 침노함을 얻은 간증입니다.
주님을 즐거워하는 침노, 주님의 뜻을 이루는 침노, 주님을 닮고자 하는 침노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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