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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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믿는 사람들의 궁극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실제적이냐 할 때는 유구무언입니다.
1) 확실한 진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대체로 육신의 생각을 가진 탓입니다.
이 모습은 유대교와 그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영광을 위한다면서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혔고, 마침내 거짓증인들을 세워 주 예수를 잡아 죽였
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강도를 석방해주길 총독빌라도에게 요구했고, 빌라도는 예수께서 무죄함을 알고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유대인들에게 내주었습니다.
이런 일은 언제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면서 자신들을 먼저 위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생각을 가진 성도들은 없을까요? 아니 육신의 생각이 무엇인가요?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의, 주 예수의 생명을 갖기 전의, 타락한 본성인 자연적인 성품입니다.
물론 법 없이도 살 사람도 있다지만 그럼에도 이 육신의 생각은 마귀적이고 세상 중심이기에 하나님영광은 이룰 수
없습니다.
이 성품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작용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자기중심이 되어 다툼이 되며, 신령한 가치보다는 세상적인 가치를 따라 성령과 진리라는 경건의 능력은 반대하며
경건의 모양만 세웁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 보다 부자를 선호하게 되고, 작은 것 보다 큰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억지 주장이 나옵
니다.
살펴보십시오, 성도들이 흔히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서 드리는 기도가 어떤지를,,
주의 재림과, 진리와, 진실과, 선과, 의를 구하면서, 내가 죽고 주가 흥하길 구하기보다는,,내가 살아야 하는,, 세상
의 형통, 풍성, 성공, 아름다움, 행복 등을 구하곤 합니다.
그래서 기도만 들어서는 여늬 종교와 구별이 안 됩니다.
그나마 “이 모든 말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할 때 비로써 알 뿐입니다.
주님은 “ 먼저 그의 나라와 의하여 구하라” 하였으니 얼마나 다른가요?
이런 가치에 비하면 단명한 세례요한과 스테반 집사는, 실패한 본받을 수 없는 신앙인이고, 하나님영광을 가린 사
람이 됩니다.
또 주님의 12제자들과 사도바울과 그의 제자 디모데, 디도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이 땅위에서 주님을 믿고 살던 모든 날들이 고난과 가난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렇까요?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에 가면 앞섰던 저들을 대신한 묘지와 묘비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지난 봄날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을 찾은 소감입니다.(중략)
하디는 1900년도 중반에 전개된 한반도 성령대부흥 계기를 마련한 영적 지도자이다.
의사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서 45년 간 선교사로 헌신한 후 은퇴하여 미국에서
지내다가 1949년에 죽었고, 양화진에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죽은 큰 딸과
여섯 살에 죽은 둘째 딸이 안장된 것이다.
1900년도의 한국의 모습은 어땠나요?
당시 이 땅에 미국인 의사가 와서 45년간 살았다면,,무엇을 위한 가치였을까요?
대한민국의 구원,,그리고 마침내 되었기에 하나님께 영광되고 자신도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과 또 이런 선교사들이 힘들긴 해도 억지 삶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2) 먼저 될 일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먼저 거듭나야 하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림없습니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8:16~17)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완전하신 주님이 죄 사함의 세례를 받으신 것을 아시나요?
그 이유는 하나님아버지의 정하신 율례를 이루시기 위함이었고, 죽으심 역시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이때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하나님아버지가 보내신 아들이심을 영광중에 계시해주셨습니다,
주님의 12제자들도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의 전인격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살겠다고 도망치고, 두려워서 숨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후 전혀 다른 능력설교자가 되었고,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변화가 하나님영광을 드러내는 광채가 되어 초대교회가 폭발적인 발전을 이룬 것입니다.
전에는 내가 살았다면 후에는 내가 죽고 주님이 흥해진 삶이었습니다.
현대교회 모습과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도 성도지만 성령이 함께하시는 위엄과 능력이 있나요?
우리가 다른 교회를 보고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나요?
그렇다면 저들도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과연 그리스도인이라” 고 칭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 는 말을 삼가 하든지,,아니면 실제 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 말은 구호나 표어 보다는 성도 개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가 구체적으로 어떤가요?
하나님은 홀로 영광을 취하시는 분이라서 우리의 영광이 절대적 필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찬송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가 드리는 영광을 기뻐하심은, 주 예수의 이름과 성령의 감동과 감화
가 있는 산 제물이 될 때 받으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자연스런 삶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의 기준을 우리에게 맞추어서 꼭 이래야 한다. 꼭 저래야 한다, 라는 기준은
비 성경적이고 부자연스런 삶이 됩니다.
고전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
이 아니니
고전10:31) 그런 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분명한 것은 성도가 성령을 따르면, 하나님영광을 우선시 한다면,,신령한 덕이 있는가를 우선시하게 되는 지극히
자연스런 삶이 됩니다.
최근 폐막된 월드컵축구 마지막 경기인 1,2 위전은 치열했습니다.
치열한 만큼 경기가 끝난 후에도 양국 간에 뒷끝이 있어 흑역사가 되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고교야구에도 비슷하게 유감된 일이 있었습니다.
승리에 열중하다 보니 한 학교의 응원이 상대학교를 비하했던 것입니다.
스포츠에서는 페어플레이가 강조되는데 승패의 열중이 삼켜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골프나 당구처럼 페어플레이를 익힌 신사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 단순합니다.
* 내가 아닌 남의 유익이며 그 목적은 구원을 받게 하는 데 있습니다.
고전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10:33) ~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성공이나 부피가 아니라 사람에게 계시기 때문입니다.
돈 보다 사람이, 나 보다는 타인이 귀중히 여기는 사회터전이 될 것이며, 이 모습이 세상을 깨우고 변화시키는 소금
과 빛의 사명입니다.
지금은 고립사회라서 혼자 죽는 이들이 많습니다.
국가가 시스템으로 관심 갖지만 성도는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 누구에게나 교회에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고전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했는데,
거치는 자가 되면 그 반대적인 모습이 됩니다.
결론) 하나님의 영광은 삶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닮은 사람이 남녀노소빈부귀천 없이 존중되고 구원을 받는 일이며, 주님이 친히 세우신 교회를,
지체되는 성도가 거치는(허무는) 일이 아닌 오직 세우는 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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