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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생각(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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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12-25 09:11 조회 10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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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 탄생이 없었어도 잘 살 부부임은 확실해보였습니다.

품결도 같아서 부부가 생각하는 신앙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마1:19~20)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

각할 때에

 

1) 생각

똑똑한 사람들이 엉뚱한 일들을 꾸리거나 허튼 것을 믿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흔히 이때 헛똑똑이라고 하지만 그 이유는 공부는 많이 해서 지식은 있으나 생각의 부재 즉 철학이 기반인 지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또 반대로 지혜가 있는데 지식이 없으면 어떨까요?

개똥철학이라고 하는데 지식의 부족으로 논리가 모순되고 역사성이 없어 쓸모가 없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바른 신앙의 성도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그럼에도 극단으로 치우친 기독교 신비주의와 이성주의로 모든 사이비와 이단이 여기서 생겼기에 경계해야 합니

다.

 

수태고지에 관한 누가복음이 마리아의 버젼이었다면 마태복음은 요셉의 버젼입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자신과 무관하게 임신했음을 알았을 때 조용히 파혼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메시지로 부정한 임신이 아니라 하나님섭리에 의한 임신임을 알고는 하나님의 뜻대로 마리아와 결

혼하였습니다.

믿음이라고 하지만 용기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왜 용기 있는 결정이냐면,,마리아와 결혼하면 수치와 명예중심의 사회에서 부부와 아기가 혼외자임을 동네에서 다

알게 되어 장차 따돌림 당하고 이류시민으로 살아야 할 고통이 있음을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고통과 수치를 감당하기로 했으니 믿음이고 용기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결정과 결단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요셉역시도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천사의 메시지였고 하나님을 믿어서입니다.

마1:24~25)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런 데서 진면목이 발휘됩니다.

“주님을 믿는다.” 또는 “따른다.” 는 것이 이런 모양입니다.

성도라면 평생의 포기할 것과 지고가야 할 부담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럼에도 성도인 것은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지고 갈 것은 지고 따르겠다는 모습이 아닌가요?

 

성도라면 주를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이런 경계에서 한번쯤은 손익계산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눅14:25~27)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 소명

그렇지 않고 주를 따른다면 낭패를 겪습니다.

세상에서 바라고 얻는 것 보다 포기할 바가 더욱 많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경우 출발선에 섰을 때 “소명을 받았느냐” 며 자꾸 확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따른다.” 하면서 포기보다 협상하려는 이들이 많아서 탈이 되는데,

다 하나님나라에 합당하지 못한 자세들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너는 고향, 친척 본토 아비의 집을 떠나라” 하신 하나님의 소명에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가며 무엇이 내게 상급인가

요?” 하며 반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떠났는데,,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지시하고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절대적 순종과 믿음이 그

에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결과 그 부부는 열방을 얻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비록 젊었어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이 아이를 받아드립니다.”는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이럼을 보면 믿음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주님의 지식과 믿음과 경험이 맞습니다.

가정에서나 어렸을 때부터 성경교육을 올바르게 해야 할 일이 여기에 있고,

공중에 권세 잡은 마귀가 이를 싫어하며 거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이든, 단체든, 사회든 마귀에 속했느냐 주께 속했느냐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있습니다.

예배, 전도, 성경교육을 지지하면 주께 속한 반면 거부하면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중국은 잘 먹고 잘 살아도 신이 없는 유물론사상인 공산국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해서는 핍박하며 어린이전도는 물론 교회당도 출입을 못하게 합니다.

최근에는 외국인들의 종교활동도 금지했고, 출입도 금지시켰습니다.

북한은 더 합니다.

성경을 갖고 있기만 해도, 탈북자의 경우 교회 갔거나 목사를 만나기만 했어도 처형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도 자꾸 주님에 대해, 예배에 대해 거부하는 일들이 성도와 교회 안에서도 생겨나고 있는데 신

앙의 세상화된 모습으로 마귀에게 속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훗날 주님께서 쭉정이와 알곡을 가리실 때 이들은 불에 사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이상한 일들을 보면서 생각하며 주님께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공산당을 창대케 하시며 교회는 쪼그라 들게 하시는지?

왜, 가부장시대의 혼외를 통해서 아기예수님을 보내시고, 가난한 시골처녀의 몸을 통해서 낳게 하시고, 역시 의로

운 청년을 아빠로서 키우게 하셨는지?

왜, 전능하신 하나님님은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시며 기뻐하시는지?

 

그 답은 인문학이나 과학이나 정치가 해주지 않고 성경이 해줍니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나님은 언제나 이런 방식을 고수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고 높으신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

물게 하려 함이라

 

3) 주의 구원

주님의 약함과 고난과 십자가죽음을 통해서 주님은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얻으심 같이,, 주님이 이루시

고 주시는 구원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고난은 영광을 낳고, 죽음은 부활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요셉의 순종은 장차 예수님이 자신들의 주님이 되셔서 십자가위에서 해 주실 일들을 지금 아기

주님께 기꺼이 해드린 일이 되었습니다.

주님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실 때 스스로 결정 내리시길 포기하시고 아버지께 순종하셨기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귀감이 되신 줄 믿습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는 어떤가요? 무엇을 생각하며 믿고 생활하나요?

내 영광, 내 유익, 내 편안, 내 주도권만 생각한다면 주님에 의해 다스려지고 믿노라 할 수 없습니다.

간구는 많아도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똑똑함과 믿음은 차원이 다르며 좋은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이어야 하고 그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는데서 시작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크리스챤은 현재 약 2000명입니다.

특히 유대들은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뜻인 만큼 크리스챤을 크리스챤이라 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챤은 ‘메시야의 사람들’이라는 고귀한 의미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라 부를까요? 히브리어로 ‘노스르’라고 부릅니다.

거기에는 ‘나사렛시골의 패거리’라는 비하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언제나 성도를 관찰하며 후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마리아와 요셉은 기독교 역사이래로 예수님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존숭을 받고 있으며 또 초대교회는 소

수였으나 크리스챤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결론) 구주성탄에 무엇을 생각할 수 있나요?

멸시와 천대를 받아드린 마리아와 요셉을 보며,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여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

신 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을,,그리고 부활하시 승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그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거룩히,, 담대히,, 최선으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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