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 (송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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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성탄절에 우울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어느 일가족 4명은 빚 때문에 부모가 어린 자녀 둘을 끌어안고 차에서 자살했고, 모 목사님이 역시 유서를 쓰고 차
안에서 자살했으니 삶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불행이었습니다.
1) 야베스
구약의 많은 인물 중 야베스는 그의 이름에서 출생의 비밀을 추론할 뿐 그의 소개는 생략되고 없습니다.
야베스는 ‘고통의아들’ 란 뜻인데 그를 낳을 때 그 어미가 난산했었는지, 환경인지 아님 불구였는지 몰라도 고통 중
에서 형제보다 귀중한 존재가 되었으니 훌륭합니다.
대상4: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그는 자신의 고통의 멍에를 신앙으로 역전시킨 승리의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오늘의 성경을 보십시오.
그는 크고도 거룩한 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기 보담은 지극히 평범한 개인적인 복을 간구했는데 하나님은 쾌히 응
답하셨습니다.
대상4:10) ~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무슨 생각이 듭니까? 평범한 성도의 평범한 기도 같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아주 관계가 좋은 성도로써 “아뢴다.” 했어도 실제는 부르짖은 기도였습니다.
남들처럼 고통의 문제로 걸려 넘어지고 쓰러진 것이 아니라 되레 하나님을 만나고 단단해진 신앙이 되었으니 하나
님께 거칠 것이 없는 화목한 성도요, 기도의 용사의 기도인 것입니다.
이 야베스의 기도응답의 뒷배가 궁금하신가요?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인정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인 줄 믿습니다.
야고보에서는 그 경건을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 이라 했고, 마가서
는 다음처럼 말씀했습니다.
미6:8) ~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여 네 하나님과 함
께 행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흔히 하나님을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시고 심판하시지만 감정에 치우침이 없이 율법과 복음에 근거하여 만민을,,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야베스가 편하게 하나님께 나아가고 속히 응답 받았음은 기도만 간절히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경건한 삶
이 동행했다는 방증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눈이 뜨여진 소경이 한말이 있습니다.
요9: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또 성자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 속 깊이 죄를 뉘우치는 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접근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이유로 교만한 자는 결코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성도 자신의 경건과 기도 없이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기도를 받으려고만 하는데 이는 잘못이고,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으려는 경건의 모양과 하나님의 동정유발은 그쳐야 합니다.
먼저 자신이 회개하고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이나 남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훌륭해도 ‘정의와 인자’ 라는 삶이 있어야 주의 능력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정의는 사회를 향한 선이고,,인자는 개인에게 향한 긍휼입니다.
작은 불꽃이 모이고 모여서 불신의 시대와 불신자에게 하나님나라의 영향력이 되는 것입니다.
정의와 인자를 어떻게 이룰까요? 그 본심과 목적은 무엇인가요?
지방의 모 교회가 재개발로 건축하다가 30% 과정을 남기고 건축회사가 부도를 냈습니다.
교회도 피해자인데 다른 업자들은 교회 와서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사채 3억5천만 원을 준비해서 나머지 공사를 할참이었는데 목사님이 주님의 마음에 순종하여 돈 달라는 업
자들에게 돈을 다 주어버렸습니다.
그 후 반전이 일어났는데 불교사업자가 공사비를 나중에 받기로 하고 공사를 해주는 등, 또 등록교인이 되었고, 이
런 좋은 소문도 얻어 성도들이 늘어났습니다.
흥부와 놀부는 형제라지만 제비다리를 고쳐준 목적이 달랐던 것처럼 경건의 모양은 사람의 평가를 의식해도 경건
의 능력은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기에 출발선이 다릅니다.
2) 예수님 안에서
성도는 언제나 그 시대의 아베스입니다.
하나님께 고통을 드리는 ‘고통의아들’ 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감사와 찬송이 열납 되는 것은 성도된 나의 행위가 완전하기 보다는 주님의 은혜가 크고 변함이 없어서입
니다.
이제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는 본 받아도 그 기도내용까지 본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주 안에 다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엡4:12)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러므로 주님이 주시는 복이 아니라 주님자체를 구하여야 합니다.
요즘 금값이 오르다 보니 사금채취가 유행입니다.
별장비나 기술 없이 어디서나 가능하다는데 실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간단하나마 장비를 구입하고 기술도 익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 찾기는 어떨까요?
첫째가 믿음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
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둘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는 일입니다.
아벨은 카인 보다 더 나은 제물로 제사하므로 그 증거를 받았고,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그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 의한 평가도 좋습니다.
작은 아이에게 한 행동이 주님께 한 행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감사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감사가 있습니다.
편안하고 평안함 속에서의 기도와 감사,,그리고 고난과 고통에서의 기도와 감사,,
누가 더 절실하고 더 감사할까요?
성도에게 감사는 고난과 함께 세상에서부터 천국 가는데 절대 필요의 두 바퀴인 것입니다.
고난을 통한 감사는 메아리가 되고 힘이 되어 하나님께 오르고 오르게 하지만, 반면 편안하고 평안함의 감사는 자
칫 태만과 불신으로 떨어지는 신앙위험을 초래하곤 합니다.
3) 송년주일
친구목사님이 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오늘 송년주일이 ‘실패 기념주일’로 예배한다는 교회포스터였습니다.
주제말씀은 시37:23~24 말씀이었는데 소개하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어떻게 보면‘실패 기념주일’ 보다는 ‘은혜 감사주일’이 더 맞습니다.
위의 말씀대로 라면 성도된 나의 안전보장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누구에게나 다사다난 했던 한해였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의정갈등, 그리고 비상계엄, 세계적으로는 여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또 러시아와 우크
라이나의 전쟁과 북한 인민군의 참전, 트럼프의 미국대통령 당선 등,,
저의 개인적으로는 장모님의 별세, 두 손주들의 탄생, 교회적으로는 작아도 흔들림 없는 일,
이 모든 것이 주 다스리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찾은 성경구절이 바로 ‘합력하여 선’이라니 사는 일이 다 비슷했기에 위안이 됩니다.
성도의 이런 모든 일들이 은혜의 주 다스리심 속에서 있습니다.
자율자동차가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머지않아 완전한 자율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운전자 기능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심정으로 한 해를 살았습니다.
내가 기사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쩌지 못한 일이 더 많으니 주님이 기사라는 말도 맞습니다,
결론) 그렇다면 여기에 빠지지 말아야할 신앙적 고백과 인간적 고백이 있습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은혜주시고 함께 살아주셔서 살았습니다.
여보,, 아들,,딸,, 성도들끼리,, 함께 살아주고 힘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대가 어려웠는데 정치 불안으로 계엄우울증이라는 사회적 증세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고통의아들’ 야베스도 삶의 반전을 이루었으니 은혜 안에 우리도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은혜와 주변 이들의 호의에 감사로 마무리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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