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종류의 사람들(추수감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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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년도 추수감사주일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감사가 일상적이어야 옳습니다.
주님은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고,
또 “골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하셨기 때문입니다.
동물과 사람의 차이,,나아가 우리 기독인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는 물론이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어야 하니 신앙호흡인 것입니다.
1) 추수 때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은 무엇을 뿌렸고 얼마나 거둘 수 있나요?
농사짓는 분들은 올해가 이상기온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모든 분야가 힘들었고,,지금도 좋지 못한 성과들을 얻고 있습니다.
폐업이 많고, 주식은 형편없이 곤두박질하고, 기업은 구조조정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는 추수 때의 소득이 있어서만이 아닌,, 범사에 감사하며 또 소망 중에 인내할 수 있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흉작이 있으면 풍작도 있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의 질서여서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너나없이 우리의 삶의 추수 때가 1년 더 가까이 왔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그날을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지금 무엇을 땀 흘리고 울며 무엇을 뿌리느냐에 따라서 훗날,, 1달
후, 1년 후,,아님 후손이거나 내가 천국에서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옛 어른들은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 나무로 시집갈 때 옷장을 만들어 보내기 위해서랍니다.
현대는 오동나무 대신 후손들의 명의로 주식이나 부동산을 넘겨주는 부자조상들도 많다지만
성도는 더 나은 신령함을 누릴 수 있는 경건의 능력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궁창의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이키는데 영향력을 발휘해야 합니
다.
지난 주간에 모대학교교정에 세워지는 김 목사님 흉상감사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생전의 삶을 기념하려는 여러 일들이 많았지만 흉상은 처음이었습니다.
30년 전 그 학교가 어려울 때 설립자가 목사님을 찾아 왔었고,,목사님은 대학이라서 힘껏 도왔는데 지금은 외국인
학생들이 많은 만큼 장학금을 보낸다고 해서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언제가 사람은 떠나고,, 흉상도 묻히고,,그럼에도 이름과 후학들은 남겨져서 당신의 유지를 받들 줄 믿습니다.
2) 5종류의 사람,
주님은 기독신앙이 무엇인가를,, 한 율법사와의 대화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눅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
어떻게 그 이웃으로써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 강도가 나옵니다.
말 그대로 자기 살겠다고 남의 것을 빼앗고 심지어 죽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강도가 얼마나 많은지요?
남의 불행을 자신의 성공이라 여겨서 음해하고 공작하는 개인, 단체, 기업, 정치입니다.
* 강도만난 사람이 나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일 강도를 만나 수 있는 모든 산사람입니다.
보십시오, 한 군인이 동료여성을 살해했습니다.
그 가족은 어떨까요? 남겨진 군인의 가족은 어떨까요?
* 믿음소망사랑을 말하는 종교인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은 강도만난 자를 피했습니다.
작년부터 북한이 사납게 나오기에 북한어린이돕기를 그만하려 했습니다.
돕는다며 아쉬운 소리하는 일도 싫고,,북한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그런데 다시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은 본
문의 제사장과 서기관이 떠올랐고,,북한의 저 어린이들은 강도 만난 이웃임을 다시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 여관주인이 있습니다.
돈 만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마음이나 진리 보다는 경제논리로써 돈만큼만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눅10:36) ~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 어떤 사마리아인이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탄인 본족인 가나안 족속과 혼혈된 족속입니다.
이스라엘이 절대 상종도 하지 않는 무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달랐습니다.
강도만난 자를 “불쌍히 여겼고”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리고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이 사람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아니라 형제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요지는 “너도 이와 같이 하라”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인가요? 심지 않고 거둔다면 강도요, 심었지만 뺏겼다면 강도만난 자요,
심는 대로 거둔다면 여관 주인이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다면 제사장과 레위인이요,
많이 심고 많이 거둔다면 사마리아인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그네는 주님의 완전한 모형이기도 하고 성도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이 많아야 세상이 살 만할까요?
3) 추수의 결실
강도가 없는 세상일까요?
예배당에서 밤낮 부르짖고 기도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많아야 할까요?
책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여관주인 같은 상공인이 많아야 할까요?
아님 강도 만났던 자를 불쌍히 여기고 주머니를 털어 도운 사마리아인이 많아야 할까요?
모두가 탐욕의 이기심과, 종교와, 경제는 십자가에 묻고 주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고 참 성도로 살아야 합니다.
빌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
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시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
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곡식을 떠는 소에게 입마개를 씌우지 않으심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종들도 복음으로 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장군장로님과 종종 만나곤 합니다.
이번에는 부인 권사님의 치료비를 물어보았습니다.
간병인비가 제일 컸고, 치료비 그리고 1인 입원실비, 기타 구입비등,,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했더니,,
놀랍게도 지금껏 다 채워졌다면서,,하나님의 은혜가 크다고 했습니다.
미국에 계신 80넘은 누나들이 보내오시고,,많은 분들이 함께하신답니다.
장로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놀랄거에요, 내가 십일조를 많이 내니,,”
장로님은 이런 치료후원금도 수입이기에 구별해서 드린 것입니다.
수년 전에는 아들아이 결혼식에 축의금도 십일조를 드렸던 것을 제가 기억합니다.
장로님은 늘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에게 믿음으로 드리고 공궤했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받는 일에 익숙하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반대여야 합니다.
십일조는 사용하고 남는 데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수입전체에서 먼저 드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헌금이기 때문
이고, 감사는 가장 겸손하고 긍정적인 신앙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무엇을 결실할 수 있나요?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비오는 날 신발가게에 한 노숙인이 들어왔는데 주인은 불어터진 발을 보고 양말과 신발을 선물했고, 그리고 며칠
후 그 노숙인이 깔끔한 모습으로 찾아와서 인사를 하면서 희망을 얻고 다시 살기로 했다면서,,주민증도 만들었으
니 취직하면 신발값을 되갚겠다면서,,인사하는 동영상이 돌았습니다.
우리 삶과 신앙에는 이런 감동과 추수의 결실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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