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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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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12-15 10:29 조회 10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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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브라질에서 로또1등으로 당첨된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첨금 470억 원을 받은 후 24일 만에 갑자기 죽었으니 행복한 충격이었나 봅니다.

 

1) 그러나

우리 성경은 원어성경에서 많이 사용한 접속부사가 거의 생략되었습니다.

자연 앞문장과 뒷문장이 이어지지 않고 독립적인 문장이 되어 어느 한 구절을 끄집어 사용하는 이단과 사이비가 비

집고 들어오는 틈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종전의 성경에서도 뺐던 ‘그런데’로 시작했습니다.

앞의 문장과,, 사건과 일관된,, 그러나 반대적 의미를 준 것입니다.

성경해석에서 이런 차이를 발견하거나 알면 재미도 있고 더 확실한 계시를 얻습니다.

 

앞의 문장과 사건은 무엇인가요? 성전에서의 문제는 하나님과 제사 보다 젯밥에 더 관심을 가진 타락한 유대교지

도자들의 실상을 폭로했습니다.

또 더 나아가면 가나혼인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사건이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은 결이 전혀 다르지만 실제는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결핍입니다.

혼인집은 포도주가 떨어져 기쁨이 결핍되었고, 성전의 타락은 유대교지도자들의 경건의 결핍으로 거룩의 결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결핍은 당시 유대교의 민낯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이 모든 결핍이 주님으로부터 새로워지는 충만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니고데모가 이 모든 결핍과 충만을 다시 재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누군가요?

요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네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바리새인은 정통적 유대교신앙인인데 그는 또 산헤드린 지도자랍니다.

요즘으로 치면 국회의원급의 신분입니다.

그런 그를 주님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런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셨으니,, 부러운 대상일지언정 복음에 대해

서는 맹인인 셈입니다.

그런 그가 밤에 주님을 은밀히 찾아왔으니,,그에게 결핍이 있었고, 충만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요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마치 겉은 그럴싸해도 실제는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집이요, 거룩한 듯해도 무너져야 할 성전과 같은 능력 없는 신

앙인으로 온 것입니다.

 

2) 만남

그러나 여기에 그의 희망이 있습니다.

밤이라 할지라도 문제,, 결핍을 갖고 주님께 나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나 누군가의 팔에 이끌려서가 아닌 자발적이었습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남들은 다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본인만 아니라며 부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는 두려움이거나 무지 탓입니다.

또 반면 문제를 알고 그 문제의 해결하고자 스스로 의지를 발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문제해결은 누구에게 주어질까요? 후자인데 니고데모가 그랬습니다.

 

그의 결핍이 주님의 표적일 수도 있고 실제 주님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결핍이냐”, “무엇이 궁금함이냐” 가 아니라 주님께 왔다는 본질입니다.

전통적인 유대교파요, 지식인이요, 권위도 있는,,

소위 아쉬울 것이 없는 모든 것의 부자인 그가 혼자 밤에 와서 “랍비여” 했으니 어떤가요?

 

이 모습을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노라 하는 대학병원의 내과 전문의 박사가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동안 여기저기 치료를 했어도 낫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골의 30대 젊은 한의사가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을 만났고 영생을 얻었으며 마침내 예수님의 제자도 되었습니다.

훗날 주님이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시자 공개적으로 그 시체를 달라하여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쌌었습니다.

요19:39~40)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

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삶에 있어서 여러 만남이 있다지만 주님을 구주로 만난 삶이야말로 가장 복 있는 삶임을 누려야합니다.

목사아버지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목사 되기를 바라는 일이 여기에 있습니다.

무당과 스님은 그렇지 않은데 비해 오직 목사만이 그러는 이 차이가 무엇일까요?

며칠 전 내가 친구에게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 내가 주님을 만난 후 달라진 것 있습니다. 죄 사함 받았고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 자녀된 자긍심도 생겨 자존감이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다가 로마서 8:1의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

라의 말씀에서 내 어깨의 멍에가 벗겨지는 감도 경험했습니다. 물론 죽을 때 가보아야 하겠지만 그런 죽음과 고난

을 이길 힘이 주어졌습니다. 또한 믿음이후 매사에 긍정적임도 생겨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3) 거듭남

주님은 이런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을 말씀하셨습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물었습니다.

요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

사옵니까

니고데모의 질문에 주님은 또 대답해 주셨습니다.

요3:5~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

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

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첫째, 거듭남이 무엇인가요?

거듭남은 육체적이고 사회적인 두 번째 출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성령에 의한 영적이고 신비한 출생입니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니라

여기에 ‘나’라는 주체는 전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하시는 신비한 일이 어느 날 내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나부터 내가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일입니다.

 

‘줄탁동시’라는 말을 아시나요?

알 속에 있는 새끼가 껍질을 두드리면 밖의 어미가 동시에 껍질을 깨주는 일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이와 비슷해도 다릅니다.

내게 구주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주시면 내가 비로써 그 믿음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느끼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다른 성도와 동일한 성질입니다.

아까 제가 친구에게 고백했다는 그 고백이고 특성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입성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구소련의 첫 우주인이 우주에 나가서 첫 번째로 외친 말이 “신은 없다”였습니다.

그는 스카이에 올랐을 뿐 헤이븐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거듭나지 않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나면 땅에서도,,꽃에서도 천국을 보며 그 나라를 흠모하게 됩니다.

 

주님의 승천은 하늘이 아닌 천국이었기에 우리도 장차 들어갈 곳입니다.

요3:13~13~15)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뱀을 든 것 같

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거듭남은 우리 신앙의 전체이고 주님도 이 일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결론) 거듭남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서 새 성향을 갖는 출생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생명은 어떻게 받나요?

예수께서 나의 구세주로 믿고 고백할 때 그분의 생명이 밖에서부터 내 안으로 주입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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