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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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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09-15 08:38 조회 14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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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이란 말이 여럿이 있지만 기독교에서의 송영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드리느냐 할 때 예배는 물론 삶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잊고 있다면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영광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려야 할 사명자이기 때문입니다.

 

1) 영광을 돌리는 성도

보십시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짧은 이 말씀에는 우리를 향한 목적과 의미가 담겨져 있고,, 에베소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엡1:5~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흔히“믿음이 좋다”또는 “성령 충만하다”하는데, 실제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이 목적과

목표가 과연 얼마큼이냐,,어떤 자세로 일관했느냐 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소명을 받았던 시절 “이 사명을 이루는데 자기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노라” 했었는데

그는 과연 그랬기에 후대가 우러러 보고 닮습니다.

또한 더 한 인물이 있었는데 주님이십니다.

히2:18~3:1)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를 깊이 생각하라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은 나의 전 생애의 모든 것으로서 인격적이며, 생활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합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기독교역사에서 많은 인물들은 죽었으나 믿고 살았던 삶으로서 지금

도 영광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히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

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그렇다면 성도의 도전과 꿈은 어때야 될까요?

편협적이고, 이기적이고, 감정적이고, 물질적인데서 초월하여,,

원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에 뜻을 향하고 최선을 다하는 성도여야 합니다.

여기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가 사는 주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로마서의 많은 등장인물들이 다 그랬던 성도들입니다.

노예출신도 그랬고, 쌍둥이 자매도 그랬고(15, 네레오와 그의 자매 올를바와) 아프리카계도 그랬고(13, 루포와 그

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유력한 형제성도도 그랬습니다.(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 이름으로만

보아서도 각계각층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이룬 듯합니다.

롬16: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 지어다

아멘

 

2)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완전하신 신이시기에 스스로 영광을 취하시는 분이시지만,,

자녀된 성도가 드리는 자의적이고 인격적인 영광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도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사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

하리라

감사하고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왜 감사한가요?

내가 드린 작은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며 기억하시니 좋고,, 두려운 것은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가로 챘

다면,,하나님은 그 영광을 찾고자 나를 공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행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권세 등등한 왕이 벌레에게 먹혀 즉사했다는 불행한 기적의 말씀입니다.

왜요? 헤롯의 연설이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만류하며 나는 신이 아니라 했어야 옳은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어땠나요? 앉은뱅이를 고쳤더니 사람들이 난리가 났었습니다.

행14: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에르메스라 하더라

이때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으며 소리 질러 적극적으로 만류했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천사를 보고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고 절을 하고자했을 때 천사는 만류했습니다.

이처럼 바른 영광이야 말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천사는 천사대로, 성도는 성도다워지는 줄 믿습니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오페라 토스카공연에서 남자주인공이 혼자 노래하니 앵콜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지휘자가 반복에서 노래를 하도록 부추켰습니다.

이때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인 여주인공인 나와서 시간이 없다는 제스츄어로 제지했고,

연이어 지휘자에게 다가가서도 항의를 했답니다.

그래도 앵콜이 그치지 않자 무대에 나서서 “ 죄송하지만 이것은 리사이틀이 아니고 공연입니다, 고맙습니다.” 하며

무대를 떠났답니다.

이 일로 인해 3000명의 관객들이 상처를 입었다고 하니 이 일에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리의 격을 보여주었습니다.

사고 후의 얘기가 오페라 공연도중 앵콜은 없어야 되고,, 또 그렇게 계약을 했답니다.

문제의 여가수는 약속을 지킨 건데 그만 자신과 공연이미지와 손실이 큰 사고가 되었습니다.

결국 동서양의 문화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3) 복음의 영광

이처럼 문화차이가 없는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의 제일은 무엇일까요?

자발적인 영광을 드리며 성경적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

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나의 복음이 무엇인가요?

사도 바울이 만든 신학적이고, 철학적이고, 경험적인 신비한 사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으로 부터 구약의 모든

성경과 선지자들과 역사를 통해서 계시되고 마침내 자기에게도 주어진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나아가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구원의 능력입니다.

롬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나타나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러므로 이 계시를 믿고 전파할 때 가장 복음의 영광이 드러나는 줄 믿습니다.

 

또한 27절에서는 영광의 근거가 나옵니다.

‘오직 한분이신 지혜로우신 하나님’ 직역하면 ‘유일하시고 가장 지혜로우신 하나님’ 이십니다.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가장 지혜로우시며 인류 구속을 위한,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계획인 ‘예수그리스도를 통

하여’ 이루셨고 영광역시 그분으로만 통하여 상달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영광의 대상은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믿음에 굳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26절) ~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로마서는 이 송영을 위한 편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믿느냐 왜 믿느냐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결정 짓기 때문입니다.

롬1:1~2)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바른 신지식이 있어야 바른 송영을 드리지 않겠나요?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서신의 끝맺음을 하려다 또다시 길게 늘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 바울의 여러 서신을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롬11:36 는 물론, 롬15: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이처럼 편지 중에 하나님이 등장하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아멘“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만한 지식과 믿음으로 우러나온 송영입니다.

우리는 생시나 꿈속이나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며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할 수 있기를 소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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