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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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공중급유기가 작은 전투기에게 급유관을 내려서 연료를 공급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땅이 아닌 공중에서, 정지상태가 아닌 비행상태에서 급유를 한다는 기술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싸인이 상호 맞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거룩하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은혜를 어떻게 주실까요? 땅의 성도들은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곧 믿음인데 성도가 화답하는 최상의 태도입니다.
이 태도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1) 아브라함
4장은 “왜,, 믿음의 의냐?”가 주제입니다.
율법은 구원의 방편이 아니고 오직 믿음만이 구원의 방편임을 다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 근거가 아브라함이고 그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누구인가요? 이스라엘의 조상이고 모든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원조이고 보니 율법이 이스라엘민족에게 주어지기 전에,,즉 율법의 효력이 미치기도 전에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았던 인물이기에 모든 믿음의 아버지가 됩니다.
롬4:10) 그런 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러므로 그의 믿음은 민족과 시대를 초월하게 된 것입니다.
롬4: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잘나고 똑똑해서 그 길을 찾아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부르셨고, 믿음을 갖도록 인도하심입니다.
롬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어디서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 행위로써 이룩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자기를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써 되어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있습니다.
롬4:1)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나요?
롬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좀 더 구체적인 믿음의 내용으로는,
롬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본토친척아비 집을 떠나라 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떠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나그네들이 지나가기에 잘 대접했더니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년 이맘때쯤 아들이 태어난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부부는 늙은 만큼 실감이 나지 않았기에 부인 사라는 그 말에 웃기도 하였지만 실제 아들은 말씀대로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이 좀 자라자 하나님은 또 계시하시길 독자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하나님으로 믿고 여기에도 순종하였습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
왜 그랬을까요?
믿음이라는 것은 계속 파생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시고 선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으니 계속 믿음의 단련은 왔지만,,그 믿음은 또 보다 더 큰 믿음의 자리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2)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경외하며, 사랑하는 만큼 믿음이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둘째는,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22:17)
여기서 네 씨가 크게 번성한다는 의미는 육체의 후손만이 아닌 믿음의 후손도 나타남이며,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하심은 구세주의 탄생을 의미하였는데 그대로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또 큰 복인데,,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은 큰 복이며,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도둑이 훔쳐가지 못하는 신령한 복이고 죄 사함과 영생과 하나님 자녀된 복인 줄로 믿어야 됩니다.
롬4:19~22)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의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러므로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효능은 여전하고 확실합니다.
하나님을 지금도 성경에 계시해 주셨기에 믿어야 합니다.
또 아브라함은 미래의 일에 계시를 받아 믿었다면, 우리는 이미 되어진 일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 믿어야 합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롬4:23~25)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먼저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과 사랑이심과 의롭고 선하심을 믿어야 예수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도 나를 위한 나의 사건으로 믿게 됩니다.
복음적인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내게로 임하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기독교라 할지라도 나부터 출발하기에 항상 그릇됩니다.
내가 늙거나 병 들거나 아님 변질 되거나 움직이거나 생각도 못하면 멈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는 변함이 없기에 안전합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시23:6)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강이 둘도 함께 못 박혔습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아냥거렸고 한 강도는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며 뻔뻔하게 의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내치시기 보다는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희망이 되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절망은 없어집니다.
롬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예수님께서 강도에게 값없이 베푸심이 은혜이고 그 은혜를 받은 강도에게는 믿음입니다.
결론) 흔히 뛰는 자 보다는 나는 자가 난 자입니다.
그렇다면 그 등에 업힌 자는 어떨까요? 최고의 난자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민족을 독수리날개로 업어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즉 은혜로 인도하셨다는 말씀인데 지금도 그렇게 하시는 줄로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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