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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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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06-22 23:20 조회 14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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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 그렇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아이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드는 일을 많이 겪습니다.

신앙에도 그럴 수 있습니다.

 

1) 열심

사울이라는 청년이 그랬습니다.

사울은 유대교에서 힘써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정통적인 율법주의자로서, 그것이 진리인 냥 기독교를 박해하는 열성분자까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책망하셨습니다.

행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

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가시채는 막대기 끝에 쇠가 구부러진 도구라서 앞으로는 가도 뒤로는 갈 수 없습니다.

마치 뱀이 휘어진 비늘로 앞으로는 가도 뒤로는 못가는 경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가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뒤로 가는 일은 부자유스런 일입니다.

 

무엇이든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자연스러움이 열매라면 부자연스러움은 연기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율법주의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열심적 신앙이 열매가 아니라 의도된 겉치레 연기라서 그렇습니다.

이 연기가 외식이며 겉치레니 억지로 힘들게 가는 고생길인 것입니다.

같은 고생이라도 생명의 좁은 길을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고생신앙이 됩니다.

 

좋아서 사는 부부와 정략으로 사는 부부,, 또 나 좋아서 하는 일과 돈벌이로 하는 일,,

무서워서 법을 지키는 일과 좋아서 지키는 일,,,누가 더 힘들까요?

 

주님은 이 속내를 아셨기에 사울에게 가시채로 뒷걸음하기에 고생이라 하셨고, 사울역시 그 생활의 깊은 경험자이

기에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자기 민족을 측은하게 여긴 것입니다.

롬10:2~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

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 하나님지식, 믿음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또 알만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믿음이 오면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고 기꺼이 즐거워하는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

로 말미암아 된 것이니라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

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마치 현미경, 망원경, 돋보기, 또 상황에 맞는 여러 색안경이 있어 세상을 보기도 하며 살피듯이 믿음은 영적인 일

들과 미래적인 상황과 지혜를 바르게 알게 해줍니다.

히11:1~2) 믿음은 바른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

라

 

우리가 미물이라는 곤충이나 새나 동물들을 조금만 관찰해 보면 느끼는 게 있습니다.

오죽하면 “너희는 개미들에게 가서 배우라” 했나요?

미물들의 지혜는 배워서 얻은 지식이 보다 하나님이 애당초 주입하신 지혜가 더 큽니다,

그래서 태어남과 동시에 생존할 수 있고,

짝을 만나 사랑하며 가정을 이루고, 새끼까지 낳고 사는 것입니다.

자연의 신비라고 하지만 실제는 하나님신비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믿음은 성도에게만 주신 특별한 촉수이고, 능력이며 지혜입니다.

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이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오고, 또 성령님이 임하시면 믿음도 함께 임하여서

자라고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크고 작은 여러 고난들도 보너스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힘써 알자” 했고,

신약에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했으니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열심 보다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을 반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열심만은 헛수고가 될 수 있고 가시채로 뒷걸음치는 신앙이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바른 지식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하셨습니다,

“아는 것” 경험된 믿음이기에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 구주를 사랑하면 할수록 하나님경외가 되고 주의계명을 세우는 신앙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의 기독신앙은 어떤 조건 없이,, 쉽기에 누구에게나 열린 문이 됩니다.

 

이단과 사이비와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저들은 주로 성경의 예언서를 강조하며 가르칩니다.

무엇은 무엇이고,,, 과연 그럴까요?

또 무엇을 들었네 보았네 하며 개인의 경험을 앞세웁니다.

마치 자신들만이 계시가 임하고,, 성경에 정통한 듯,

구원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권위를 앞세우는데 허세입니다.

이때를 위해서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첫째는 말세에는 이런 미혹하는 자가 많다는 경고요,

둘째는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망한다는 경고입니다.

벧후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

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명망에 이르느니라

 

3) 성경을 믿음

물론 성경에는 알기 어려운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의 6과 7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풀어주는 교사가 있고 설교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성경은 군대의 암호문 같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고 나중에 제자들에게 뜻을 해석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귀에게는 비밀히 하시고 하나님아들들에게는 밝히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말씀하면서 인용하신 6절과 7절은 무슨 뜻인가요?

성경적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참 믿음은 구세주를 찾아 하늘에 오르거나,,

지옥으로 내려 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오직 현재 전파되는 믿음의 말씀인 복음을 믿으면 구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롬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면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

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좋은 믿음을 사모하십시오,

교과서인 성경을 보시고,, 참고서인 경건서적이나 설교를 잘 들으십시오.

성경을 기록하신 이가 성령님이시기에 읽거나 들을 때 성령님이 함께하심을 경험할 것이고,

또 당장은 몰라도 나중에 생각나고 깨닫게 되는 일들도 많이 생기게 됩니다.

성경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가 많은데,,

곧 나를 향하신 말씀인 줄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은 여러 곳에 선교하지만 특히 북한 동포에게는 연민을 품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마다 북한의 자유와 양식과 인권도 구하지만,

제일은 “저들에게도 복음을 듣게 하소서”하며 기도합니다.

또 불신가족이나 친구를 향해서도 연민을 갖고 “회개하여 복음을 믿게 하소서” 합니다.

이런 연민과 기도는 내게 주님이 주신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은 좋아야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또 큰 믿음은 큰일들을 이루는데 유용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요?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함 까지 자라야 하고 건강해야 됩니다.

 

결론) 바른 믿음은 바른 지식과 바른 열심을 만들어냅니다.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시키신 덕분인 줄 믿어서입니다.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느니라

종교개혁을 이룬 마틴루터는 가시채신앙이었습니다.

고행을 통해서 죄사함의 구원을 이루는 줄 알았기에 성당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랐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믿음의 말씀이 마음에서 들려져,,

주님의 보혈이 내 모든 죄악에서 씻어주셨다는 확신적 신앙이 된 것입니다.

성도는 이 믿음으로 거룩한 삶을 이루며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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