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 > 설교말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07-14 07:30 조회 135회 댓글 0건

본문

요즘 다윤이가 말을 배우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와우,,” 했다가, “와우,, 맜있다.” 이제는 시원한 물을 먹고 나서는 “이거지,,이거” 하며, 

또 “야후 ,,신난다.” 합니다.

이처럼 부정적인 말 보다 감탄을 하니 듣기에도 좋습니다.

 

1) 깊도다.

여러분은 언제 감탄하셨나요?

장엄한 우주나 자연 앞에서의 감탄과,

거대한 만리장성이나 인천대교를 지나면서 감탄은,, 비슷해도 실제는 다릅니다.

우주나 자연을 향한 감탄은 경이로움이고,

만리장성이나 인천대교에서의 감탄은 놀람에 불과합니다.

신앙에는 경이로움이 많아야 좋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탄은 찬양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 곳곳에 이런 경이로움과 감탄이 참 많은데,, 사도바울 역시 그런 믿음이기도 합니다.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

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

지어다

 

지금 사도바울은 열방의 구원을 위하여 이방인을 먼저 부르시고, 구원의 피날레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남겨 놓으신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놀라워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비슷하게는 한국교회의 애창곡인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가 있습니다.

불신자는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없기에 “나 같은 죄인이 뭐야?” 하고,,“주 은혜가 놀라워?” 하며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죄인 되었던 나는, 구원받은 나는 공짜구원이라지만 그 대속의 값을 알기에 감격하고, 나의 죄를 알면 알수

록 상대적인 은혜의 크기를 알게 되어 놀라게 되고,, 마침내 찬송을 작사 작곡도 하고, 애창도 하고, 헌신도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이 구원인데 이 구원에 관한 경이로운 신비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완전하신 하나님지혜와 섭리에 능력에 의한 구원이라서 그렇습니다.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구원에 관한 만인만색이라지만 실제는 만인일색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차별도 없이 다 동등하고 동일한 구원이어서 그렇습니다.

먼저 구원 받은 이방인과 나중에 구원 받을 이스라엘은 차별이 없고,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차이가 없고, 구원의 때

에 따라 차등이 없고, 방법도 오직 믿음으로 한가지입니다.

롬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얻게 하

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사람이 무엇을 해서 얻은 구원이 아닌, 오직 주의 택하심과 부르심으로만 주어진 선물이기

에 “누가 주께 드려서 갚으심” 이 애당초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롬11:34~35)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2) 차이

사람은 본성으로 이기심이 있기에 나 살기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래서 신앙에도 공을 드리고 많이 바치면 복을 받는다는 기복과 마침내 기복주의도 생긴 것입니다.

기독신앙이 여기에 익숙하면 사이비에 빠지게 되므로 기독교는 이를 초월해야 합니다.

구원에 관한 아무 공로나 어떤 바침이 절대필요 없습니다.

오직 겨자씨 같은 믿음으로나마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드리면 됩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백성으로의, 하나님 자녀된 윤리가 있습니다.

성숙할수록, 건강할수록, 자원함으로, 이타적으로 되고 마침내 칭송을 받게 되는 자태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

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또 성도의 몸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이라고도 했으니 같은 뜻입니다.

 

요즘은 교회당이 성전이나 예배당이란 개념 보다는,,,ㅇㅇ홀,,홀 개념이라서 다용도 홀이나, 지역민을 위한답시

고 개방이 되고 있어도 예배에 관한 본래의 목적은 보존해야 합니다.

성도의 몸도 마찬가지로 예배용답게 의의 병기로 주님께 드려야 하는데,,

자칫 다용도가 되어 죄의 병기로도 사용한 후 주일에만 예배용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유와 방종은 엄연히 다르지 않나요? 이 구별이 지켜져야 합니다.

 

군부대를 나오면서 아들 같은 후배목사님에게 딱 두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부대를 잘 섬기세요.” 또 “기독장병기도회에서는 부대교회 이름으로 꼭 헌금을 드리세요.”

이유가 있습니다.

부대교회는 부대 안에 있는 만큼 부대에 유익을 주어야 해서 그랬고, 헌금은 하나님께 드림인데,, 기도회든,, 예배

든 이런 드림의 모습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부대라지만 예배가 있던 기도회에는 헌금순서가 없었고, 담임목사이임식에는 온갖 선물과 축하가 있

었기에 하나님께서 사람행사에 들러리가 된 듯해서 죄송했습니다,

교회는 기독교를 지켜야 하고, 예배를 보호해야 하며, 목사와 성도는 그 지킴이로써 확실히 해야 합니다.

 

최근 식사자리에서 내가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모자를 벗고 기도했더니 한 동석자가 “기도할 때 모자를 벗어야 되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뭐라고 답을 했을까요?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는 것처럼 인사할 때도 모자를 벗잖아요? 

그 예의를 하나님께 차리는 것입니다.” 했습니다.

내 작은 행동이 기도와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을 존중하게 된 줄 믿습니다.

 

3) 만물의 주인

그동안 “하나님” 이라던 사도바울이 이제는 “주께서” 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본 뜻은 같지만 그 의미는 다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

지어다 아멘

 

부부나 친구와 농담을 하다가도 어느 때는 정색할 때가 있잖나요?

생각 따라 시선이 옮겨진 경우입니다.

그동안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 등을 말했기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하며 경이

로움의 감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주적인 창조와 운행과 심판의 하나님께로 옮겨갔기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

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 하며 송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외하나요?

우리아버지요, 또 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하나님이요, 곧 내 아버지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주가 되시나요? 만물의 주가 되시고 나의 주님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자칫 편협된 하나님, 나만을 위하시는 주님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입니다.

 

집이나 자동차에 기본생각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집과 자동차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바른 지식은 성경적 신론이고 주님은 기독론이고, 구원론입니다,.

성경이 교과서이고 그 성경은 성령님이 기록하셨기에 성령님을 통해서만 믿고 깨달을 수 있음이 성경을 알고 믿는

기본자세입니다.

 

믿음은 굳건해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이 정금된 믿음인데 역경과 박해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고,,

시냇가의 나무처럼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네팔선교사가 방송 후원금이 들어왔고,,버스를 사라며 거금이 들어왔답니다.

모르는 그 헌금자의 믿음이 멋져 보였는데 그가 주님께 순종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난할 수도 있고, 부자일 수도 있고, 죽을병에 걸릴 수도 있고, 아님 나은 성도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

신이 아닌 생면부지의 네팔에서의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한 믿음입니다.

 

결론)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믿음은 믿음을 낳고,,헤아림은 헤아림을 낳고 나눔과 섬김은 나눔과 섬김을 낳는다는 사실과 진실입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에는 후회 없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이 있음을 명심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