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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과 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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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03-26 13:15 조회 211회 댓글 0건

본문

사람은 누구나 사소한 것도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삽니다.

결국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자신은 물론 국가나 민족 가정이나 기업에 흥망을 줍니다.

이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의 본문에서 계시하는 내용입니다.

 

1) 아브람과 롯

이 둘은 아브람이 어른이고 롯은 조카로써 아브람이 고향을 떠나올 때부터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소유가 많아져서,, 양치는 목자들 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아브람의 어른다움으로 해결의지와 방법을 제시했기에 멋진 이별을 만들게 됩니다.

창13;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

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의 성숙함과 온유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른으로서의 선택권을 양보함,, 온유한 모습이고 참 신앙적 모습입니다.

정욕적이고 속물적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여유이고 사랑입니다.

그러나 롯의 선택을 보십시오.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

하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고 같았더라

 

이 선택에 큰 의미를 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 중요한 선택 앞에 진중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진작에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습이 롯의 인격이고 신앙이라면 믿겠나요?

보이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거기에 마음을 뺏기는 것,, 일반적인 세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모든 교육과 훈련은 바로 이런 곳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싼 돈 들여서 공부하는 이유와 좋은 인맥을 만드는 이유가 이런 성공과 출세 아닌가요?

 

한 예로 과학고출신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받은 장학금을 반납하고서라도 의대로 많이 옮긴답니다.

또 의사되어서도 힘든 과 보다는 비교적 편한 과를 희망한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결국 생명구함에 귀결되는 과 의사는 부족현상이 일어나고 지방보건소에는 의사흉년이 들어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

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결국은 돈인 것입니다.

자본주의답게 돈이 성공이고 목적이고 명예이고 출세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을 보십시오.

아니 롯과 상반된 아브람의 땅의 모습이 나옵니다.

창13: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성경은 아브람은 “땅” 으로 롯은 “도시로 구별해서 기록했는데 그 차이를 아시겠나요?

모르긴 해도 이 탓에 아브람의 부인 사라는 속상했을 것이고 롯의 부인은 살맛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독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창13: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은 현명한 듯 했지만 미련했고 어리석음의 결과를 초래했는데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이었는데 육신의 안목과 정욕

의 안목과 이생의 자랑의 결국이었습니다.

 

아니 그전에도 이런 망함의 징조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는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기에 주변 국가들의 화약고였고,,이들의 전쟁에서 롯이 포로된 것을 아브

람이 찾아와서 살아났던 것입니다.

창14: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2) 아브람의 선택

그렇다면 아브람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었고 현재의 풍요가 아니라 미래였습니다.

 

과거 롯과 함께 머물렀던 그 땅에서의 모습을 보십시오.

창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처럼 평소에도 아브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결정적인 때에도 보이는 땅과 자신의 판단이나 결정보다 더

신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늘 강조하지만 믿어야 신뢰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게 어떻게 화답하셨나요? 믿음으로 사니 하늘위로가 임했습니다.

창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족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이런 은혜에 아브람의 모습을 또 보십시오,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람은 양도 치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배자였기에 있는 곳에서 제단을 쌓았고,, 또 순례자였기에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나아가는 사명도 잊

지 않았던 것입니다.

 

며칠 전 유치원선생님으로부터 기도부탁을 받았습니다.

시아버님이 장로님인데 친동생과 사업을 하다가 분쟁이 생겨 재판까지 하며, 이 모습에 자신의 남편은 교회가기를 거

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형제들이 둘 다 롯인 것은 맞아보였습니다.

자신을 잊어버리면 타락이고 변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한 인재육성가는 “50부터 뻗어가는 사람, 시들어 가는 사람” 책에서 다섯가지 인생 모습을 소개했습니다.

* 숙명/ 깃드는 명이랍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깃들어서 바꿀 수 없는 상황인데 부모, 성별, 국적, 신체 등,

* 운명/ 흐르는 명,, 곧 흘러가는 상황으로 표류할 것인가? 흘러갈 것인가? 하여 내가 결정하는 만큼 달라지는 모습입니다.

찬송가 460장은 이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 듯이 주 뜻이 이뤄

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 사명/ 쓰는 명입니다.

무엇을 위해 이 목숨을 사용할 것인가? 성찰하고 실천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꿈과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도 자기 입과 배만을 위해서는 살지 말아야 합니다.

 

* 천명/ 부여 받은 명입니다.

운명과 사명이 인간이 생각하는 삶이라면 천명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바라는 나의 모습입니다.

문어, 오징어, 낙지, 쭈구미, 꼴뚜기 등은 생긴 것이 비슷해도 다른 만큼 고유한 사명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어떨까요?

이처럼 비슷해도 다른 만큼 남과 비견하지 말고 나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를 모르면 삶이 방황하고 무의하게 됩니다.

 

* 수명/ 하나님이 정한 삶의 시간입니다.

라인 홀드 리버의 기도문이 인생의 답으로 들립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평온하게 받아드리는 은혜를 주시고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바꿀 수 있

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다윗도 이와 비슷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시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결론) 우리는 성도입니다.

땅에 사는 연약하고 미련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녀이기에 거룩함과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곧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골3:3~4)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우리는 무엇에 마음을 갖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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