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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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이고 봉건적인 북한에서는 남편을 불편이라고 부르고 또 낮 전등이라고 부른답니다.
불편은 배급제의 생활에서 배급 보다 많이 먹어 부인과 자녀들이 배곯기 때문이고,
낮 전등은 낮에 전등 킬 없듯이 가정에서의 남편역할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집지키는 멍멍이라고도 한다니 이런 가치관에서는 주의 은혜가 빈곤하게 됩니다.
1) 믿음의 부녀
성경에는 남편을 “주여”하며 불렀던 여인이 있었는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였습니다.
어떻게 “주여”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믿음 덕이었습니다.
벧전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이 믿음의 부녀들의 특징은 단장을 할 때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않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으로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역사상 이런 부녀들이 제법 있었지만 사라가 시작이었기에 대표적인 부녀로 소개된 것입니다.
지금도 유목민들은 비교적 고생살이를 하는데 고대에서는 어땠을까요?
갑자기 남편이 주님의 뜻이라며 알지 못하는 길을 떠났을 때 그 길을 동행해야 했으니 그 고생은 우리도 알만큼 죽을 때
까지 갔었습니다.
또 이런 과정에 아브라함은 위기가 오자 부인인 사라를 누이라 하여 왕한테 진상했던 적이 있었고, 대를 잇기 위해 첩
을 남편에게 들였더니 임신한 첩이 사라를 무시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도 잠깐,, 첩 자식을 보는 사라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요?
이런 사라의 생애와 마음을 말한다면 조선시대의 여성처럼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라는 끝까지 돕는 배필로서의 완성을 이루었고 그 완성의 꽃은 마침내 이스라엘민족이 되었고 마침내 국가
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사도의 부인도 그랬을 거라며 옛교부들은 칭찬했었습니다.
어부가 주님을 따른다 했을 때에 어땠을까요?
3년이 지나서 또 주를 따르는 일이 계속되었을 때 남편을 믿어 주었으니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남편,
가장으로써 세워주신 하나님질서를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본문처럼 베드로를 통해 그 아내의 믿음을 간접 소개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렇듯 믿음의 위대함은 언제나 땅이나 상황이나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 뜻에 맞추어 순종하므로 반전이 나타나고 빛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위에서조차 12영이나 되는 천사들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자며 권세자였지만 하나님아버지 뜻에 순종했
던 것입니다.
이때의 주님의 기도를 기억하시나요?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마26:39) ~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믿음과 기도와 삶은 지금도 모든 성도들이 이루어야 할 질서이고 법칙입니다.
2) 하나님 법칙
하나님께는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습니다.
모든 죄인과 죄는 반드시 죽이는 사망의 법이 있는데 율법입니다.
율법에는 정죄하는 능력이 있어 죄인과 불의 즉 모든 경건치 못함은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반대로 살리는 생명의 법이 있는데 성령으로 말미암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세상과 만물에는 세우신 질서가 있는데,,
그 질서에 맞게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 사랑입니다.
질서를 위한 순서는 하나님, 자신, 이웃, 그리고 인간 아래의 사물입니다.
제일이 되는 하나님께는 “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역시 하나님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았기에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물은 단지 제한적 사랑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서에서 어긋나 돈을 하나님처럼 떠받들며 사랑하고,, 동물과 사물을 인격화시켜 사랑하고,,
반면 하나님과 사람을 폐기물처럼 여긴다면 질서가 무시되어 법칙은 깨지기 마련입니다.
현대에 와서 급격한 혼란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가 죄에 의해 고의적으로 무시되는 일입니다.
건축물도, 기계도, 사회도 나름의 체계와 질서가 있는데,,
이 체계와 질서가 무너져 전체가 불안한 지경이고 무너질 위기가 된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 학교 등의 체계와 질서를 아시나요?
어른, 청년, 아이, 또 여성과 남성,,나름의 특성이 있고 기질이 주어진 것은 역할이고 목적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너졌다? 균형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꿀벌이 없으면 세상이 망한다는 이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르치고, 훈계하고, 양육할 복음은 경외할 분을 기쁘게 숭배하고,
사랑의 상대는 사랑하고, 사용할 존재물들은 생명이 있던 없던 잘 관리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이 지혜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리라”
그럼에도 이를 모르니 좌충우돌하고 법만 늘어나고 삶은 피폐해 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정은 가장 작은 세포입니다.
부부는 그 시작점이고 가족은 구성원이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유일의 부부의 날이 있습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의 가정의 달 21일입니다.
사연인 즉 어린 날에 한 어린이가 TV에서 “우리 엄마아빠가 함께 사는 게 소원” 이라는 말에 권제도목사님이 애써서
2007년도에 제정된 헌법적 기념일입니다.
그러나 좀 살펴보면 국가는 성숙해서 부부 인권을 향상시켰다지만 저변에는 이혼의 증가가 있다는 방증입니다.
부부가 얼마나 소중한가요? 부부에 따라 가정이 살거나 죽게 됩니다.
이 생사의 기로에서 특별히 아내는 가정에서의 엄마가 되고 돕는 배필도 되니 역할이 더 큽니다.
아내의 뜻을 아시나요? “안의 해”라니 Wife보다 백배 낫습니다.
교회에서도 역할이 큽니다.
부녀가 부흥하지 않으면 교회는 부흥하기 어렵습니다.
십자가 곁에는 마리아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기 소유로 섬겼던 부녀들이 증거입니다.
부녀의 은사가 생명을 잉태하고 젖으로 양육하는 등의 남성 보다 강하고 탁월합니다.
그래서 인류 보편적으로 처음과 나중의 외침은 “엄마”로써 증명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3) 순종과 사랑
그러나 그 직능과 질서상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되 교회가 머리되신 주님께 복종하듯 해야 하며, 또 남편은 주님이 교
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약한 존재로써 더 귀히 여겨야 질서가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상대방에게서 자존심을 세울 것이 아닙니다.
자존심은 자존감의 무너질 때 오는 이상인데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면 되레 세워집니다.
“우리 이혼 했어요”라는 프로를 보면 이혼한 후 후회하면서 깨닫기 보다는 지금 더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사라가 별세하니 아브라함은 홀로 살지 못하고 재혼을 했으니 좋은 역사교훈입니다.
창25: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했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재미있는 것은 성경에 남편을 여읜 부녀가 재혼한 일은 없었습니다.
“남자가 혼자 살면 이가 세말이고 여자가 혼자 살면 보석이 세말” 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부부가 오래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아내가 힘줄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거룩히 세워지고 사회도 안정되는 비결은 정치만이 아닙니다.
부부가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면 하나님 사랑의 법 안에 머물게 되고,
여기서 하나님보호를 받고 후대하심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따라 사랑하는 일입니다.
자기 자리에서 분수에 맞게 살면서 믿음으로 순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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