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이미 주신 것을 보세요. > 설교말씀

이미 주신 것을 보세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06-25 12:27 조회 241회 댓글 0건

본문

그동안 과학은 발달했고 인구는 감소했습니다.

그렇다면 먹을 것과 일자리에도 한결 여유가 있어 더 행복할 시대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최근 있었던 한 지방의 목회자세미나의 주제가 화가 나면서도 슬프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떤 목사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이는 존재에 대한 절박함이 진하게 배여 있었습니다.

 

1) 자기 확실성

여러분은 아시나요? 어떤 목사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비슷한 질문을 또 한다면,, 어떤 사람이 오래 살까요? 건강한 사람일까요?

실제는 조심조심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103세 철학자인 김형석교수의 말입니다.

건강한 친구들은 다 세상을 떠났는데 자신이 지금껏 사는 비결은,,어릴 때부터 허약했기에 부모님이 조심조심하라고

 해서 그 말씀대로 조심하며 사니 지금껏 살아있답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목사는 누구인가요? 잘 난 목사일까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사인 줄 믿습니다.

말세의 특징은 거짓선지자가 많이 나와서 미혹케 하는 일인데,, 자신을 기쁘게 하면 거짓선지자가 되지만 나는 죽고 주

님을 흥하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어 살려주십니다.

 

이는 뭇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목적, 믿는 목적 등을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여기에 자기에 대한 정체성은 분명할수록 좋습니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이 확실성위에 충성이란 자세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은 돈 보다 사람생명을 중요시여기면 좋겠습니다.

이들이 잘못하면 천하 보다 귀한 한 생명이 죽거나 망가져서 평생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법조인들도 돈 보다 정의 수호가 잘 이루어지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대통령 특검을 지냈던 모 변호사가 대장동사건에 연류된 일은 국가의 수치입니다.

 

선진국이다,, 엘리트교육이다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인식에서 사람 중심과 법 중심이 따르는 것이고,, 엘리트교육도 많이 배웠다가 아니라 바르게

 산다는 삶의 모양인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삶이 세상보다 고급적인 것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어떤 세상, 어떤 문화 보다는 탁월해야 하고,, 또 탁월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4:3~4)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

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2) 심판의식

성도가 의식할 눈은 사람이나 역사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는 두려운 일이고 반대로 매우 바라는 일입니다.

왜요? 공명정대한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교육이 망가졌기에 온갖 거짓이 증가되고 또 증가된 만큼 이중삼중의 감시와 감사와 꼼수가 붙습니다.

 

어느 시장은 자기 시장실에 cctv를 설치했었습니다.

민원인들의 봉투를 사양한다는 선량한 뜻이었답니다.

그런데 말은 그랬지만 알고 보니 작동하지 않는 cctv였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은 비례하듯이 정직도 비례합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제국도 망하기 때문입니다.

조선 말기 때가 얼마나 부패했었는지 선교사들의 여행기에서 드러납니다.

평안도 어느 원님은 선교사가 고종의 여행증명서를 가졌는데도 뇌물을 주어야 지방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황제는 멀고 지방관은 가깝다” 비슷한 말로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아닌가요?

현재 후진국들이 다 이런 모습인데 주권자에게 아부하는 자만 늘뿐 정의와 사람을 생각하는 관리들이 없어 뇌물이 성

해 망하는 지름길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지식이 믿음만이 아닌 삶으로 증명되고 고백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국민일보가 1000명의 출석성도들을 2주간 조사한 내용입니다.

64% 십일조를 하고 있었고, 2명 중 한 명은 “헌금하는 만큼 복을 받는다” 였습니다.

이 성적표는 보통인 양호가 됩니다.

특히 명심할 것은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닌 하나님 것을 드리는 일이기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고, 본 교회에 드리는 일

이 옳습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의도가 이웃사랑이라는 하나님 뜻에 있는 만큼 피치 못할 경우 이런 의미를잘 살펴야 합니다.

 

3) 베푸는 신앙

큰나무 밑에서 작은 나무가 못자라도 큰 사람 밑에선 작은 사람은 자랍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클수록 선한 영향력이 큽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한 수도사가 숲속 길을 가다가 앞발로 겨우 몸을 의지하면서 한정된 영역 안에서 사는 여우를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까? ” 수도사답게 궁금해서 관찰했습니다.

바위동굴에서 여우가 살았는데 위에는 호랑이가 살았습니다.

호랑이가 먹던 먹이를 아래로 던져주면 여우는 받아서 살았던 것이고,, 또 호랑이가 있으니 다른 천적이 얼씬도 안 했

던 것입니다.

수도사가 무릎을 치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여기저기 다니면 양식을 구하며 수도할 것이 아니라 여우처럼 동굴에서 수도하면 하나님이 먹이를 주실 것이다”

하며 수도사는 자기 거처가 될 만한 동굴에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양식을 기다렸지만 배만 고플 뿐 음식은 오질 않았습

니다.

화가 난 수도사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리 없는 여우는 호랑이로써 살리시면서 수도사인 나는 왜 살리지 않으시나요?”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

니다.

무엇이라고 하셨을까요? 이번에도 연변의 농촌목회자들에게서 보았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너는 어찌 병든 여우는 흉내 내면서 호랑이는 닮으려고 하지 않느냐”

 

교회든, 성도든, 목사든,,두 부류입니다.

베푸는 호랑이냐?,, 빌어먹는 여유냐?

자립을 이루어야 하는데 어렵다고 마음도 못가진다면 어떻게 할까요?

교육이 백년대계가 맞습니다.

고산주의 중국이라는 배급체제에 살았으니 여전히 두발로 사는 여우 꼴을 못 벗어납니다.

베전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신앙도 그렇습니다.

자족하는 신앙이 없다면 어떨까요? 감사할 수 없고 섬기고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맨날 징징거리는 신앙이 있고, 작아도 나누고 섬기는 신앙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인성과 도량이 문제인데 우리 기독신앙으로써 인성과 도량이 나아지지 않았다면 그 신앙은 헛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자신을 보시고 믿으십시오.

영광과 위엄의 성도인 자신을,, 본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께서 신임하셔서 복음의 일을 맡기셨음을 아는 고백입니다.

디모데에게는 “너 하나님의 사람아”했는데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사람입니다.

베드로사도는 무엇이라 했나요?

벧전2:9) ~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이는 너희를 어

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려 하심이라

 

주님도 너희는 “세상의 소금” 이라,,“빛이라” 인정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 그러므로 세상 빛과 소리에 놀라지도 말고 취하지도 마세요,

다 없어질 허상이고 헛소리입니다.

어긋났던 발목에 힘을 주고 무릎을 바로 세우고 믿음의 정진을 이룹시다.

이럼이 부자나 권세자가 아니고도 세상 속에서 세상을 이기는 길이 되는 줄 믿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