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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 설교말씀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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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07-09 08:16 조회 18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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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달군 핫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바닐라라는 28살짜리 침팬지가 평생 살았던 거소는 뉴욕 영장류연구소의 세로 1.5미터 가로 2.1미터의 철장이었습니

다.

여기서 약 18만평의 보호소로 옮겨질 때의 하늘을 처음 본 바닐라의 표정은 눈과 입 모양에서 “와” 하는 감탄이었기에

 사람과 진배없었습니다.

 

1) 묶인 자들

세상에는 이처럼 어딘가에 묶이거나 갇혀서 사는 사람들과 생명들이 많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갇힌 고래 쇼와 북한의 억류된 선교사님들과 정치수용소의 사람들이 생각났고,, 또 오래전에 경

북청송 감호소를 다녔을 때에 그 육중한 회색 문,,겹겹의 철문들 속의 수형자들의 답답함을 다시 상상할 수 있었습니

다.

 

비슷하게는 최근 요양원의 한 여전도사님이 내게 글을 보냈기에 곧 방송사에 전달했었습니다.

“ 샬롬,, 목사님,,간절한 소원기도가 있는데요. 제가 극동방송전파선교사이긴 하지만 방송 못들은지 3년이 넘어 기도제

목 올리기 어려워서 목사님께 부탁드려요.

교회가 잊어버리고 돌보지 않는 노인환자를 위해 기도를 부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름 젊었을 때 봉사도 하고 직분도 감당했지만 병고로 오랫동안 교회출석을 못하니 교적에서도 지워지고 노인요양병

원에서도 신앙적 돌봄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요 제 사촌 언니와 제가 어릴 때 주일학교 교사였던 권사님들도 그런 형

편이구요 그런 분이 그 두 분 뿐이겠어요? 눈물로 간청 드립니다. ”

 

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있습니다.

최근 앙상한 갈비뼈를 보여 학대 받았음을 의심케 했던 늙은 숫사자가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이곳은 동물관람을 위한 동물원이 아니라 버려지고 병들고 사고 당한 동물들을 치료하고 흙냄새, 풀냄새, 하늘을 보여

 주는 동물원이기에 이곳의 동물들은 여생을 보내게 되니 다행이었습니다.

 

누군가,, 어딘가에 묶이거나 갇혔다는 것은 부자유한 상태인 만큼 불행이며 본래의 가치와 목적에서 벗어난 삶이 됩니

다.

내가 풀 수 있다면 문제가 안 되고,,누군가가 풀어 줄 수 있다면 구원이고 구출이 되고 그는 그 생명의 구세주가 맞습니

다.

그런데 이 구세주가 없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비극적일까요?

13살에 노르웨이로 입양을 간 김정아 소녀는 계부에게 성폭행과 폭행을 당한 후 수십 년 간 지옥살이를 했었기에 이제

야 진실화해위원회에 자신의 입양이 부당하지 않았나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더 비참하고 불행한 처지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죄에 매여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산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한가요?

그 결과 죄의 결과인 죽음으로 영벌에 처하니 죽어서 끝남이 아니라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삶은 죄의 노예로

 살기에 희락이 없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번쩍이는 유혹에,, 성공에,, 아님 세상이 두려워하는 실패에 매여 산다면 어떨까요? 

유감되게 대체로 이러고들 삽니다.

작년 마약사범 역대 최다 1만 8천명,, 10명 중 6명은 30대 이하,, 가짜 희락을 찾는 발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희락이 없는데 무슨 미래가 있고 감사가 있을까요?

마약에 취해서 자신도 못 가누는데 무슨 사랑이 있고 이웃이 있을까요?

왜 사람들은 여기에 마음을 뺏길까요?

 

2) 잃어버린 생명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자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 나귀새끼를 타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 나귀를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하셨습니다.

이 덕에 이 나귀는 예수님을 태운 영광의 나귀가 된 줄 믿습니다.

 

나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과 함께하는 가축이지만 매어서 키웁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고 고집이 쎄고 힘이 좋아 자칫 사고를 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귀를 길들여야 비로써 사람과 협력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첫째가 “풀어,,” 자유를 주어야 하고, 두 번째가 “내게로 끌고 오라” 분명한 용도입니다.

 

이는 나귀만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죽었던 나사로를 부활시키신 후 무엇이라 말씀하셨나요?

요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

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사람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매여 있는 나귀라 할 수 있습니다.

죄에 매여 있고, 죽음에 매여 있고, 율법에 매여 있고, 온갖 편견에 매여 있고, 삶의 불안과 두려움에 매여 있는 존재입

니다.

아니 나사로처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입니다.

 

주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기 통제권을 잃어 버렸기에 행복을 원하나 불행하고, 집을 찾고 주인을 찾지만 되레 멀리 등

지는 상태가 됩니다.

전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

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게 하셨느니라

“시종을 측량할 수 없게 하셨느니라”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

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여기에 특징이 있습니다.

주인을 잃고 집을 떠난 불행한 사람은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고,

또 때를 모르는 만큼 “이때인가요?” 혹은 “어느 때입니까” 시종 묻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때와 방법을 찾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찾는 듯해도 실상은 자기 통제권을 발휘하기 위함으

로 전형적인 타락의 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고 변화된 사람은 때와 방법이 아닌 주의 뜻을 찾아 살고자 하며,, 모든 때는 하나님의 때가 되며 모든

 방법은 합력하여 하나님의 방법이 됨을 믿기에 잠잠하니다.

 

그렇다면 나는 매여 있나요? 아님 주가 주신 자유가 있나요?

죽음과 세상 앞에 평안과 안식이 있다면 자유자입니다만 초급하고 두렵다면 아직은 매여 있다는 반증입니다.

요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

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누구든지 주를 믿고 주안에 머물러야 진정한 산자가 되고 자유와 안식을 누립니다.

3) 해방감과 안식

400년간 노예살이 하다가 하룻만에 해방을 이룬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온통 자유와 기쁨과 감사의 찬양이었습니다.

출15:1~2)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이들처럼 주체할 수 없는 기쁨도 곧 바뀝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풀어짐과 자유와 안식과 기쁨의 기반은 주의 말씀이고 역사이어야지 내 감정에 두면 무너집니다.

이것이 곧 주님께서 “내게로 끌고 오라” 는 말씀과 일치 하고, 또한 새끼나귀는 연약하고 세련되지 못했었어도 완전하

신 주님께서 그 등에 앉으셔서 주인으로써 고삐를 틀어쥐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던 비결이기도 합니다.

 

현대의 기독신앙은 무교가 53% 넘는 시대에서 유교 보다 못한 종교로 인정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감된 모습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새끼 나귀가 백마나 황소가 되길 바라며 구하며 또 죄와 죽음과 율법과 각종 억압에서의 자유 보다는,, 보이고 만져지

는 불만족에서의 만족과 생활적 결핍에서의 해방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탓에 이상한 기독교가 되고,, 기도는 타종교와 내용이 같고 실제생활에서는 이웃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돌아서야 합니다.

매여 있던 나귀새끼의 본질을 잊지 말고 “풀어서 내게로 끌고 오라” 하셨음을 상기하고,,나귀는 여전한 나귀지만,, 짐

 대신 주님을 모신 영광이 주어졌음을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흔히 우리가 잊혀짐을 말할 때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렸다” 고 합니다.

성도는 매여 있던 과거의 자신을 생각해서 지금도 여전히 매여 있는 생명들,,사람만이 아닌 동물들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결론) 주님은 우리의 해방자요, 구세주이십니다.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어떻게 살리셨나요?

엡2:4~6)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

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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