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지기
페이지 정보
본문
등대지기가 아직 건재합니다.
이들에게는 외로움 말고 성실함이 요청됩니다.
밤에 항해하는 선박들에게 길잡이 등대 불을 밝히는 책임 있는 직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하나님의 성막에서도 그처럼 등잔불을 꺼지지 않도록 살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레24:3)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
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1) 빛의 존재이유
하나님은 태초에 “빛이 있으라 ” 하심으로 창조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후 해, 달, 별들이 여러 발광체가 창조되었습니다.
이처럼 발광체는 다양해도 빛의 존재이유는 어둠을 물리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현대는 분위기용으로, 의료용으로, 나아가 전쟁용으로도 개발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소 안의 등잔불은 무슨 용도일까요?
하나님께서 어둠을 싫어하셔서 성전을 밝히기 위함일까요?
아님 제사장들에게 밝음을 주기 위함인가요?
이도저도 아닙니다.
이 등잔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증거궤 앞에서 순결한 기름으로 밝히는 만큼 훗날에 이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
의 덕성과 역할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 몸된 교회가 그리고 지체된 성도들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꺼트리지 말고 꼭 지켜낼 빛이고 “항상” 있도록
할 덕성입니다.
빛에는 많은 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항상 있어야 할 빛에도 “의” 가 있고 “인” 이 있고 “예” 가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거룩이라는 의가 강조된 만큼 인이 없었습니다.
레24:16)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
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그러나 주님은 사랑,, 즉 인을 더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의인 거룩을 무시하거나 훼손한 것이 아니라 더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였고,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처럼 주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하심이 아니고 완전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으심은 이 거룩함의 의를 위하여 죄값으로 희생하신 것이고, 주님의 부활하심은 사람을 살리시기
위한 인이었습니다.
롬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렇다면 예는 무엇인가요?
예배요, 예배적인 삶으로 빛 꺼트리지 않는 제사장적 삶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림을 받았으니 어찌 잠잠하겠나요?
동물도 감사의 정도와 형편에 따라 감사보답이 있는데 고양이가 죽은 쥐를 물어다 놓는 것은 예라는 감사표시입니다.
성도는 예라는 감사에 서투를 수는 있어도 인색하면 곤란합니다.
말로도 “감사합니다.” 있고 답례품으로 “감사합니다.” 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향한 성도의 감사는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려 삶으로 보답하는 일입니다.
모든 전도자들의 삶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서 얼마든지 형편과 믿음 따라 준행할 수 있습니다.
한 안수집사님은 자동차브레이크 패드를 만드는 작은 공장을 운영합니다.
그 집사님은 오래전부터 은퇴 목사님들께 매달 30만원씩 30명을 넘게 섬기고 있습니다.
여러 기독봉사단체에서의 자원봉사팀원들은 한결 같이 주님 은혜에 빚진 자들입니다.
또 성도가 드려지는 헌금도 다 그런 마음과 정신인 줄 믿습니다.
2) 항상 살핌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이었기에 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고 제구와 불을 관리할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이런 일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이었습니다.
특히 혼자, 밤에 바람 잘 타는 천막 안에서의 잘 꺼지는 등불을 관리한다니 어떨까요?
여기에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앞에서의 성결한 삶,,
우리는 TV에서 가수의 공연이나 배우들의 연속극을 보면서도 상대의 흠결을 논합니다.
정치가 특히 그렇습니다.
맨날 전 정권이 어떻고 현 정권이 어떻고,,치사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자신을,, 내면을,, 영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뵈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험담이 아니라 긍휼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었기에,,상대의 죄와 허물이 아닌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성향에서 이미 계시되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천국이 임하고, 그 가난이 클수록 애통이 임하고, 애통 중에 자신을 보며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바 온
유가 임하고, 그래서 의를 이루고 또 긍휼히 여기는,,
그래서 우리 신앙은 자신이 먼저 보이고 남이 나처럼 보여야 합니다.
이 모습이 혼자서 등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항상 노력하는 등불지기의 충성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유심히 보십시오.
같은 말씀이 출애굽기에도 있는데 보면 볼수록 감사하고 놀라운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항상 잘 살피라” 는 말씀은 있는 반면 잘하지 못했을 때의 어떻게 하라는 조치와 책임을 묻는 말씀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실수하고 잘못했으면 다시 시작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진정한 빛의 모습이고 빛의 사자들의 삶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천성을 향해 갑니다.
주님 손 잡고 갑니다.
혹 놓쳤으면 다시 주님 손 잡으면 됩니다.
주님이 여전히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님 안에서 모든 죄 사함 받았고 허물을 가리워졌기에 부담 없습니다.
3) 빛의 열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
라”
빛의 열매는 지난 온 역사나 미래의 각오가 아닙니다.
현재의 주소이고 성숙의 증표입니다.
지난 주간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었나요?
우리 열매는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우리 밖에서 맺혀야 됩니다.
신문에서 본 기사입니다.
베풀고 살던 50대 여인이 운동 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어, 100여명에게 새 삶을 주었는데 이 여인의 심장, 폐, 좌우신장은 5명에게로,, 인체조직은 환자 100여명에게 희망
을 주었습니다.
평소 베풀던 그녀는 딸의 이름도 “베푸는 아름다움” 의 뜻을 담아 “시아” 라고 했습니다.
2년 전에 장기기증을 헸는데 유족은 본인의 뜻을 기증한 것입니다.
개인 적으로 이 여인이 성도였으면 참 좋겠다 했습니다.
열심히 사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영혼의 등불지기로서 빛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열매가 많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점점 사나워지고 사랑은 없습니다.
어디나 의무 보다는 권리를 앞세워 갑질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칫 신앙도 이럴 수 있습니다.
결론) 성도는 하나님앞에서의 등불지기라서 어둘 때에 빛을 발하는 책임이 있는 신앙입니다.
남이 아닌 자신을 살피고 일어나 빛을 발하는데 " 대대로 다 할 규례" 인 만큼 최선을 다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