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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기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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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08-27 09:17 조회 16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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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했는데 과연 그런 시대가 되었는지 올해도 “관측이래 최고” “역대 최대” 라는 말이

 많이 들렸었습니다.

이 탓에 산불과 폭염, 장마, 태풍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1) 고통

이유가 무엇이든 고통에는 몸 안에도 흔적을 갖게 됩니다.

스트레스, 화, 홧병인데 다 자신과 남과 사회에 해로운 독입니다.

캐나다에서 스트레스연구를 했습니다.

일주일간 평화롭게 놀고 있는 쥐가 있는 곳에 매일 아침 고양이를 지나게 했습니다.

며칠 뒤 쥐를 살펴보니 위에는 피멍이 들었고 심장은 거반 망가져있었습니다.

고양이가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쥐들은 막중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입니다.

 

이순신장군의 옛시를 보면 비슷한 글이 나옵니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글은 피리소리에 자신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지만,

실제는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에서 보였듯이 왜란에 대한 근심이었습니다.

 

스트레스처럼 화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화내는 사람의 입김으로 풍선을 불어 냉각시켜 액체를 만들어서 쥐에 주입했더니 쥐가 3분가량 발작했다가 죽었다는

연구실험도 있습니다.

화가 심하면 홧병이 생기는데 한국적 병이고 보니 외국에서는 달리 번역을 못해 그냥 홧병이라고 합니다.

홧병은 불의에 대한 풀리지 않는 억울함이고, 맺혀서 풀어지지 않는 응어리진 비통함으로,,

학적으로는 지속되는 트라우마에 대한 의식입니다.

 

과거에는 가난에 대한 한, 무식에 대한 한,, 억압과 착취에 대한 한,,옛 여인들은 빨래방망이를 두드렸고, 담배를 피웠

고, 남자들은 술과 폭력과 도박을 행사했고, 수십 년 전에는 “명랑” “뇌신” 이라는 약을 먹기도 했었습니다.

 

문제는 이 홧병은 나아가 조현병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홧병이 내면의 우울 속에 내재되었다가 심각한 불행이 왔을 때 촉발되는 정신이상 병입니다. 

생물학적과 유전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지만 사회학적으로 약자가 더 한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이상해지고 무서워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런 독에 상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2) 시대의 특징

그 이유를 성경은 계시했습니다.

딤후3:2~4)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

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

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하며

한마디로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이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자기만 알고, 돈을 사랑하고, 남에 대한 배려는 없고, 결국 사는데 어렵고, 스트레스와 화가 나고 홧병

으로 미치게 되고,,마침내 자연도 신음하고 고통을 당하니 하나님을 거슬린 모든 사상과 모습의 파국인 것입니다.

 

여기서 돌아서는 모양이 무엇인가요?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즉 방탕하고 무질서 한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은 것이요.

불의가 아닌 진리에 머무르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 삶은 부자도 못되고, 인기도 못 얻는 삶이지만 주님을 믿고 자족하며 이루는 삶입니다.

이는 내가 아닌 주님이 주도하시는 삶이요, 믿는 구석이 있는 삶이기도 합니다.

곧 경건의 능력을 따라 사는 삶이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니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순간적인 두려움과 염려가 있어도 다시 중심을 잡게 됩니다.

내가 아닌 주의 팔이 나를 붙잡으셨기에 내 영혼은 낙심하지 않고 든든히 서 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동안에 꼭 명심할 내용이 있습니다.

물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라 하였지만 베드로는 주님께 외쳤습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십시오.

오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주님께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졌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지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기도했고,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으며 함

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이렇듯 불쑥 찾아오는 고난과 역경은 주님을 체험하기에 으뜸이고, 기도하기에 적기이며, 성도는 고난과 역경에서도

주님이라는 안전지대에 있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써 커지고 강해지는 과정이 고통이며 고난이고 역경인 것입니다.

 

누구나 세상 살면서 문제없을 수 없고 사람 간에 스트레스와 화를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이기는 비결을 성경은 과학 보다 먼저 성도들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시119:100)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시119;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떠날수록,, 모르면 모를수록 어둠과 혼돈에 머물게 되고 마귀에 붙잡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뜻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

님의 뜻이니라

위는 빌립보감옥 지하방에서 애매하게 갇혀 고난당하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주신 주님의 메시지이기에 감동이 됩니

다.

누가 보더라도 지하 감옥살이는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할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렇게 살았기에 권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이래야 하고 성숙하면 할수록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

다.

이 힘이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스트레스에 눌려 우울하고 홧병에 욱욱거리고,, 성도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많은 위인들 중 누가 제일 힘들었을까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노년에 미지의 땅을 향해 갔던 아브라함일까요?

4명의 부인과 그 12자식들을 두었던 야곱일까요? 객지에서 총리가 된 요셉일까요?

숱한 전쟁을 겪은 다윗일까요? 굶거나 온갖 고난과 고초를 겪은 사도바울일까요?

 

여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 난 여종에게 멸시를 받았던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남편은 먼저 차지했으나 남편의 사랑은 어쩌지 못했던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역시 아들이 없었던 한나 등,, 다 고난과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요,

스트레스와 화를 겪은 성도들이었기에 현대 정신의학으로 본다면 중증환자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미치지 않았고,, 온전했고 가문과 민족과 하나님나라에 요긴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지식과 과학은 근대에 들어서서 무엇은 하면 안 되고, 무엇을 먹고 말고를 가르쳐도,,

주님께서는 믿음을 주셨고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셨기에 성도는 세상을 이길 힘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진주조개가 자기 몸 안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그 이물질을 분비물로 감싸서 마침내 영롱한 진주가 되게

하는 것처럼 성도는 부정적인 것이라도 보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결론) 성도는 세상을 이긴 십자가 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요,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기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줄 믿어야 합니다.

악한 세상에서 선하고 의롭게,, 고난과 고통이 받은 시대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가 매일 기쁘게”로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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