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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의 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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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09-24 09:15 조회 19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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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제사의 유형은 두 가지였습니다.

동물을 잡아 피 흘림의 제사가 있었고, 고운가루를 제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불태우는

 제사도 있었습니다.

이를 소제라고 하는데 선물, 봉납이라는 의미로 주님의 죄 없는 거룩한 삶을 예표 합니다.

또한 성도에게는 주님 닮은 헌신, 충성, 감사, 거룩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1) 고운 가루

* 가루는 열매가 빯진 상태입니다.

고난과 고통의 표상으로 특별히 고운 가루는 그러한 의미를 더 합니다.

성육신하셔서 주님이 받으신 고난과 죽음이 그러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받으셨던 세상에서의 모든 고난은 우리 죄의 세력으로 말미암는 고난이었고, 십자가위에서의 고통은 죄값으로

 된 고통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위하여 오신 만큼 온유하시고 겸손하셔서 태어남부터가 고난이었을지라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

럼 하나님아버지의 통치적 주권에서 잠잠하셨던 것입니다.

 

* 그 위에 기름을 붓게 하셨음은 주님의 삶은 실패자적인 삶이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 승리자적인 삶을 사신 능력을 의

미하며,

 

* 누룩을 넣지 말고 소금을 쳐야했음은 빵을 만들지 말고 간을 맞추라는 뜻이 아니라 죄 없는 정결한 삶을 의미합니다.

 

이 소제를 오늘날 성령 충만한 삶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며,, 감사하는 삶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관한 착각은 예배가 많아야 되고, 특별한 장소에서만 드려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빯아서 고운 가루에 유향을 피우는 예배자이기에 기름을 붓고 소금을 치는 온전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없고 예배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누룩을 넣으면 부풀어지는 빵처럼,,

자라는 죄의 누룩과 꿀 같은 유혹을 제거해야 합니다.

레2:11)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드려 사르지 못

할지니라

마귀의 유혹과 간교는 다양한 모습으로 성도를 공격하고 망하게 합니다.

주일에 국가고시나 면접을 치르게 하는 일이 대표적입니다.

또는 어떻게든 죄를 합리화 시키고 책임을 전가시키고자 하는 습성도 활용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죄의 분별력과 죄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고 내 힘 아닌 성령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겨

내게 될 줄 믿습니다.

 

2) 왕 같은 제사장

제사장 성의를 보면 아주 특별합니다.

소 잡고 양 잡아 태우기 쉬운 복장이 아닙니다.

그 복장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소원이 담겨져 있었는데 곧 하나님께서 받기를 원하신 주문제사 즉 예배가 계시되어 있

었습니다.

머리의 관에는 “여호와께 성결” 이라는 글을 새겨 정면에 두었으니,, 멋짐이나 웅장함이나 스마트함 보다 하나님이 우

리를 향하신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명심해야 합니다.

벧전1: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할지어다.

 

주님은 그처럼 예배하셨는데,, 주님의 삶이고 그 최고는 십자가위에서의 죽음이었습니다.

앞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

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모 목사님이 주보에 “교회 나오지 마십시오.” 라는 칼럼을 올렸습니다.

유머스럽지만 명심할 부분이 있습니다.

1,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다면 교회에 나오지 마십시오.

하나님도 여러분의 자투리시간을 받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2, 여기저기 쓰느라 돈이 없으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도 여러분이 쓰다 남은 물질을 받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3,심신이 지쳐있으면 봉사하지 마십시오.

기쁜 마음이 아닌 찌든 마음의 봉사는 하나님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4,직분이 너무 버겁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포기하십시오.

하나님은 제사가 아닌 찬양을, 직분이 아닌 중심을 보십니다.

 

5, 말씀대로 살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성도가 아니라고 하십시오.

성도의 복은 누리고 싶고, 의무는 감당치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 글의 교훈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일은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해드리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죄에서 죽었던 나를 살려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가 됩니다.

그러고도 기쁘고 아쉬움뿐이라면,, 할렐루야 아멘!!인 줄 믿습니다.

 

문득 비견할 일이 있었고 마침내 오늘의 설교구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한 유명가수의 공연 발권이 난리가 났던 것입니다.

그 가수가 그런 소식을 듣고 자신도 예매를 하려했는데 무려 50만 명이 대기가 떴었고, 신문과 방송은 연일 그런 소식

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암표가 100만원이 넘어섰다니..

이런 공연의 좋은 자리는 주인공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앞자리여서 비용이 큽니다.

세상스타 공연을 보고 즐기는데 수고와 비용이 큰데,,

성도가 하나님께는 얼마나 사모하는지요?

 

3) 우리의 대제사장

부족함이 많은 우리에게 놀랍게도 우리의 희생 제물이셨던 주님이 살아계셔서 하늘에서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항상 돕고 계신다는 진실입니다.

히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대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

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악인일수록 긍휼이 없습니다.

이는 악의 본질의 무사유, 즉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이 결여되어서 그런데,,

이를 “악의 평범성” 이라고 합니다.

 

욥의 셋 친구들이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지식은 물론 믿음도 없었고 고난과 고통을 겪지도 않았던 그들이 욥에게 하나님을 말하며 고난을 말했던 것은,,

하나님말씀처럼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했던” 헛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완전하고 잘해서 하나님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보다 맞아주시는,, 중보하시는 주님이 계셔서 우리가 언제나 담대히 은혜에

 다가 갈 수 있습니다.

 

결론) 주님은 우리를 위한 소제물이셨고 살아계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 역시 믿음 안에서 소제물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기에 가루가 되는 희생은 옵션으로 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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