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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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상황은 수시로 돌변합니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원수나 동맹이 없고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빈털터리가 흥하고 또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쥐구멍에 볕들 날 있다 했고, 있을 때 잘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1) 상황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20대 후반의 청년이 국가장학금을 받은 덕에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면서 장학재단통장에 11억을 9월 초에 입금시켰답
니다.
그러므로 세상사와 인생사 특히 믿음의 신앙사에는 마이너스, 플러스, 나누기, 곱하기가 복합적으로 운영되고 운영자
역시 계심을 믿어야합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오늘의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심하게 박해하던 열심 유대교인이었는데 어느 날 주님이 찾아오심으로 급진적으로 회심하였
습니다.
그리고 실라와 짝을 이루어 전도를 하는데 그들이 귀신들린 소녀를 낫게 하였더니 그녀를 통해 앵벌이 시켰던 주인이
자기의 이익이 끊어졌다고 영업방해로 고소하여 바울과 실라는 매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 억울하기 짝이 없고,, 신앙이 없는 경우 이러한 때 하나님을 떠나기 쉽상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되레 매 맞고 감옥에서 차꼬에 채워진 채 한 밤중에 둘이서 소리 내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성경의 기록에서는 이들의 감정이 잘 나타나지 않아서 모릅니다.
억울하고 원통해서 발악을 하며 기도하고 찬송했는지,,아파서 끙끙거리며 했는지..아니면 박해 받은 그 자체를 기뻐하
며 했는지,,중요한 것은 할 수 없는 가운데 했다는 점입니다.
믿음의 탁월함인데,,죄수들이 들었다지만 실제는 하나님도 들으셨기에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행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큰 상황일수록 통제를 못합니다.
능력과 지혜가 없기에 놀라고, 피하고, 사람을 찾고,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믿는 구석이 있는 성도는 다릅니다.
다르기에 다른 행동을 취하는데 그 행동이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어떨까요? 주를 찾고 엎드립니다.
2) 하나님을 바람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
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다윗의 고백이지만 실제는 모든 믿음의 영웅들이 고백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영웅들을 보면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믿음의 영웅들이 다 꽃길만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며,
둘째는 문제와 가시밭길에서 주님을 만났는데 그 비결이 주님을 바라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한밤중에는 머리 싸매고 들어 눕거나,,
망했다며 끝날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 주님을 찾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아니 한밤중에도 주께 기도하고 찬송했다면 평상시에는 어땠을까요?
이는 믿고 훈련된 경우라지만 대다수는 그럴 지식과 경험이 없어서 못합니다.
우리는 보고 느낀 대로 대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흥망을 결정짓는 신앙은 잘 배우고 잘 가르켜야 합니다.
손자가 자주 옵니다.
아직 말 못하지만 어른들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배웁니다.
뒷짐을 지고 걷고, 춤추고, 기도한 후 아멘 등,
훗날 손자도 삶의 한밤중에는 주께 나아가 엎드릴 줄 믿고 소망합니다.
이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은혜이기 보다는 우리가 부모에게서 배웠고,, 우리 자녀들이 우리 부부에게서 배웠던
정통이고 DNA작용해서입니다.
잠17: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지난 날 한 영상을 공지했었습니다.
목사의 아들이 특수군대에게 가서 전역할 때에 예수님을 만나고 그 군인들에게 예수를 전하기 위한 군선교사의 길을
찾아,, 만들어 나온 간증인데 주님을 만나니 사람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것은 목사의 아들이었기에 하나님을 찾았다는 사실인데 보고 배운 바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또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이삭과 그 손자 야곱을 찾으신 사랑이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이런 인생사의 곁들인 신앙은 별별 과정을 지나는 장거리마라톤입니다.
마라톤은 분명한 목적과 목표의식이 있고, 좋은 기록과 완주를 위해서 동행자가 있고, 과정에 따라 호흡과 힘의 조절이
필요하며 혹 부딪히는 문제에 대한 대안도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도는 천국을 향한 확실성이 있어야 하며 좋은 동반자도 있어야 하고 형편에 맞는 조절 능력도 있어야 하는데
보혜사 성령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3) 확실성
1936년도에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손기정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서 1등,
남승룡선수가 3등이 했었습니다.
그 후 손기정선수는 식민지시절에서의 운동을 멈춘 후 해방 후 서윤복선수를 발굴하여 1947년 처음으로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이들의 출전목표는 메달 보다 해방된 대한민국의 확실한 국위 선양이었습니다.
영어를 모르고 김치와 고추장까지 싸갖고 갔던 이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와이를 거쳐 보스턴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았지만 보스턴에 도착하자 한국인들을 모집하여 코스마다 사람을 세웠고
코치였던 남승룡선수가 고령인데도 함께 동반자로 뛰었으며,
뛰는 과정에 개가 뛰어들어 남승룡선수가 주저앉아 뒤쳐졌고,,
감독이었던 손기정선수는 계속 옆에서 “조국을 위해서 뛰는 거야” 하면서 외쳤답니다.
이들에게는 민족의식이 분명했었습니다.
손기정선수는 베를린올림픽에서 월계관으로 일장기를 가렸고, 남승룡선수는 가릴 수 있었던
손 선수가 부러웠고, 훗날 손기정선수는 보스톤에서 태극기를 달고 뛴 두 선수가 부러웠고, 남승룡선수는 1등을 못해
보았기에 1등이 부러웠답니다.
금메달의 따고 귀국하는 길에는 교포에게 사기를 당해 비행기가 아닌 화물선을 타고 들어와야 했었답니다.
마치 우리들의 여정과 흡사하지 않나요?
히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
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보십시오,
하나님을 모르는 간수는 옥문이 열렸을 때 잠잤던 책임을 느끼고 자결하려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가 도망가지 않았음을 보고 일반적이지 않은 범상함을 깨닫고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행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간수가 죄수들인 바울과 실라를 향하여 “선생들이여” 했을 때에 이 둘의 위력이 무엇일까요?
분명 이들이 감옥에 입감했을 때에 들은 바가 있고, 지켰을 때 보았던 것이 있고, 옥문이 열린 지금 느낀 것이 있어 결
정적으로 존경하므로 고백된 줄 믿습니다.
이 위력이 주를 만났던 우리들의 위력이어야 하고 또 삶속에서 발휘될 위력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과 신앙을 합쳐 앞선 자주장사 루디아와 이 간수를 통해서 한밤중처럼 어둔 그 지방에 교회를 세우
셨으니 박해라는 마이너스가 풀러스와 곱하기로 된 일입니다.
결론) 캐나다의 “토론토 스타” 신문사가 자동차정비업소 13곳을 실태점검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 12곳이 쓸만한 부속을 교체하도록 과잉수선을 권했는데 딱 한 곳만이 녹슨 부속은 닦아주고 기름까지 쳐주면서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자신을 소개하며 이유를 물었을 때 수리공은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했습니다.
신문사는 이 수리공을 캐나다에서 가장 정직한 정비공로 소개하였으니 정비공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도 한밤중인 만큼 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때 성도의 위력은 말의 변명이 아니라 삶의 증명이 위력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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