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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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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10-29 08:06 조회 21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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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누구에게나 녹록하지 않습니다.

산 넘어 산,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잘 증명해 줍니다.

국가든, 민족이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고비사막을 건너는 일과, 태산을 넘는 일들이 늘 있어서 그렇습니다.

 

1) 힘을 모아,

사람들은 이런 때에 힘과 지혜를 모읍니다.

또 진정한 지도자는 공동체의 힘을 모으는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오래 전 새마을 운동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노래부터 국민적 희망을 주었고 협동하여 발전하게 했습니다.

“가화만사성”,, 집은 화목하면 다 이겨내고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이럼이 정치의 목표이고 신앙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강을 건넌 후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맞닥뜨린 이스라엘민족에게 역시 전

처럼 계시해주셨습니다.

수6:3~5)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

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여기에 추가로 고명처럼 얹어 힘을 더 얻게 하신 일도 있습니다.

수6: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왜 이처럼 계시하셨을까요? 질서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도 사람들을 떼를 지어 먼저 앉게 하셨고 남은 것은 버리는 것이 없게 거두라 하셨

습니다.

 

그러므로 큰일을 이루는 데는 질서가 절대적입니다.

행여 군사적 충돌을 대비하여 무장한 자들을 제일 앞장 세웠고, 그 다음 일곱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 나팔을 불고 질서

유지에 나서며, 그 다음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따르고, 그 다음은 제사장들이 행진에 힘을 돋우는 나팔을 불고 따

르게 하셨습니다.

물론 맨 마지막에는 이스라엘민족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전체수가 고양시 인구와 맞먹는 약 100만 명,

그렇다면 고대의 여리고 성은 얼마나 컸을까요?

마지막 날에 일곱 번 돈 것을 보면 큰 성은 아니고 한양도성 정도가 됐을까요?

자칫 많은 인원으로 처음과 나중이 맞물리고, 좌충우돌이 되고, 시끄럽고, 요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질서 있는 행진을 명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이 성은 하나님께서 앞서 이스라엘에게 선사하신 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성벽을 부수고 돌파하거나, 땅굴을 파거나, 투석기로 돌을 날려서 승리하는 등의 꼭 무엇을 해야만 얻

을 수 있는 성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직 성을 돌고 외침으로 무너트린 승리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계시의 명령은 “믿음으로 받으라” 하심인 줄 믿습니다.

수6:1~2)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

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여기에 우리 구원의 비밀이 스며있습니다.

 

2) 세가지 비밀

이를 보면 질서의 하나님은 믿음의 이스라엘 민족과 동사하며 동역하신 것입니다.

마치 아들과 아버지가 톱질을 같이 하고 손녀와 할머니가 뜨게질을 같이 하는 일과 같습니다.

능률로 본다면 아버지 혼자의 톱질이 낫고, 할머니 혼자서의 뜨개질이 낫습니다.

그럼에도 함께하는 이유는 추억을 만드는 일이요, 일의 성취와 보람을 알게 하는 뜻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순종이 반복 경험될 때 머리신앙이 아닌 인격신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성도들도 믿고 복이 되게 해야 됩니다.

 

* 믿음의 비밀,

처음부터 성이 무너지는 일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리고 “성을 돌아라” “크게 외쳐라” 하심은 거룩하시고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맞추신 일입니다.

훗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더욱이 십자가에서 죄인처럼 돌아가신 일과,

만세 전에 택정하사 내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심을 이루신 모습과 같습니다.

엡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

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말씀을 믿고 보내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 순종의 비밀,

잘 듣는 것도 중요하고, 잘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둘이 바르게 함께해야 합니다.

성경적 믿음과 성경적 행동이어야 합니다.

언약 궤를 중심으로 제사장을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 비슷한 것, 순종 비슷한 것은 구원과 승리에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잘 듣고 잘 순종했습니다.

 

한국적신앙의 병폐가 무엇인 줄 아시나요?

열심은 있는데 성경이라는 궤도에서 벗어 난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 보다는 기적을 중요시 여기고 또 믿음이라지만 순종이 없는 폐단입니다.

 

방배동에서 식당을 하시는 60대 부부가 계십니다.

일찍이 어린 세 자녀를 고향 부모께 맡겨놓고 함바집을 해서 10년 만에 식당을 일구었습니다,

그 식당 개업 날 넥타이를 매고 손님을 맞이했던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여전히 넥타이를 산뜻하게 매고 남편은 홀 서빙

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초심은 무엇인가요?

주님을 처음 만났던 감격, 구원의 감사라면 믿음과 순종의 초심은 어떤 건가요?

먹던지 마시던지 무슨 일을 하던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는 목적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21일 동안 기도하는 다니엘기도회가 들풀처럼 번졌습니다.

한 교회에서의 시작이 범교회와 범교단과 범국가적으로 된 것입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상가교회당 시절 이웃 교회당이 불탔을 때 특별헌금으로 함께했었는데 하나님은 그 일을 귀히

보신 것 같다는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 순종은 제사 보다 낫도다 ” 신자가 바르게 믿으면 바르게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목적을 두기 때문입니다.

 

* 침묵의 비밀,

사람이 많으면 말이 난무하고 부정적인 말은 선동의 도구가 됩니다.

이때의 침묵은 마귀가 활동하는 틈새를 차단하는 하나님의 장치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의 기도는 침묵에서도 가능하고 되레 진가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잘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은 말수는 줄이고 행동을 깊게 또 넓혀야 합니다.

부부도, 친구도, 실제 관계에서 마찰이 줄어듭니다.

이 모습이 신뢰와 사랑의 회복이 되고 진실이 됩니다.

 

오징어와 명태가 바다를 자랑했습니다.

오징어는 자기가 세상의 깊은 바다는 다 다녔다고 자랑하자,

명태는 무슨 소리,, 바다는 깊지 않고 너무 넓어서 아직 자기는 절반도 못 다녔다고 했습니다.

어떤가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들 합니다.

누구는 큰 은혜, 누구는 깊은 사랑이라고,, 그렇다면 말이 아닌 삶으로 증명해야 맞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인데 곧 믿음 순종 침묵도 됩니다.

 

결론) 이스라엘민족이 홍해, 광야, 요단, 여리고성을 지날 때 언약궤중심이었습니다.

마침내 가나안에 정착해서는 성전중심이 되었습니다.

첩첩산중이라는 큰 장애와 많은 변화가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메시지인가요?

미4: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며 영원히

행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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