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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갈망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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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12-24 08:56 조회 1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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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위의 동요는 대한민국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정겨운 고향의 봄입니다.

이원수선생께서 작사하시고 홍난파선생께서 작곡하셨는데,,놀라운 것은 이원수선생께서 10세에 작사한 곡입니다.

마치 고향을 떠나온 지 수십 년쯤 된 그리움의 정서가 배어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된 우리에게는 어떤 그리움과 갈망이 있느냐 입니다.

 

1) 두 인물

예수님 탄생시의 두 인물을 소개합니다.

눅2:28~32)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이 시므온은 늙었지만 의롭고 경건한 남성입니다,

또 안나 라는 여성선지자는 일찍이 과부가 되었지만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던 인물입니

다.

 

이 두 인물의 특징은 같은 시대의, 같은 지역의 경건한 인물들로써 같은 믿음으로 주를 갈망하다가 마침내 탄생하신 주

님을 뵈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눅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오래 살면 별일을 다 본다고 하는데 맞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오래만 산 것이라면 못 볼꼴을 보는 경우가 많았겠지만,, 경건하였기에 하나님의 상급으로써 주님을 뵙

게 된 줄 믿습니다.

인류역사에서 이처럼 주님을 안거나 뵙거나 한 인물이 몇이나 됐을까요?

그러므로 이들은 주님을 우연히 뵌 것이 아닌 실상은 바라고 바랐던 기도의 응답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갈망하나요?

성도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설교는 “하나님의 복과 형통한 삶”이라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대체로 무엇일까요?

 

* 대체로 사람들이 갈망하는 일은 무병장수입니다.

이 갈망은 과학의 발달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과학을 신봉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장수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기에 과학신봉은 더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 세상을 떠나게 되면 어떨까요? “평안히 종을 놓아 주시는 도다” 하거나 아님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하

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그리움은 고향보다는 천국, 갈망은 무병장수 보다는 경건한 삶이어야 옳습니다.

실제 믿음의 사람들이 그처럼 살았기 때문입니다.

히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

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 대체로 사람들은 구원보다 마음의 평안을 더 갈망합니다.

2) 두 예수상

브라질에는 가장 높은 곳의 가장 큰 예수상이 서 있습니다.

710미터 산 정상에 35톤 석상이 30미터로 서있고 양팔의 길이가 23미터로써 마치 도시는 물론 지구의 모든 사람들을

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반대로 이탈리아 제노바에는 가장 낮은 곳의 예수상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구리상인데 “심연의 그리스도” 라고 부릅니다.

이 구리상은 매년 조류에 쓸려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기에 지금은 전문 다이버들도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높게? 왜 낮게? 왜 자동차에? 왜 목걸이에? 왜 목상? 석상? 구리상을 세울까요?

성경의 예수님을 날마다 뵙고 싶어 하는 마음일까요?

가장 높은 예수상은 부활하셔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시는 영광의 주님이시고,

가장 낮의 곳의 예수상은 온유와 겸손의 예수님을 본받기 위함인가요?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아니라,, 상을 세우고, 바라고, 찾아 기도하므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는

 그 신앙일 뿐입니다.

 

마차가 말을 끄는 신앙이 있고 말이 마차를 끄는 신앙이 있다면 믿겠나요?

복음적인 신앙은 성령이 믿음을 주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기에 구원 후 영생이 오고 기쁨과 평안이 주어집니

다.

곧 세상을 이기는 기쁨이고 평안입니다.

 

반면 이단적이고 신비적인 신앙은 도금신앙이기에 마음의 평안을 찾지만 평안도 얻지 못하고 구원은 물론 영생도 없습

니다.

전자는 하나님께 부터 온 선물이라면 후자는 마귀로 부터 온 거짓공작일 뿐입니다.

십계명의 첫 계명을 기억하시지요?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둘째 계명은 무엇인가요?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마라.

 

그러나 예수상은 괜찮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상이 아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일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고, 성경적으로 대속을 믿고, 부활과 승천과 재림과 천구과 지옥을 믿는 일입니

다

그 믿음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일이고,, 주님의 모든 말씀을 생활화하는 일입니다.

내 힘으로는, 또 도덕적으로는 힘들지만 믿음을 주신 성령의 힘으로 이루게 되는 신비가 있습니다.

 

3) 두 신앙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 두 가지만 존재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회색지대는 정치용어일 뿐 진리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유물에 마음 쓰는 골동품중심의 종교나 신앙이 있고, 역사사건에 마음 쓰는 종교나 신앙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유물을 찾는 고고학자 같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의 살아 있는 역동적이고 온기 있는 제자들입니다.

 

가장 큰 예수상을 높은 산 정상에 세우거나 찾거나 빌지도 말고, 그렇다고 가장 낮은 곳에도 세우거나 찾거나 빌지

를 말고, 오직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곳까지 참 빛으로 오신 주님을 사랑하고 닮기를 갈망하고 주님의 재림

도 갈망해야 합니다.

 

갈망은 기대하는 기다림입니다.

좋은, 사랑의 기다림은 4시가 약속시간이지만 3시전부터 초조해집니다.

말세의 성도들이 꼭 명심할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 재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또 명심할 말씀이 있습니다.

벧후3:11)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결론) 성탄절은 매년 오지만 성도의 기다림과 갈망은 일상에서 동행해야 합니다.

기다림의 성탄이 되어 주님을 뵙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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