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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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위는 한 위대한 성도의 신앙고백이고 간증입니다.
이런 신앙인이 얼마나 될까요?
1) 주의 말씀
주의 말씀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집니다.
주의 계명, 주의 교훈, 주의 법도, 여호와의 증거 등,
여러 이름을 가진 주의 말씀은 다 동일한 계시의 말씀이고, 성경이 주된 주의 말씀이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명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특징은 천지는 변해도 주의 말씀은 작은 글자꼴조차 변함이 없습니다,
상황과 유행은 시대 따라, 정치 따라, 사람들의 주장 따라 따릅니다.
이런 세상 풍조에 비하면 얼마나 변함이 없습니까?
그래서 세상과 주의 말씀의 괴리감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 틈새에 온갖 가짜가 비집고 들어와 설치고 있는 것이 말세입니다.
가짜 성경, 가짜 신학, 가짜 선지자, 그리고 가짜 목사,, 그리고 가짜 신앙과 가짜 성도가 있게 된 것입니다.
과학이 발전해서 온갖 지능로봇을 개발했어도 그 프로그램은 가짜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온갖 딥페이크를 만
들어 내고 있습니다,
딥페이크는 머지않아 혼동과 혼란을 주는 끔직한 해악이 될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구별할까요?
진짜는 진짜라서 특별히 강조된 점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지니고 있다면,
가짜는 처음에는 조악스럽다가 진화해서 진짜처럼 공교히 위장을 합니다.
마치 화장을 하면 비 눈물에 지워지듯이 가짜 진리, 가짜 신앙은 환난 날에 드러나 종말을 고합니다.
그러므로 진짜는 애쓰고 힘쓰지 않습니다.
진리는 그냥 증명되기 때문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짜는 그렇지 못해서 온갖 선전선동이 발달합니다.
보십시오,
신앙도 이단사이비가 요란하고 선전선동이 많고,, 정치도 인권, 민주주의를 앞세운 가짜 정치에 많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붙잡았느냐? 무엇을 믿느냐? 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뜬 구름을 붙잡았다면 이상을 말해도 가짜이고,
산과 바위를 붙잡았다면 공중 나는 새를 말해도 진리와, 참 신앙이 되는 줄 믿습니다.
미국의 목사 신뢰도가 32%의 사상 최저라는 최근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는 진리인 성경을, 믿음의 주인이신 주님을 잃은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반면 우리 대한민국 성도를 보면 아주 좋습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의 각 경전을 어떻게 생활하느냐의 조사인데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2) 진리의 생활화
이는 진리의 생활화를 말합니다.
* 정기적으로 경전을 읽거나 묵상시간을 갖는다.
기독교 62%, 카톨릭 36%, 불교 33%
* 경전의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기독교 78%, 카톨릭 55%, 불교 52%
* 경전을 읽고 생각하는 것은 내 종교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 77%, 카톨릭 46%, 불교 43%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주님의 놀라운 신비가 계시되어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무형의 진리가 유형의 몸이 되었고,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사셨는데 그 예수께는 아버지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아버지하
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는 선언입니다.
상상이 되나요? 상상이 아닌 믿음의 내용 중 일부일 뿐입니다.
진리의 생활화, 진리의 인격화는 어렵고도 단순합니다.
자주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실천해 보는 일을 통해 성숙되고 성장해야 합니다.
누구나 성경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읽는데 장애가 옵니다.
로켓이 우주로 나가는데 여러 단계를 뚫어야 하듯이 성경을 몰랐던 내가 성경을 가까이하는데
뚫어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무지의 단계,, 흥미의 단계,,많은 꿀송이 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단계,
시19:10~11)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그리고 이때에 말씀이 역사하는 능력을 경험합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좌우에 나선 어떤 검보다도 예
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질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여러분은 어느 정도인가요?
성경은 소유용도 아니고 장식용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다고 백과사전처럼 참고용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영혼의 양식이며 하나님의 뜻을 아는 등불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며 무조건 금식기도 하는데 괜한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는 떼가 소용이 없습니다.
밥 잘 먹고 성경을 집중해서 읽어 보십시오.
거기 길이 있습니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그렇다면 기쁘실 내용은 무엇인가요?
역시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3) 성경의 맛과 능력
말모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1940년대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사전을 편찬했던 실화를 다룬 영화입니다.
창씨개명과 일본어사용을 강요당하던 일본식민지시절이었기에 애로가 많았습니다.
사투리를 수집하고 공청회를 하고 그중 큰 애로는 일본 경찰의 방해와 핍박이었습니다.
이런 덕에 우리말과 우리글이 지금은 세계인도 배우는 우리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도 그냥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가죽이나 갈대 잎 혹은 토판에 기록하였습니다.
기록과 이동과 보존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인쇄는 필사였습니다.
고대 필사자들은 성경100행을 기록한 댓가로 25데나리온,, 한 달 봉급을 받았으니 마태복음이라면 2600 행 정도이니 2
년치 년봉을 줘야 얻을 수 있는 귀한 책이었습니다.
이 귀한 성경책이 은둔의 나라인 조선에 보급되었습니다.
어땠을까요? 보급과 번역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최초의 순교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는 대동강에서 잡히자 한문 성경을 뿌렸습니다.
그런 성경이 자금은 너무 흔한,, 쉬운 책이 되어 우리들 손에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흔하면 값은 내려가기 마련이어서 성경은 공짜로 뿌릴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양이나 글씨의 크기가 중요해도 번역이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읽는 일이요, 믿는 일이요, 그처럼 사는 일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성경을 옮겨 썼던 필사자들이 되어 한자 한자를 성심성의로 읽어 보십시오.
필경은 많은 꿀송이 보다 더 단 말씀의 맛을 알게 되고, 필경은 그 성경말씀이 살아서 내게 말씀하시는 바를 경험할 것
이라 믿습니다.
결론) 신앙 초기에는 성경에 대한 고백이 많습니다.
성경을 가까이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까이 하실까요?
중독성이 없는 성경을 생활화 하시고 인격화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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