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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만 밟는 신앙 > 설교말씀

마당만 밟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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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08-20 07:43 조회 1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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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선지자가 크게 외쳤던 이스라엘시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휩쓸리던 때였습니다.

사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

로다

강대국이 쳐들어왔다가 물러간 때인 만큼 놀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외교적인 분석과 정치적인 평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오른 쪽에 있다고 하셨기에 타락한 세상의 안목과 지혜로는 가장 본질적이고 정확한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계시해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계시가 얼마나 귀하고 좋은지요?

신이라 칭하는 우상들과 확연한 구별이고 하나님만의 탁월함이기도 합니다.

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하나님의 계시는 이렇듯 임합니다.

모세에게는 직접적으로 혹은 보여주셨고,, 백성들에게는 계속적으로는 대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때로는 사건과

 상황을 통해서,, 그리고 지금은 성경과 성령님을 통해서 국가적이고, 민족적이고, 개인적 관계 속에서 말씀하고 계십

니다.

 

지금은 큰 국가의 침공에서 이스라엘이 겨우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가 좋습니다.

여기에는 두 갈림길이 있습니다.

사1:19~20)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에 말씀이니라

 

세상은 오늘도 변화하기에 하루 상관으로 문화나 도덕이 달라지곤 합니다.

중국이 배꼽티를 입게 되니 반창고처럼 붙이는 가짜 배꼽이 나왔습니다.

실제 배꼽 보다 높이 붙여 몸 비율을 좋게 만드는 술수인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비키니 차림으로 오토바이와 킥보드를 타고 강남대로를 달렸습니다.

아직은 풍기문란이라지만 머지않아 이상한 일이 아닐 듯합니다.

생명감수성이 없어져 큰 거리에서 무차별 흉기를 휘두르고,, 또 따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있고 영원은 없습니다. 실용만 있고 예법은 없습니다. 자신만 있고 남은 없습니다,

 

이런 대세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무엇이 가치이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가치와 신앙적 가치는 무엇인가요?

오늘 하나님은 제사와 절기와 제물을 말씀하시면서 저들의 드려진 모든 것들이 되레 하나님을 피곤하게 만들었고 하나

님 집 마당만 짓밟고 있다며 탓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열심히 했건만,,하나님은 유익하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신다니,,

사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무엇이 문제인가요? 무엇이라 여기나요?

 

2) 문제

문제는 많은 것 같아도 딱 한가지로써 하나님무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면 언제나 일어나는 현상은,, 바탕이 흔들리고 마침내 전체가 흔들리다가 망하게 됩니다.

인류가 1,2차 세계대전을 치룬 이유를 여기서 보았던 독일신학자 폴 틸리히는 하나님에 대해 “갖지 못함, 알지 못함, 보

지 못함, 붙잡지 못함” 이라 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순살 아파트가 등장했는데 이는 웃기는 말이 아니라 끔찍한 말입니다.

철근 빠진 아파트를 조롱하는 말이라서 그렇습니다.

내노라 하는 건축회사의 똑똑한 이들이 자기들 살 꾀를 낸 것이 결국 죽을 꾀를 낸 것입니다.

그 이유는 거짓과 불량인데 하나님이 없어서입니다.

전쟁도 이유가 무엇이든 하나님 없는 족속이나 이념이 발발시켰으니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시대와 민족과 사람은 유 무식을 떠나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며 두려움이 없습니다.

결국은 그 모두 생각과 행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어 궁극으론 망하게 됩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백성인 작은 이스라엘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왔습니다만 이들을 멸하려했던 국가와 족

속은 그 자체가 다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차이가 의냐 악이냐를 결정이지어서 그렇습니다.

사3:10~11) 너희는 의인이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와 열매를 먹을 것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

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하나님을 안다는 지식과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셨습니다.

다윗이 완전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뜻입니다.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했을 때에 동굴에서 자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종이라 하여 죽이지 않았

습니다.

훗날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절름발이 손자를 자신의 궁궐에서 왕자들과 먹고 마시도록 후대했고, 

다윗이 부하장수의 부인과 범죄 했을 때에 베개를 적시면서 눈물로 애통했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에는 하나님사랑이 열렬했고 그 사랑은 주님의 말씀을 지켰음을 압니다,

시편146편을 함께 봉독해 봅시다.

특별히 (146: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

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도다

정말 하나님을 아는 성도는 이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그 마음에 동행하고자 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번지수

하나님의 번지수를 보십시오.

사1:16~17)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주님이 강도만난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인을 예를 들어 말씀하셨음과 같습니다.

거반 죽게 된 사람을 그 잘 났다는 제사장님과 똑똑하다는 서기관님은 그냥 지나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대접 받지 못했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살리고자했으니 하나님경외는 누구인가요?

 

세상 모든 만물은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에 목적과 손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다람쥐는 먹이를 감춘 후 잊어버려 그 감춘 열매가 숲을 이루게 합니다.

사람은,, 성도는 무슨 용도인가요? 예배용입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케 됐으면 거룩한 옷을 입고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자여야 합니다.

또한 삶에서 주님의 동역자로서 주님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눈이 되어 약한 자를 살도록 살피는 예배자도 되어야 합

니다.

사도들이 복음전도에만 열심이었다면 착각입니다.

전도에 구제는 공존해야 할 일이기에 구제를 항상 힘썼습니다.

 

혹자는 선행과 정의구현을 이루면 행위구원론자라 하고 사회복음이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아닙니다, 

실제는 이 모습이 성화의 모습이요, 주님의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이를 모를 때 의전적인 예배자로 만족하여 성전마당만 밟는 신앙이 되고,,아님 사회운동만 부르짖게 되어 한쪽으로 치

우치게 됩니다. 두 날개 균형이 요청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랑으로 열성만 있고 주님마음에서 동떨어진 성도를 부르시고 찾으십니다.

자기 사랑과 시대 따르지 말고,, 지금 다시 시작하시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이,,아니 극동방송청취자들이 얼마나 성숙한지,, 우크라이나 아동들을 위한 전국 모금생방송 2시

간에 30억이 모금되었으니 주님을 웃으시게 한 줄 믿습니다.

 

결론) 우리의 신앙의 열심은 좋으나 자기만 위한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러 주님께 나가야 합니다.

사1:14) 내 마음이 너희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우리는 우리의 때가 아니라 주의 때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상숭배는 섬기는 사람의 멋대로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기에 편함이나 느낌대로가 아닌 계시대로 바르게 섬겨야 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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