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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 설교말씀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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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10-15 09:38 조회 16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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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여 홍해를 지나 광야를 거쳐 이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죽었고 대

신 여호수아가 그 후임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백성을 인도하는 상황입니다.

 

1) 상황

오늘의 상황을 보십시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홍해가 막혔던 상황처럼 요단강이 큰 장애가 되어있습니다.

바다가 아니라서 좀 더 수월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강물이 만만치 않은 때입니다.

수3;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이런 때에 하나님은 침묵보다 말씀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홍해를 건넜던 믿음의 경험자들이 모세처럼 거반 세상을 떠났기에 신세대들에게는 넘실대는 강을 건너는 일은 큰 근심

이고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강을 건너는데 기술이 아니라 성결이라니,, 의아할 수 있는데 이 모습이 기독신앙입니다.

신앙은 타협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명령에 믿음의 순종입니다.

믿고 순종하면 복이고 힘이지만 불신하고 불순종하면 화가 되는 불변의 원칙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주신 약속은 어떤가요?

수3:5) 여호와께서 내일(강을 건너는 날) 너희 가운데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과연 순종했던 나중의 결과는 어땠나요?

수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

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마른 땅처럼 안전하게 건넜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이란 난감하고 힘들어도 순종하는 일입니다.

순종이 믿음이라지만 그 기본은 영육의 성결함에서 나오는 능력이어서 그렇습니다,.

물로 씻는 것만이 아닙니다.

주의 보혈로 씻김을 받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이 따르는 것입니다.

 

성결은 생각만 해서는 성결할 수 없습니다.

행동이 되고,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어야 하는데,, 내 힘만이 아닌 회개했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보헤사 성령이 보혜사

오셔서 우리의 성화를 이루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2) 어떤 사고,

생각해 보십시오,

범람한 강을 건너는데 무엇이 필요할까요? 과학적 사고일까요? 순전한 믿음일까요?

사람들이 과학적 사고라면,, 하나님은 순전한 믿음을 원하셨습니다.

 

이 일은 언제나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의 관건이기도 합니다.

산 사람은 어떤 생각을 붙잡느냐? 따르느냐? 따라 죽거나 삽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육신의 사람은 세상 생각을, 영의 사람은 성령 충만할수록 성령을 따르고 있음을,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현대는 이전 보다 더 크고 더 조직적으로 우리의 신령함을 훼방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지배한 시대정신입니다.

모더니즘이라고도 하는 근대주의에서 비롯된 포스트모더니즘인데 현대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근원은 15세기에 있었던 르네상스가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쳤고, 17세기 과학혁명을 통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때

에 그 절정을 이루게 된 일입니다.

 

그 특징 중 두드러진 것은,

이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깁니다. 또한 인

간의 이성으로 신의 역할을 능히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도 유토피아를 건설 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또한 과학적 사고를 통해서 실증할 수 있는 것만

이 진리라고 주장을 하며, 이것을 학교교육을 통해 주입하여 학생들은 무신론자가 되었고 인본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을 복되게 한다는 과학 기술은 오히려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참혹한 전쟁을 불

러왔습니다. 모더니즘이 주장하는 유토피아 꿈은 깨졌고, 포스트모너니즘이 등장했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모더니즘 보

다 오히려 더 부정하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기준이 진리인데, 사람들이 진리로 기준하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쁨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것이 온당하지 못하고, 이를 강요하는 것조

차 무례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습니다. 이 탓에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보편적으로 가

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생각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진리가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자기들만이 옳다는 팬덤정치의 형성 이유가 여기에 있고, 신앙적으로는 이단사이비가 증

가한 이유도 포함 될 것입니다.

 

3) 성령으로,

그러므로 성도는 정신부터 순결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지난 주일의 설교를 상기에 보십시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일치되리요?”

진리를 붙잡은 분명한 정체성은 성결함이기에 “사랑하여라.” 와도 맞물려있기에

사랑하기 이전에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일이 옳은가요?

성도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 구원 받은 우리끼리만 뭉쳐야 하나요?

아님 주님처럼 모든 인종, 종교, 성별, 나이를 초월한 사랑으로 포용해야 하나요?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다고 믿나요?

 

여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성결을 지키자니 사랑이 울고, 초월적인 사랑을 이루자니 성결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어떠하셨을까요? 초월적인 사랑을 이루셨나요?

주님은 세리와 창녀를 사랑하셨지만 바리새인들에게는 책망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차별이고 무조건이지 않은데 왜 일까요?

성령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셨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

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우리는 어때야 할까요?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할 수 있거든”을 유념해야 할 것은 무조건이나 강제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믿을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기에,

성령을 떠난 성결과 사랑은 어쭙잖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칫 사랑이니,, 관용이니 하다가 불신과 죄와 연합되고 일치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

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거룩이요, 성결함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가까이 할 수 있어서입니다.

그러면서 이웃사랑은 자기 사람부터 그리고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나아가 핍박하는 원수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성

령이 주시는 사랑의 능력을 따라서입니다.

마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결론) 사람은 저마다 역량이 다르듯이 성도의 성결도, 믿음도, 사랑도 다릅니다.

잠잠하면 병약하거나 죽음에 이른 것이지만 계속 운동력이 있고 성장하다면 건강한 것입니다.

나의 성결은 어떤가요? 건강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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