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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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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11-26 15:01 조회 151회 댓글 0건

본문

소문은 빠르게 퍼집니다.

금번 2023 롤드 컵 결승선서 우승한 T1 소속 이민형선수의 신앙고백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승리의 소감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한 덕에,

“ 나도 이민형선수 따라 교회 간다.”는 청년들이 생겨났다니 알만합니다.

 

1) 소문

나쁜 소문은 좋은 소문 보다 더 빠르게 퍼집니다.

정보화시대에는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는 만큼 사람들이 더 똑똑해야 합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나 믿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별력은 말이나 포장이 아니라 열매를 보고 판단하는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수6: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명성) 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여호수아의 소문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좋은 소문입니다.

그 증거는 무엇일까요? 지금까지의 모든 위력적인 일들이었습니다.

모세의 후임자로서 그 민족을 인도하는데 있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더니 이상 없었던 모든 일들이었습니다.

넘실대는 요단강을 제사장들을 앞세워 건넜으며, 여리고성도 돌고 돌아 함락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만이 아닌 기생 라합에게 했던 약속도 신실하게 지키는 모습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도 보았을 줄 믿습니다.

수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

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실제 이 모습이 주님이 이 세상에서 사셨던 모습이고, 사도들의 모습이었으며, 교회의 지체된 성도의 모습이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신뢰가 없으니 가짜 신뢰, 세상 권위로 꾸미게 됩니다.

가짜와 사기범들이 특징이 무엇인가요? 무엇이든 진짜스럽게 꾸밈에 있습니다.

자신의 경력과 주변을 꾸미고,,권세나 재력도 꾸며 허세를 부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진짜와 비슷해도 다른 것이 진짜는 꾸밈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항상” 온유하시고 겸손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도 보십시오.

요11:41~42)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시는 것을 감사하

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아니 다윗의 기도도 보십시오,

시56: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이렇듯 진정한 믿음은, 진정한 권위는, 요란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았습니다.

보이는 전시용이 아닌 실제적 인격이고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응답도 그렇습니다.

엘리야선지자가 바알을 섬기는 무당들과 갈멜산에서 참신내기를 할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우상숭배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해하며 피를 흘리고, 큰소리로 바알을 부르며 요란하게 춤을 추었어도 아무런 응

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이여하나님이여 응답하소서.” 하며 하나님께 간단히 기도했을 때

이에 불이 내려와 제물과 도랑의 물을 핥으므로 응답하셨습니다.

 

2) 능력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여호수아는. 그리고 교회는, 그리고 성도는 언제나 두드러지는 특성이 있는데 곧 말씀의 능력이

고 성취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함락한 여리고성에 대하여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수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

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도 원한은 돌에 새기는 어리석음도 있지만 세월 앞에서는 다 잊곤 합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진지 500년이 지나고 보니 이 성에 대한 저주를 잊었고,

혹은 “나는 괜찮아” 하면서 과신하는 히엘 같은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긴 세월 속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기에 말씀대로 죽는 성취가 일어났습니다.

왕상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이처럼 하나님과 말씀은 세세토록 변함이 없기에 두려운 진리이고 말씀입니다.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좀 더 지났습니다.

아까는 엘리야였고 이제는 그의 제자인 엘리사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였습니다.

왕하2:18~19)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위치는 좋으나” 즉 “ 터는 좋으나” 물이 나빴으니 가축들도 새끼를 유산하고 곡물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때까지 여리고성에 저주는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근본이유를 사람들은 몰랐으나 하나님의 사람은 알았기에 하나님방법으로 해결합니다.

엘리사가 소금을 그릇에 담아 물 근원에 나아가서 뿌림으로 저주가 속량된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능력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었듯이,,

엘리사를 통한 물의 구원이 여리고성의 전체가 살게 된 것처럼 영혼의 구원은 전인격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

려 하심이라

이미 내려진 하나님의 사망선고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풀린 것입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 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

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런데 이 능력을 잊거나 잃은 것은 교회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새 생명축제라고 하면서 예능인들을 대거 불러다가 행사 치르는 일은 무엇이고,

과연 어떤 소문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코브라가 창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국가시책으로 포상금을 걸고 코브라를 잡게 했었습니다.

시책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브라가 되레 늘었습니다.

사람들이 코브라 농장을 운영했던 탓입니다.

결국 포상금시책은 사라졌고 사람들이 키우던 코브라를 방치하므로 더 많은 피해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시책도 죄성은 역이용하므로 역효과를 나타내는데 이를 “코브라효과“라고 합니다.

 

성도가 꼭 명심해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고 볼 수 없으니 들어갈 수 없습니다.

새 생명축제는 세상이나 인간적인 방식의 축제가 아니라 말씀능력을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

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은 거두어들여야 하고 주의 말씀과 능력을 나타내야 옳습니다.

 

결론) 여호수아의 소문은 지금까지의 축적된 평판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보다 더 여호수아처럼 주님과 함께하심이 증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비결은 콘텐츠 보다 팩트인 성경을 붙잡고 잘 믿는데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바울이 두란노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칠 때 마술하던 사람들은 물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

했습니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운동력이 있고 생명력 있는 주의 말씀이었습니다.

행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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