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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와 에브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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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12-31 14:04 조회 16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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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도의 마지막 주일이고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항상 마지막이라면 숙연해 지고 생각이 많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또 한 해를 맞이하는데 무엇을 떠나보내며 무엇을 희망해야 할까요?

 

1) 상황

교수신문에서는 이때쯤 한해를 평가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하는데,,올해는 ‘견리망의’ 였습니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 라는 뜻으로, 한마디로 먹고사는 일이 더 팍팍해 졌고 정의는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인공지능 쳇 로봇이 금융자본과 결합해서 많은 분야에 잠식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최근 3만 명을 감원했다니 듣기만 해도 불안의 시대요, 현저한 빈부의 격차로 가난한 사람은 개인의 고립도 짙

어져 두려움을 갖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올 한 해 밑줄 치고 읽은 성경구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1위는/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2위는/

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남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3위는/

마6:33) 그런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그 다음에는/

여호수아에게 하셨던 “강하고 담대하라” 또 로마서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등,

대체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성경구절은 성도의 현 시대의 상황을 반증합니다.

지구저편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살생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높은 물가와 높은 이자는 코로나 이후 불경기와 겹쳐 더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겠다” 아니 “죽을 것 같다” 는 말을 달고 또 실제 극단의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도들의 입에서는 그런 부정적인 말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도의 믿음은 낙심과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보기 때문인데 그 소망은 주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늙어 힘없는 나귀가 쓸모가 없자 사람들은 매장하려 구덩이에 밀어 넣고 흙으로 덮는데 나귀는 그 흙을 딛고 나왔답니

다.

늙은 나귀가 힘은 없지만 꾀가,, 지혜가 있었습니다.

성도가 그렇고 믿음이 그렇지 않나요?

사망으로 에워싸임을 당하고, 꺼꾸러트림을 당하고, 핍박을 당해도 되레 딛고 이겨 내는 믿음이 있습니다.

 

2) 큰 상황

지난 한해에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일은 무엇이었나요?

내게는 이사, 코로나와 폐렴, 잉태소식이었습니다.

 

* 돈 있는 이사는 재미있을지언정 돈 없는 이사는 언제나 걱정인데,, 아이들 집까지 다 이사했습니다.

 

* 중국을 다녀오면서 코로나와 폐렴을 앓았습니다.

전염력이 강한 병이기에 토요일에 귀국하였기에 공항에 나온 아이들과 주일에 만난 교우들이 걱정이었고 그 후의 폐렴

은 급히 입원을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 새 생명이 아들네와 딸네에서 잉태되었습니다.

엇비슷한 출산일 예정되었기에 생각은 많았지만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의논하거나 계획해서 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어났습니다.

며칠 전 아들아이가 그랬습니다.

“아버지,,이사를 우리가 계획했다면 자칫 배불러서할 뻔 했는데 미리 이사해서 다행이어요, 결국은 인도하심인 것을 알

았기에 감사했어요,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참 많아요.”

잠10: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아니 또 있습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

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런 일들은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에도 또 그 다음에도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

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3) 두 아들

애굽에서 오랜 고생 끝에 이방인으로서 총리가 된 요셉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남은 ‘므낫세’ 라고 하였고 차남은 ‘에브라임’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름은 계시 받은 이름도 아니고, 작명소에서 사온 이름도 아니며, 오직 믿음에 의한 고백이었으니 요셉의 신앙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51절) 므낫세/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하나님은 과거적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따라서 성도도 과거에 몰입하면 현재는 물론 미래가 없어집니다.

대체로 손톱 물어뜯는 사람들의 특징은 과거적입니다.

과거는,, 흑역사일수록 빨리 잊어야 합니다.

요셉에게는 형들에 대한 복수심이 없었습니다.

노예살이와 감옥살이와 대한 원망과 불평도 없었습니다.

물론 있겠지만 하나님이 잊게 하심이라 했으니 잊는 것도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은혜의 증언입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요?

빛이 오면 어둠은 자연 물러가듯이,, 이런 믿음의 희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를 보면 후회 원망 불평은 일정 없음이 참 믿음의 격을 보여줍니다.

 

하루하루, 한달한달, 일년씩 세월이 매듭이 진 것은,, 편리함도 있지만 당일은 당일에, 한 달은 한 달에, 일 년은 그해에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라 하심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잊을 것이 있다면 우리가 기대하며 희망할 것도 있습니다.

52절) 에브라임/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소망을 분명히 붙잡은 모습입니다.

자신이나 총리직이나,.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확신이었습니다.

그냥 막연한 믿음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분명했으니 “하나님” 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행동도, 삶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된 줄 믿습니다.

 

들리는 소리와 언어가 없어도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대로 소리쳐서 서로 모양과 무늬를 만들어 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이유는 감옥에 들어간 이유였고, 그 감옥은 억울한 누명이었으며, 애굽으로의 이주는 형들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디가나 충성했으며 신임을 얻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형을 찾아보라 했던 일도 아버지의 신임이었고,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신임 받았던 것입니다.

 

이 신임은 내가 만드는 나에 대한 충성입니다.

그래서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였다 함이요”라고 진술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시고 남이 알아준다는 믿음의 실체인 것입니다.

흔히 지도자는 존경을 받아야 된다고 말하는데 실제는 신뢰여야 합니다.

 

결론) 나를 내가 신뢰할 수 있나요?

세상과 정욕에 속한 것은 십자가에 묻고 하늘과 주님께 속한 것은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믿음으로 가고 최선으로 살아야 합니다.

곧 거룩한 길을 가며, 주님과 동행하게 되고, 때가 되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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