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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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한 해의 기적을 이루는 삶을 산다면 성도는 어때야 할까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삶이고 그 모습은 “할렐루야”입니다.
1)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감사와 경배의 뜻인 일종의 감탄사입니다.
라틴어 읽기에 따라 “알렐루야” 로 발음되기도 하지만 뜻은 같습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시편낭독의 후렴구나 교회절기에서,,
또 공동체나 개인이 기쁨이나 감동을 표현할 때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도 이 할렐루야가 가뭄의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의 기쁨이 멈추었고 기도의 응답과 신유의 능력이 다 멈춘 탓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도하지 않으니 구원받은 사람이 없고, 기도하지 않으니 응답이 없고, 손을 얹기 보다는 의사와 약을 먼저 찾으니 하
나님의 역사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 할렐루야의 회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본문에 앞선 111편을 보시고 뒤편 113편을 보십시오, 그리고 116편과 117편을 보십시오.
할렐루야의 풍년인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18:14~16)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 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그러므로 할렐루야는 생기의 외침이고, 주님께 향한 기쁨과 감사의 고백이고, 주 역사하심의 간증입니다.
이 할렐루야가 예배에서 가뭄이다? 성도의 입에서 실종되었다? 불행입니다.
마음은 흉년이고, 영혼은 병들고, 삶은 피폐해진 증표입니다.
그렇다면 시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의 성도들이 천기를 분별하면서 시대를 분별하지 못한다고 책망하셨다면,, 이제는 더 무뎌져서 자신
의 피폐함을 모른 체 믿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 진단이 본문 첫 절에 있습니다.
시112: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삶으로,, 내 구주 예수를 참사랑하고 입니다.
위의 모습을,, 공부시간에 먼저 와서 앞자리에 앉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늘 지각하면서 뒷자리에서 자거나 장난치는 학
생들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누가 우등생일까요? 누가 모범생일까요? 누가 상급학교에 갈까요?
나는 어떤 학생일까요?
2) 복이 있도다
성도의 복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옴을 명심하십시오.
복은 하나님이 근원이시고 모든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느끼고 입술로 고백하며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영접했고 입술로는 그 이름과 구원을 찬양하며 실제로 사는 일입니다.
몸이 성장하듯이 믿음은 성숙하면 마음에서, 입술로, 그리고 삶이 따라 주는 데까지 미칩니다.
시112:4~6)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여기 한 공식이 나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합니다.
경외는 사랑의 크기라서,, 사랑할수록 계명이 무겁기보다는 즐거운 계명이 됩니다.
그 계명을 크게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고 그 삶에는 정의가 있습니다.
비록 세상이 악하고 어두워도 그 사람은 빛을 발하며 자비롭고 긍휼의 은혜를 베풉니다.
이런 빛의 열매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표입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며 복을 선물로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시112:2~3)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음이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믿음의 부모는 이 삶을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 자식은 자연히 닮게 됩니다.
그 가정은 천국입니다.
반대적 모습이 무엇인가요?
시112: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특히 악인들이 소멸될 때의 특징이 하나 있는데 “후회” 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할렐루야와 비교해 보십시오.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이 두 사람을 비약시키면 국가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가치관으로 세워진 국가와, 역사는 오래되었어도 유물관으로 세워진 국가는 사는 방식이 매우 다릅니
다.
전자는 정의가 있고 이웃과 친화적이며 원조는 하되 군림하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세계질서를 어지럽히고 자기 백성들도 후대하지 않습니다.
작은 차이 같지만 큰 차이 아닌가요?
같은 반도에서도 휴전선을 따라 전등불로도 어둠의 나라와 빛의 나라로 확연히 구별됩니다.
결론) 누구나 복은 바랍니다.
그러나 누구나 받질 못하기에 그 복은 만들기보다는 믿음으로 선물 받아야 참 복입니다.
하나님 경외는 몸 쓰는 일인 만큼 하나님사랑하고,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합시다.
그럼이 실제적 할렐루야로써 하나님과의 동행이고 주 안의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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