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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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란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면 사랑은 무엇인가요?
베드로 사도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4:8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정의도 있고 섬김과 나눔도 있고 또 기타 등등 많습니다.
1)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돌아가시기 전 가장 비장하실 때에 유언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길 원하셨고,
나아가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주 안에서 하나 되고 사랑하길 주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더 사랑하지 못했다” 는 후회가 있을 만큼 사랑은 오늘의 삶이어야
합니다.
사는 날이 많은 것 같아도 실제는 짧고, 세월 역시 느린 듯해도 쾌속열차 빠르기 때문입니다.
왜 슬픈 세상이 되고 아픈 시대가 되었나요? 집이 없고 밥을 못 먹어서요?
사랑이라는 말은 풍년이지만 실제 사랑은 감정이 아닌 진실이라서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서로 사랑하라”처럼 단순하면서도 진지하고 심오한 행동이 있을까요?
많은 말들 중 이처럼 깊이 있고 따뜻한 말이 또 있을까요?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요?
“사랑하고 싶어라” 보다 “사랑합니다.” 가 되어야 합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는데,,사랑도 상호적일 때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 주문하신 것이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건강해지고 더 커져서 더 나은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특성입니다.
기러기들이 날면서 “끼륵끼륵” 소리를 내는 일은 서로의 격려의 소리이고, 앞섰던 선봉자를 교체하는 일 역시 저항을
많이 받았기에 쉼을 주는 일인데,,이 모습이 기러기들에게 있어서는 서로의 사랑인 줄 믿습니다.
2) 말세의 사랑
주님께서 말세에는 사랑이 식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말세가 언제냐 한다면,,주님 처음 오셨던 그때부터 주님재림하실 때 까지가 말세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갈수록 사랑은 점점 더 식어지는 것이고,,
기근과 지진과 민족과 나라 간의 대적은 점점 더 증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사랑 식어짐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어느 덧 반려견 1500만 마리 시대가 되어 식용견에 관한 사육, 도축, 판매 등은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개호텔, 개유치원,
개보험 등의 개산업은 증가되었습니다.
교회적으로는 “개를 데리고 예배해도 되지요?” 또는 “개가 아프거나 죽으면 목사님이 축복기도 해주거나 장례를 집례
해 주지요?” 하는 일과, 일반적으로는 “개가 죽었다고 장례장에 오라고 초대를 받았는데 부의금을 해야 하나요? 얼마
나 하나요?”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또 개모차 판매량이 유모차를 능가하는 등의 웃픈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이웃사랑은 물론 노약자사랑은 식어짐을 듣거나 볼 수 있습니다.
유명인이나 힘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돈 봉투 들고 줄서서 있어도 노숙인들 식사자리에는 눈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인격적인 사랑이어야지 지나친 동물사랑만은 곤란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을 사랑할 때, 또 서로 사랑할 때 사람이 사람다워집니다.
그런데 동물에게만 사랑을 주고,,동물의 사랑을 받기 위해 그 동물을 받든다면 사람으로서의 지위는 잃고 동물처럼 하
급화 됩니다.
인격에는 사랑을 제칠 수 없고 사랑도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돈 사랑하는 것,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참사랑이 못됩니다.
한갓 탐심이고 탐욕이기 때문에 비인격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요13:3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먼저 강조됨이 무엇인가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의 모범이고,
두 번째는 “서로 사랑하라” 즉 사랑의 대상과 방식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확실한 조건과 보장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인격간의 사랑을 반복으로 말씀하셨고,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주님의 보장이 또 계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원한다고 해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멋지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데도 어려운 이유는,,, 죄가 득세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사랑도 위에서부터 임하여 원수라도 사랑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마치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듯이 사랑도 하나님사랑을 깨닫도록 물댄 동산이 되고 샘이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됩니다.
고전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3) 옛 계명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 를 새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새 계명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는 말씀처럼 민족과 시대를 초월한 유연한 계명인 반면 옛 계명은 모세로
부터 세례요한의 때까지, 유대민족에게만 해당되었던 폐쇄적인 율법이었습니다.
이 율법에는 “~ 하지 말라”는 계명은 365일의 숫자와 같고,,
“~ 하라”는 계명은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인체의 뼈와 장기의 숫자만큼 246가지입니다.
이 율법의 특징은 가지 수가 많고, 하나님이 주신 만큼 의롭고 완전해서 아무도 이 계명을 지킬 수 없어, 따라서 그 앞
에서는 의인이 없고 다 죄인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구원을 주시는 목적이 아니라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이신 주님께 인도받는 목적으로 주신 것입니
다.
이 율법을 압축하면 십계명이고, 더 압축하면 사랑이 됩니다.
주님은 이 참사람으로 율법을 이루셔서 완전한 의인이 되셨고 죽기까지 죄인을 대속하셨기에 하나님 의와 사랑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훗날 요한 사도는 이 사랑의 사도가 되어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하며 “자녀들
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했습니다.
주님을 믿어 새 계명을 받은 우리는 새 부대에 담긴 새 포도주입니다.
유대민족이 아닌 성도이기에 주 안에서 국경과 민족을 초월해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우리게만 주신 미션이 등장합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
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가시밭의 백합화”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바람이라는 시련은 가시나무가 백합화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받은 백합화는 향기를 토하였고, 이제는 그 바람이 백합
화의 향기를 널리 퍼지게 한 모양새입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사랑에서 떨어지면 상처 주는 가시나무이거나 상처 받는 백합화에 그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에 힘입으면 내적 치유가 일어나서 자존감이 건강해 지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줄 믿
습니다.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우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
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사랑은 뜨거울 때 사랑답습니다.
하나님께서 짝 지워 주신 가족부터 사랑하시고,,용서하시고 점점 지경을 넓히시길 축복합니다.
결론) 성경적 사랑을 음미해 봅시다.
고전13:4~8)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
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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