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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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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02-11 08:59 조회 163회 댓글 0건

본문

누가 그랬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나요?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도에 대한 이해를 다르게,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기도는 짧거나 긴 기도이기 보다는 바른 기도여야하기 때문입니다.

 

1) 기도에 대한 이해

성경은 자녀들에게 쓰신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의 편지라면, 그래서 잘 듣기위해서 잘 읽어야 한다면, 기도는 그 자녀가

 사랑하는 하나님아버지께 쓰는 종합편지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도하면 간구만 생각하는데 기도만이 아니라,,시도 있고, 대화도 있고, 그 누구에 대한 칭찬이나 반대적인

 고자질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옛컨대 날씨에 대한 느낌이나 뉴스를 읽은 소감도 있고, 어제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계획발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기도를 보십시오.

붙잡시기 전의 기도로써, 신학적으로는 대제사장적인 기도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물론 정차 그 제자들을 통해 주를 믿게 될 모든 성도들을 위한 포괄적인 기도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요17:20~21)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

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

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 모습을 다른 말로는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한, 나만의 기도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공동의 선과 유익을 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기도는 발전해야 하고, 훈련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그런 기도가 주종을 이루고, 또 이방사람들이 중언부언하는

 것 같은 속없는 기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늘의 하나님께 향합니다.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 하늘의 하나님은 주예수의 아버지시고,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한량없는 은혜의 아빠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시18:25~27)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을 낮추리이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주님의 이름으로도 빌어야합니다.

주님도 그러셨으니 우리는 그래야 합니다.

요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요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천주교에는 기도모범이 있고 기도집이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왜곡을 옳게 인도한다지만 그들은 성모마리아나 다른 성인에게 기도하며 비는 일도 있기에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믿음이고 기도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면서 기도의 모범과 실천을 보이셨습니다.

그 첫째가 무엇인가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요” 바른 기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하신 하나님영광을 구하셨기에 모든 기도의 목

적이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2) 기도의 관계

성도는 하나님아버지와의 관계에 따라 기도의 질이 달라진다면 믿겠나요?

요11:41~42)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

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은 하나님아버지와 막힘이 없으셨습니다.

이렇듯 좋은 관계는 기도도 막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관계에 거리가 생기면 큰소리로 외쳐도 불통되고, 관심이 없으면 쳐다보지도 않게 됩니다.

내 죄는 관계를 멀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좋고도 평화로운 관계는 무엇일까요?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이고 삶입니다.

곧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써 주님 닮은 모습인 줄 믿습니다.

이 관계가 주님이 습관적으로 기도하신 이유가 되며, 믿음의 선진들의 기도도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살면서 부부나, 부모자식간이나, 형제나, 친구 간에도 관계개선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잘못의 지적이 아니라 스스로 잘못인정이고, 자백이며, 고침일 때 관계개선이 일어나듯이..하나님과의 관계개

선이 꼭 필요합니다.

이 관계개선에서 잃지 말아야 할 덕성은 진실성 아닌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실 기도는 회개기도가 됩니다.

잠29:19)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많은 사람이 모였어도 잘난 얼굴은 곧 눈에 띕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가면 잘난 얼굴 보다 좋은 기운의 얼굴이 오랫동안 남게 됩니다.

그 사람의 속이,, 내면이 빛나서 그렇습니다.

미국 1센트 주화에는 아브라함 링컨의 초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얼굴이 잘난 얼굴이 아니라 못난 얼굴이었기에 놀림도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이 다르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수염이나 성형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신념과 삶이 그의 얼굴을 바꾼 것

이었습니다.

비슷하게는 남아프리카국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흑인인권을 위한 투쟁으로 27년의 부당한 감옥살이였지만 용서와 평안을 이루었기에 만인이 다가갈 수 있는 얼굴로써

지금도 기억이 됩니다.

 

성도의 얼굴은 어떨까요? 기도하는 성도,,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성도의 얼굴빛은 어떨까요?

어떤 수술 칼로도, 어떤 화장품으로 만들지 못한,, 주의 광채가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요18:5~6)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있더라 예

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언제나 하나님을 뵙는 사람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고, 그 사람은 거룩하고 담대한 사람이기에 세상에는 두려움이 없

게 됩니다.

이 모습이 성도의 빛이고, 검이며 갑옷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뵐까요? 기도 외에는 없는 줄 믿습니다.

 

성도의 기도 보자기에는 세상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아버지 앞에서 빌고 아뢰어서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야 합니다.

아멘과 동시에 다시 다 담아서 갖고 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래 전 한 권사님은 큰 배낭을 메고 가방은 늘 들고 다녔습니다.

내용을 물으니 기도 보따리랍니다.

아주 오랫동안,, 오래된 기도메모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진작에 없어야 할,, 감사와 찬양으로 대체될 것들인데,, 낡고 묵은 것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메모는 자주 버리고 찢어야 합니다.

세상도 바뀌고 나도 성장하고 성숙해서 그렇습니다.

때로는 시간을 정해 놓고 다니엘처럼 기도 한다거나, 요나 같은 기도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아뢰야 합니다.

응답 보다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기도만큼은 과거로 되돌아가지 맙시다.

현재에서 미래로 나가야하기 때문입니다.아버지여, 요17:1~10 2024,2,11

 

누가 그랬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나요?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도에 대한 이해를 다르게,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기도는 짧거나 긴 기도이기 보다는 바른 기도여야하기 때문입니다.

 

1) 기도에 대한 이해

성경은 자녀들에게 쓰신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의 편지라면, 그래서 잘 듣기위해서 잘 읽어야 한다면, 기도는 그 자녀가

사랑하는 하나님아버지께 쓰는 종합편지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도하면 간구만 생각하는데 기도만이 아니라,,시도 있고, 대화도 있고, 그 누구에 대한 칭찬이나 반대적인

 고자질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옛컨대 날씨에 대한 느낌이나 뉴스를 읽은 소감도 있고, 어제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계획발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기도를 보십시오.

붙잡시기 전의 기도로써, 신학적으로는 대제사장적인 기도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물론 정차 그 제자들을 통해 주를 믿게 될 모든 성도들을 위한 포괄적인 기도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요17:20~21)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

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

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 모습을 다른 말로는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한, 나만의 기도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공동의 선과 유익을 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기도는 발전해야 하고, 훈련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그런 기도가 주종을 이루고, 또 이방사람들이 중언부언하

는 것 같은 속없는 기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늘의 하나님께 향합니다.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 하늘의 하나님은 주예수의 아버지시고,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한량없는 은혜의 아빠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시18:25~27)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을 낮추리이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주님의 이름으로도 빌어야합니다.

주님도 그러셨으니 우리는 그래야 합니다.

요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요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천주교에는 기도모범이 있고 기도집이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왜곡을 옳게 인도한다지만 그들은 성모마리아나 다른 성인에게 기도하며 비는 일도 있기에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믿음이고 기도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면서 기도의 모범과 실천을 보이셨습니다.

그 첫째가 무엇인가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요” 바른 기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하신 하나님영광을 구하셨기에 모든 기도의 목

적이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2) 기도의 관계

성도는 하나님아버지와의 관계에 따라 기도의 질이 달라진다면 믿겠나요?

요11:41~42)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

이다 항상 내 마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은 하나님아버지와 막힘이 없으셨습니다.

이렇듯 좋은 관계는 기도도 막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관계에 거리가 생기면 큰소리로 외쳐도 불통되고, 관심이 없으면 쳐다보지도 않게 됩니다.

내 죄는 관계를 멀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좋고도 평화로운 관계는 무엇일까요?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이고 삶입니다.

곧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써 주님 닮은 모습인 줄 믿습니다.

이 관계가 주님이 습관적으로 기도하신 이유가 되며, 믿음의 선진들의 기도도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살면서 부부나, 부모자식간이나, 형제나, 친구 간에도 관계개선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잘못의 지적이 아니라 스스로 잘못인정이고, 자백이며, 고침일 때 관계개선이 일어나듯이..하나님과의 관계개

선이 꼭 필요합니다.

이 관계개선에서 잃지 말아야 할 덕성은 진실성 아닌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실 기도는 회개기도가 됩니다.

잠29:19)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많은 사람이 모였어도 잘난 얼굴은 곧 눈에 띕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가면 잘난 얼굴 보다 좋은 기운의 얼굴이 오랫동안 남게 됩니다.

그 사람의 속이,, 내면이 빛나서 그렇습니다.

미국 1센트 주화에는 아브라함 링컨의 초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얼굴이 잘난 얼굴이 아니라 못난 얼굴이었기에 놀림도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이 다르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수염이나 성형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신념과 삶이 그의 얼굴을 바꾼 것

이었습니다.

비슷하게는 남아프리카국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흑인인권을 위한 투쟁으로 27년의 부당한 감옥살이였지만 용서와 평안을 이루었기에 만인이 다가갈 수 있는 얼굴로써

지금도 기억이 됩니다.

 

성도의 얼굴은 어떨까요? 기도하는 성도,,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성도의 얼굴빛은 어떨까요?

어떤 수술 칼로도, 어떤 화장품으로 만들지 못한,, 주의 광채가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요18:5~6)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있더라 예

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언제나 하나님을 뵙는 사람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고, 그 사람은 거룩하고 담대한 사람이기에 세상에는 두려움이 없

게 됩니다.

이 모습이 성도의 빛이고, 검이며 갑옷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뵐까요? 기도 외에는 없는 줄 믿습니다.

 

성도의 기도 보자기에는 세상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아버지 앞에서 빌고 아뢰어서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야 합니다.

아멘과 동시에 다시 다 담아서 갖고 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래 전 한 권사님은 큰 배낭을 메고 가방은 늘 들고 다녔습니다.

내용을 물으니 기도 보따리랍니다.

아주 오랫동안,, 오래된 기도메모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진작에 없어야 할,, 감사와 찬양으로 대체될 것들인데,, 낡고 묵은 것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메모는 자주 버리고 찢어야 합니다.

세상도 바뀌고 나도 성장하고 성숙해서 그렇습니다.

때로는 시간을 정해 놓고 다니엘처럼 기도 한다거나, 요나 같은 기도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아뢰야 합니다.

응답 보다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기도만큼은 과거로 되돌아가지 맙시다.

현재에서 미래로 나가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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