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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철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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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02-25 09:30 조회 172회 댓글 0건

본문

누가복음 10장에서는 주님께서 비유하신 강도만난 자를 도와 준 사마리아인이 나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사람을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칭합니다.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보편적인 생각 4가지

이 비유에서 등장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4가지 생각이 등장합니다.

 

“네 것도 나에게 내놓으라.” 는 강도가 있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불법과 범죄와 살인도 할 수 있는 나쁜 사람입니다.

모든 독재자들이 여기에 해당되고 하나님 없는 마귀의 생각과 가치관이 그렇습니다.

 

“내 것은 너에게 줄 수 없다.” 는 레위인과 제사장이 있습니다.

선한 삶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실제로 행동하지 못하는 소시민,,어쩌면 정의감이 없는 대다수의 종교인들의 모습입니

다.

 

“내 것도 너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내가 받은 것을 주가 쓰시겠다고 할 때 기꺼이 내어드림과, 복음에 한당한

일에 사용되길 바라는 아주 소수의 주님 닮은 사람입니다.

 

“받은 것만큼은 확실히 합니다.” 는 강도만난 자를 받아 준 여관집 주인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신뢰하여 강도만난 자를 맡겼고, 치료비용이 더 들면 나중에 다시 왔을 때에 부족한 비용을 채

워주겠다고 했으니 비즈니스에 좋은 사람입니다.

여관집 주인 역시 그런 선한 사마리아인을 신뢰하였습니다.

 

세상이 망가지고 불신의 세상이 된 경우라면 어떤 사람이 많은 탓일까요?

반대로 사람간의 신뢰가 있고 정의가 살아있다면 어떤 사람이 많은 덕일까요?

실제 모든 가정에서부터 모든 인문학의 가치가 무엇을 교육하나요?

그럼에도 세상이 후퇴하고 사람은 동물처럼 되어가는 이 현상은 어떤 경우인가요?

 

본문이 그 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잠20:5)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내느니라

 

현대인들의 모략은 깊지 않고 얇은 물 같아서 유감입니다.

그 이유는 생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귀찮거나 생각할 줄 몰라서 되어진 현상입니다.

대신 너무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나머지..결과나 답만 구할 뿐,,과정에서의 옳고 그름과 왜?,,

그래서,,의 질문과 가치추구가 없어진 것입니다.

한 사람의 기술자가 다수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각자도생이 없어진 탓입니다.

다 같이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방법으로 같이 먹이사냥을 하니,,생존 경쟁은 치열해서 다른 여유도 없고 인정사정도 없

이 되었습니다.

서울S치과 옆에 연세치과가, 길 건너편 정형외과 건너편에는 튼튼정형외과가 생겼습니다.

요즘의 의료대란도 같은 이치요, 현상 아닌가요?

숟가락이 느는 만큼 내 밥그릇의 밥이 줄 위기가 온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불과 백년만 거슬려 올라가도 가치추구가 분명했습니다.

먹 가는 벼루와 문에도 가치를 담은 문양이 있었고, 집 모양과 방향은 물론 기둥에도 글을 써서 붙였습니다,

추사김정희의 고택에는 기둥마다 글이 써져 있습니다.

한 기둥에는 최고의 반찬은 두부와 오이와 생강과 나물이다. (대팽두부과강채)

옆 기둥에는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자녀와 손자의 모임이다. (고회부처아녀손)

두 글을 합치면 ‘가족과 함께 나누는 밥상이 최고이다’ 는 뜻입니다.

잠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2) 사색과 검색

그런데 현대는 사색이 없고 검색만 있어 인터넷이 박사가 되었습니다.

최소한의 사색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 가는 중이고, 어디 쯤 왔다는 정도는 압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아이디와 비번은 알아도 이 시대와 이웃을 모르고 하늘을 못보고 삽니다.

그래서 병도 옛날과 달리 스트레스에 의한 병이 많고,, 성인병은 아이들까지 미쳤습니다.

이런 세상을 ‘슬픈 세상’이라고 하고 ‘미쳐 돌아가는 시대’ 라고 합니다.

 

동네의 한 상인이 최근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 추울 때 부인이 모자를 쓰라 했어도 과신했다가 크게 맞은 것이랍니다.

수술은 잘됐는데 우울증이 와서 도무지 일어설 힘을 내지 않는다고 부인이 걱정을 했습니다.

부인이 의사와 상담해 보니 열심히 앞만 보며 일만하던 사람인 경우 허무와 허탈 때문에 그런답니다.

지금껏 몸만 썼지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이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몸은 기계인 만큼 세월이 지나면 작동이 불량해지기에 실제는 몸 보다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마음의 모략이 깊은 물 같이 됐을 것이고,

내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그 물을 길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모략이 많으면 명철의 사람인 것으로 박식이나 다식의 사람하고는 다른 유형입니다.

사는 이유를 알고, 일하는 때와 쉬는 때를 알며, 부자 되기보다는 선행을 열심히 이룹니다.

잠28:5~6)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도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모략의 사람은 최소한의 명철의 사람이기에 마음으로부터 생각하고 움직입니다.

이를 ‘사랑의 사람’, ‘따뜻한 사람’ 이라 하니.. 정치인들과 얼마나 다른지요?

어떤 학자는 재판 후 징역형을 받았는데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면서 창당을 한다니,,법학박사요, 명문대학원교수출신이

라도 명철하고는 아주 먼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사람은 지식으로 겉포장을 할 것이 아니라 거듭남으로서 지혜의,, 명철의 신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

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깊은 물을 길어내어 나도, 남도, 세상도 생수를 흐르게 합니다.

 

3) 깊은 물

최근 한국기독교의 깊은 우물 같던 목사님들이 별세하셨습니다.

한 분은 학자였기에 설교학을 강의한 총장출신이었고 다른 한 분은 목회자였기에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유명하신 것 보다 이 분들은 일찍이 주님을 만난 후 거듭났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셨던 분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

닙니다.

물론 사람이었기에 불완전했고, 노환으로 또는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지만 분명한 것은 작은 몸 안에 있던 하나

님의 깊은 물을 길어내어 뭇사람들에게 제공했던 주의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학자나, 정치가나, 사업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전히 누구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부인이며, 자식입니다.

열심히 사는 일은 좋습니다.

그러나 경건히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건에 “내 것은 너에게 줄 수 없다”는 제사장이나 서기관이 아닌 “내 것도 너와 함께 나눈다.” 는 사마리아

인 같은 실천적 믿음이 있어야 옳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도 세상의 원리와 결과를 따르지 않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성공한다.”?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한다.”?

“건강을 관리하면 장수한다.”? “실력만 있으면 반드시 성공한다.”? 아닙니다, 속지 마십시오.

 

성경은 외칩니다.

“빠른 경주자가 반드시 먼저 들어오진 않는다.”

“용맹한 전사도 전쟁에서 패한다.”

“명철하다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세상에 있어 사람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할까요? 하나님과 하나님말씀이어야 합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결론) 어제는 아내와 의논해서 뇌출혈로 입원한 동네 상인에게 봉투를 건네기로 했습니다.

참된 성도는 내 이웃의 이웃이 되어야 하며 섬기며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계산법을 따라 사는 성도는 세상 계산법으로 상상 못할 크고도 놀라운 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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