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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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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4-03-03 09:33 조회 12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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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는 경험적 믿음과 계시적 믿음이 있습니다.

지금 봄이 오고 있기에 이 후에는 여름이 오는 것을 믿는 것은 경험적입니다.

이런 일이 참 많습니다.

계시적 믿음은 성경적 믿음이기도 한데 우리가 모르는 바를 알려주어서 믿게 된 일입니다.

누가 알려주셨나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경으로 말씀하셨습니다.

 

1) 믿음은 선물,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그 기록된 말씀이,,그 말씀한 바가 믿어짐은 신비한 일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믿게 하신 일들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경험적 믿음은 경험이 먼저 있은 후 나중에 믿음이 왔지만,

계시적 믿음은 먼저 믿음이 있고 나중에 경험이 오기에 비슷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경험적 믿음은 내가 주관이라서 내 경험의 여부에 따라 하나님존재나 창조사실이나 구원의 진실이 있거나 없어집니다.

그러나 계시적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관이시기에 사람마다 믿음의 시기와 믿음의 상황은 달라도 결과는 같은 진리와 구

원에 이르며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됩니다.

 

오늘의 성경은 로마서입니다.

로마의 성도들에게 사도바울이 쓴 편지인데 이 편지의 성도들은 어땠을까요?

롬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의 온 세상에 전

파됨이로다

한마디로 로마의 성도들은 소문이 났을 정도의 좋은 믿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바울은 그들에게 견고한 신앙을 더 주고자 했을까요?

롬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

니

아쉽게도 경험적 믿음이 좋았을 뿐,,계시적 믿음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 자신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 경험적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지킨다면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부정했고 되레 핍박했던 장본인이었기에 믿음의

감별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경험적 믿음은, 열심이 있다지만 그 근거는 자신인 만큼, 열심과 전통과 율법을 중히 지키는 종교적이기에 진리가 없고

 따라서 진정성이 없는 신앙이요, 삶이됩니다.

 

같은 동족인 북한사람과 남한 사람을 구별을 할 수 있을까요?

드러난 겉모습만 보아도 영양의 차이와 표정의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 보다 저들은 선전대로 지상낙원에서 산다지만 표정부터 경직되었고 웃음이 없습니다.

인권과 자유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반대입니다.


2) 변화와 그 능력

이 변화를, 이 자유를, 이 기쁨을 먼저 받아 누린 사도바울이기에 잠잠할 수 없고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지금의

 자신되게 한 진리,,계시의 핵심인 복음을 전파하려 한 것입니다.

롬1:14~15)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내게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여러분은 지금껏 어떤 좋은 것을 발견했나요?

대체로 맛집만 다녀왔어도 자랑하며 또 치료 잘하는 의사를 경험했어도 소개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자랑 못하고 소개 못한 일에 대하여 빚진 자의 심정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상대가 밥을 못 먹어 죽거나,,치료 못 받아서 죽는다면..그가 내 지인이고 가족이라면 사태의 심각성은 다른 만큼

어찌하던지 살리고자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것인데 이럼을 ‘소명’ 이라고 합니다.

그가 자기 죄에서 죽었다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빚진 자가 되었고 동족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이 이 빚이 얼마나 컸던지 그가 배고픔과 매 맞음을 당하면서 전도를 다녔던 이유입니다.

 

아다시피 사도바울의 인생 터닝포인트는 예수님이었습니다.

당시의 지배적이던 유대교에서 권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가다가 정

말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의 경험적 믿음이 계시적 믿음으로 변화되어 많은 제사가 누구를 계시하는지,,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

이 누구를 계시하는 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어 핍박자가 전도자가 된 것이며, 유대인이 아닌 세계민에게 예수님을 증

거 하는 특별 소명자가 된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복음이며 복음의 중심이 되십니다.

그 이유는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

 

부자되는 것도, 무병장수하는 것도,,다 좋다지만 진짜는 하나님과 화목하여 화평을 누리며 사는 일입니다.

큰 집에서 다투며 사는 일 보다 움막에서 화목하게 사는 것이 으뜸이라면,,그 최고는 하나님과의 화목이고 그 상태는

평화이며 안식입니다.

이 화목과 화평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문하신 일이고 창조의 목적이 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없다고 하고, 혹은 무시하였으니 스스로 망하여 화목을 잃었으니

평화와 안식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롬1:22~23)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

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3) 하나님과 불화목

문제는 이 결과가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방임, 그 결과는 하나님과의 불화이고,,그 결과가 지옥인 것이고 범죄입니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그러나 복음은 이 지식을 전달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며, 돌아오게 하고, 믿게 하고, 경외하며 즐거워하며 사랑하게 합

니다.

롬2:1)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인류와 함께 발전하고 생존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이러스요, 둘째는 바퀴벌레입니다.

바이러스는 몸 안에서 기생하고 바퀴는 몸 밖에서 기생합니다.

이 둘을 이기는 방법은 몸의 면역을 키우고, 사는 환경을 청결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둘 보다 더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 바퀴벌레가 있는데 죄입니다.

이 죄가 생각과 마음과 생활을 마귀화합니다.

롬1:32)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를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그들이” 누구인가요? 보편적인 모두이고 나도 포함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등진 것이 문제라서,, 사람들의 과학과 철학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동성애를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창조의 문제가 있는 냥,,시대의 기류가 그런 냥 죄를 미화시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와 바퀴벌레가 창궐하면 일제 면역과 소독을 하는 것이 상식이듯이,,죄가 창궐하면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하는데 되레 우리 정서는 우상으로 더 치우치고 있으니 하나님 진노하심에 휘발유를 끼얹는 격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절대로 필요한 만큼 세상이 만들지 못하고 사람이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며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결론) 믿음의 아비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서 하나님약속을 믿고 갈 바를 모르고 나아갔고, 백세가 되어서도 아들 얻기를 마다하지 않았

고, 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드린 것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로부터 자신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으리라 하신 약속을 믿어서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행동했기에 결국은 믿음의 약속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아브라함은 후대의 성도에게 대한 믿음의 모델입니다.

갈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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