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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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옆 중학교에서 최근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각반마다 천막을 치고 그 앞에 현수막을 달았는데 유독 얼룩무늬 현수막에 해병대마크와 “해병대처럼” 의 글이 씌여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남녀학생들이 얼룩무늬 바지와 빨간 티셔츠도 입었기에 물어보았더니 해병대가 멋있어서 따라 한 것이랍니
다.
기분이 묘하면서,,세상은 교회를 언제나 따라할까? 교회는 예수님을 얼마나 따라하고 있나? 며 궁금했었습니다.
수년전 지방의 한 교회는 “해병대를 본받자” 했고, 또 다른 교회에서는 “믿음이 없으면 의리라도 있자” 고 했었던 일도
상기되었기 때문입니다.
1) 부흥
성도들은 부흥을 사모하지만 그 부흥은 아직 없습니다.
이유를 아시나요? 부흥의 정의부터 분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흥은 조직적으로 회복되거나 출석성도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자체가 새롭게 되는 일입니다. 새 생명을 얻어
변화되는 일로,, 주님 닮는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부흥에는 3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사모함과 집중이 있어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함이 있었고,, 따라서 죄에 대한 통회자복과 회개가 있었습
니다.
그리고 이 신령적 주최는 땅의 사람이나 단체가 아니라 하늘의 성령이셨기에,, 어느 날 홀연히 임하고 옮겨졌기에 예측
하거나 교육이나 훈련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역사의 부흥이 이런 특성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미국 켄터키주의 애즈버리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한 학생들이 오래도록 성령강림을 갈망했었고, 찬송과 기도라는 성경적 방식으로 이어졌으며, 인터넷을 통해 실시
간 중계됐다는 점에서 부흥소식이 가장 빠르게 세계에 알려진 경우입니다.
이런 부흥이 우리에게 올해도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마침 6월 3일이 빌리 그래험목사 여의도성회 50년 주년 기념성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을 여기다 두면 좋겠습니다.
정치와 교회와 가족의 분열이 화합이 되고 일치가 되는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1973년 여의도성회에서 청년 서너 명이 구경차 집회에 참석했고 강단옆 끝에서 술판을 벌리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확성기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음성이 들렸는데 한 청년이 얼떨결에 일어났
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몇 년 후 신학교를 입학했고 결국 목사가 되었는데 목포양동제일교회목사입니다.
지금 이런 간증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 한 분입니다.
그때의 주님을 영접한 이들이 72000명이었습니다.
이 부흥의 덕에 교회는 물론 대한민국도 살게 된 줄 믿습니다.
이런 부흥은 앉은뱅이가 일어난 일이고 눈 먼 소경이 눈을 뜬 일과 같습니다.
구걸하던 이들이 근본의 문제가 해결되니 더 이상 구걸할 이유가 없어져서 비참하게 살지 않게 된 이유입니다.
이 소식이 복음이고 그 중심이 주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
이라
2) 결핍
가난함은 결핍입니다.
지금은 결핍을 모르는 시대입니다.
아이들이 성한 것을 아무렇게나 방치해도 찾지를 않고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핍을 느껴서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패션이나 기분전환으로 구입하곤 합니다.
결국 살만한 형편이니 삶에 간절함이 없고 하나님을 찾는 일도 없습니다.
자가용이 있어도 기도원을 안 찾고, 교회도 모이지 않고 있는 상황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70년대에 공립학교에서 성경과목을 폐지하자 히피와 폭력이 증가했던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이 우울로
인한 자살율이 1위, 출산저조도 1위, 마약 도박 이혼 동성애 등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동네의원에서 다른 과는 다 감소되는데 정신의학과만이 77% 증가한 것은 우연일까요?
결핍은 사람을 성숙시킵니다.
하나님 사모함은 하나님결핍의 영적 현상으로 부흥의 마중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를 물가로 인도할 수는 있어도 물마시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교회당을 크게 짓고 오케스트라가 있고 주옥
같은 설교가 넘쳐도 하나님사모가 없는 것은 시대의 불행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사모하나요? 그것이 곧 결핍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돈,, 재미, 건강, 행복인데 전혀 영적이지 못합니다.
성도의 결핍치고는 세상과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도들을 보십시오.
시123:1~2)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
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신약의 성도들을 보십시오.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기독교역대 부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 미국의 죠나단 에드워드 등,
역사는 이대를 제1차 대각성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부흥을 대각성이라고 한 이유를 알만한가요? 빛으로 나가니 어둠이 폭로된 탓입니다.
하나님께 향하니 내 죄가 견딜 수 없어 회개가 일어난 것입니다.
제2차 각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두수선공인 디엘 무디 전도자를 통해 19세기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의 경건한 청년들이 헌신해서 운둔의 나라 조선에 경건한 선교사들이 들어온 것입니다.
특별히 그때의 찬송은 주님, 보혈, 구원, 재림이었으니,,많은 찬송가 작사 작곡되었으니 현대와는 딴판입니다.
20세기에는 빌리 그레험,, 오랄 로버츠 등, 반기독교적인 공산주의와 싸우기도 했었습니다.
3) 우리의 부흥
우리 나라의 부흥은 1903년 원산 대부흥이 있었고, 1907년에는 평양 대부흥이 있었습니다.
1909년에는 백만구령 운동, 1919년 3,1운동으로 이어지는 영적대각성이 됐습니다.
그리고 1973년도의 여의도 빌리 그래험 전도대회는 역사의 페이지를 남겼습니다.
부흥은 과거의 역사나 추억만 되어서는 곤란하고 미래의 희망만 되어서도 안 됩니다.
지금, 오늘의 나의 사건이고 우리의 현장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소원이 있느냐 입니다.
이 갈망이 짙어 애통으로 나가야 복이 있고 정녕 천국을 소유합니다.
마5:3~4) 심령이 가나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의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월남 이상재선생님은 경성감옥에서 성공회가 넣어 준 성경의 산상수훈을 일고 큰 감동을 받았고 마침내 요한복음만 30
번 이상 읽고 기독교의 참 진리를 알고 구주를 영접했습니다.
개인적인 부흥이었던 것입니다.
최근 “복음의 빛 한국을 살리다”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47명의 근대기독교인들의 삶과 신앙이 실렸는데 그들도 부흥의 영향을 받았고 또 부흥의 영향을 끼쳤습니다.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 점원이 몽골의 슈바이처가 된 이태준,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인 최용신, 유관순, 서재필, 안
창호, 홍난파, 윤동주 등, 이들의 공통된 점이 무엇인가요?
억압과 가난의 시대에서 예수 믿은 후 그 귀한 재산과 기술과 학문과 예술성을 자신들만이 아닌 조국과 동포를 위해 내
놓고 헌신했으니,, 그야말로 벌어서 남에게 준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누구를 닮았나요? 주님을 본받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부흥의 최종된 모습은 언제나 주를 닮게 됩니다.
결론) 부흥이 없는 시대는 언제나 말이 많고 꾸밈이 많습니다.
낡은 옷을 벗듯이 종교와 위선과 정욕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낮은 자리에서 재를 바르고 울어야 합니다.
울 수만 있으면 부흥은 오는 줄 믿습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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