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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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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06-04 09:30 조회 2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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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는 6월하면 잊지 못할 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다는 역사를 대하게 됩니다.

1951년 여성 최초로 풀리처상을 수상한 종군여기자 마거리트 히긴스의 “한국에게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을 읽어 보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당시,

“지금도 대한민국은 전체주의와 핵에 맞서서 자유세계시민을 일깨우는 자명종 역할을 하고 있다” 고 했는데 이 말은 지

금도 유효하고 있으니 유감입니다.

 

1) 다윗과 골리앗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세계민이 다 아는 맞대결입니다.

그래서 흔히 맞수가 되지 못했을 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근대의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국과의 7일 전쟁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덩치만이 아닌 사상이나 종교 간의 전쟁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맞대결에서의 승리가 다윗 같은 약체에게 따랐을 경우 노래가 됩니다.

 

사람들은 전쟁이 없기를 바라지만 전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죽고, 다치고, 이별하고, 파괴되는 그 피폐함과 후유증은 비록 커도 그 이면에는 또 다른 긍정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독이 나쁘지만 꿀을 섞으면 어떨까요? 의사가 사용하면 어떨까요?

전쟁은 크던 작던 분명 마귀의 독이지만 하나님은 치료사이시기에 인류의 발전과 평화를 유지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

다.

 

지금도 전쟁이 있고 또 그럴 조짐도 있기에 우리는 정치가 아닌 하나님께 달려가 매달리고 피하여야 합니다.

다윗의 승리비결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삼상17:47)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아이러니하게 이 전쟁으로 다윗은 왕이 되었고 강국으로 통일이스라엘을 이룩했던 것입니다.

6.25때 우리 군이 쉽게 밀렸던 이유는 우리의 주둔 미군은 점령군으로써 훈련하지 않았고, 급하게 일본에서 공수되어

온 미군역시도 훈련되지 않은 약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군이든 국군이든 다릅니다.

다만 정권과 대통령에 따라 군 훈련이 약해지고,, 강해지는 일은 유감이지만 휼륭한 군 지휘관들이 많아서 든든한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나 전술 보다는 정신무장입니다.

이 정신무장에서 국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교회는 국가지도자들과 국군장병들을 위해서 지지하고 격려하며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다윗은 용맹하였으나 이스라엘군대는 이미 겁을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상17: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불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결국 겁 없던 다윗으로 승리가 주어진 것입니다.

 

2) 내부의 적

흔히 집토끼를 잡느냐 산토기를 잡느냐 하며 논쟁하곤 합니다.

둘 다 잡아야 합니다.

항시 집토끼를 놔두고 산토끼를 잡다가 둘 다 놓치는 등의 역사실례를 봅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왜군에게 겁먹고 도망친 군사를 처형한 모습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때 가차 없었던 것은 썩은 것이 옮기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내에 잠입한 간첩 보다 간첩질 하던 내부 적이 많음이 다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싸우겠다던 다윗에게 내부의 적은 누굴까요?

큰형이었습니다.

막내를 생각한 면도 있겠지만 다윗을 과소평가한 면이 컸던 것입니다.

삼상17: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

하러 왔도다

 

형의 노파심이라지만 다윗을 몰랐던 모습입니다.

다윗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온 것이고, 양은 다른 이에게 맡겼고 지금은 전쟁을 참전하고 싶은 애국심으로 머물고 있는

 것이지 구경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부의 적을 알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겉은 같은데 속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내부의 적은 밖의 적이 유익되게 처신합니다.

그래서 꺼진 불도 다시 보듯이 함께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살펴야 합니다.

교회에 이단 삼단이 이렇게 다 들어온 것도 변질이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복음에 합당한 일을 할려고 해도 온갖 당위와 구실을 대며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가짜들과 내부의 적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표리부동하고 선전선동이 태초부터 능한 자이기에,, 오직 열매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땠나요? 준비된 용사였고 참 신자였습니다.

삼상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불레셋 사람이리이

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보십시오.

자신을 “주의 종”이라 했고 겁먹은 이스라엘군대를 “하나님의 군대”라고 높이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불레셋의 무기나 숫자를 본 것이 아니라 “할례 없는” 사람으로 보았으니,,하나님언약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 것

입니다.

믿음의 안목이란 이런 것입니다.

출신학교, 경력, 자동차,입은 옷 상표 등을 보고 판단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만큼 하나님안목을 인지하고 산 안목이기에 속과 영적인 내용을 판단합니

다.

 

동서고금의 부자들과 여러 지도자들은 사람과 시대를 보는 안목부터 달랐습니다.

즉 사고가 탁월했던 것인데 신앙도 그렇습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3) 주의 마음과 안목

세상은 늘 문명의 충돌 현장입니다.

이것을 사망과 생명의 충돌로 여겨도 좋고,

빛의 나라와 어둠의 나라의 충돌로 여겨도 맞습니다.

결국 다윗과 골리앗의 충돌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결정적일 때 빛 가운데로 나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갑옷과 검이 아니라 손에 맞는,,훈련된 조약돌이 있어야 합니다.

삼상17: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

를 가지고 불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내가 큰 문제 앞에 있다면 어떨까요? 무엇을 할까요?

그 모습이 곧 나의 참 신앙입니다.

놀라서 기절하거나 도망갈 수 있고, 세상 방법으로 되돌아 갈수 있고, 주를 믿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할 바를 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삼상17: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결론) 믿음도 연단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처음부터 이런 용감과 믿음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목동으로써 양을 지키다가 맹수들과 싸우면서 숙련된 것이고,,믿음도 위기의 상황을 지나면서 고백된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들어서가 아닌 실천된 일의 고백이어서 산 간증이 되고 찬송이 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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