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적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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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열납되는 신앙과 그렇지 못한 신앙이 있습니다.
카인과 카인이 드린 제물은 열납되지 못했으나 아벨과 그의 제물은 열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은 실제 우리의 모든 삶에서 적용할 것입니다.
공부한다고 책상에는 앉았지만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1) 외식신앙
유대교가,, 그 지도자들이 대표적이었는데 겉치레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었고 사랑함은 더욱 없었기에 사람들만 의식한 신앙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금식도 내용이나 실천 보다는 보이기 위해 애써 힘든 연기를 해야 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주님도 금식할 때는 나쁜 안색을 가리기위해 기름을 바르라 하셨을까요?
마6:17~18)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라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런 신앙에는 역사와 전통과 모델이 있었으니 앞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무지했습니다.
이 탓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도바울은 이들의 외식하는 신앙을 지적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가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롬9:31~32)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
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이게 종교인 것입니다.
종교는 날과 절기를 그리고 위용을 앞세웁니다.
그래서 온갖 절기를 지키기에 힘들고 금식에 고생합니다.
사58:3~4)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
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가요? 무지하니 전통에 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숭배도 이와 비슷합니다만 금칠한 형상을 섬깁니다.
이럼 모습,,기독교 안에도 은근히 있습니다.
비싼 느낌, 화려하게 차별화된 분위기 등, 그래서 성찬기는 금칠을 하고 여기저기에 온갖 문양이 들어가고, 열심이란
미명으로 자유와 안식이 없는 등의,,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주님을 머리로 붙들고 실제적인데 힘씁니다.
사58:6~7)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하며 모
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
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2) 실제적 신앙
주를 믿는 신앙은 예배당을 꾸미고 그 안에서만 “주여주여” 하고 자기네들끼리만 북 치고 장구 치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피켓 들고 거리에 나가 정권투쟁을 외치는 신앙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배하러 가다가 형제와 다투고 화해하지 않았으면 예배 보다 화해를 먼저 하는 신앙이고,
이웃에 대한 인애와 하나님께 향한 십일조를 함께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책임 있는 신앙이고,, 성덕을 세우는 신앙이고 천박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요?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고전13:10~13)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
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
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동일한 성령께서는 권능을 이루기도 하시지만 또 성숙하게도 하십니다.
주를 믿는 성도가 미숙하고 열매 없는 일은 신앙 년수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이라는 비료를 받지 못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보내 주신 성령을 갈망하고 충만해야 실제적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머문 곳은 화석이 되고 무덤신앙이 됩니다.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 있나요?
보약도 약효가 없으면 쓰레기가 되고 소금도 맛 잃으면 길에 버리워 밟힐 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 탓이 아닌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3) 땅에서 풀면,
여러분은 금식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을 설득하시겠나요?
아님 실제적으로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게 힘이 되시겠나요?
아니면 이 두 가지를 병행하시겠나요?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삶과 신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비결을 의미하는데 주님도 이 비결을 말씀하셨습니다.
마18:18~20) 진실로 너희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
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
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
라
응답은 기도할 때 확실히 옵니다.
그러나 더할 바가 있습니다.
합심기도를 은쟁반에 얹는 일인데 현대성도의 부족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58:8~9)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
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으리라
이런 경우 비단치마에 수를 놓는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나요?
성공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존귀도 있고, 부유함도 있고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가질려고 하다가 사달이 나곤 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성공은 아름다운 이름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려낸 후 궁창에 별처럼 빛난다면 하늘과 땅에서의 성공인 줄 믿습니다.
지난주에 연길을 다녀왔습니다,
가고 오는 비행기가 만석이고 또 많은 개발과 주차난을 보면서 살의 질이 무엇인가 생각했었습니다.
물가는 한국인데 임금은 중국이기에 힘들고 목회자들은 공산당의 제약으로 이중삼중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돈 따라 가는 세상 사람들이 있고 주와 동행하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결정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요?
유행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결론) 실제적인 삶에서 믿음과 순종을 이루어 작아도 빛의 열매를 맺읍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의로움과 진실함과 거룩함에 있다고 했으니,,모양이 아닌 질로 증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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