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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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만큼 파란만장한 인물이 또 있을까요?
목동출신으로 숱한 전투의 승리자였고, 3번이나 왕으로 옹립되었으며 많은 시편을 지은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셨습니다.
행13:22)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그럼에도 그는 연약한 사람이었기에 범죄했으며,, 장남을 앞서 가슴에 묻었고, 노년에는 남들처럼 생기를 잃고 노
쇄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
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하며 인생은 덧없음과 하나
님의 신실하심 은혜를 더 갈망했습니다.
희망과 소망을 차이를 아시나요?
국어사전에는 바람, 기대 등으로 뜻풀이를 하고 영어는 동일한 The hope 입니다.
그러나 엄밀히는 다르기에 성경에는 희망 보다는 소망이 많습니다.
반면 세상은 희망을 더 많이 말합니다.
성구사전에서 희망이란 단어를 찾았더니 2개가 나왔습니다.(사21:4, 행2:26)
반면 소망은 너무 많아 세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희망은 대체로 어려움 속에서 긍정의 내일을 바라봄입니다.
옛컨대 불경기에 가게가 잘 되길 바라고, 허약한 몸이 튼튼하길 바라고, 올해는 결혼을 바라고, 좀 더 살기를 바라
는 등의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경우입니다.
그 주체가 나입니다.
따라서 목표와 방법을 세우거나 수정하는 동기가 작동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노래하거나 꿈꾸며 오늘도 삽니다.
반면 소망은 특정한 목표와 꿈을 갖습니다.
사회적이거나 단체적으로는 적고, 개인적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민족의 희망사항이지 개인의 소망사항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더 알기 원하는 일은 나의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되어 찬송가사도 됩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는 ~” 또 “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하며 기도하
므로 염원처럼 정서적으로도 통합니다.
그렇다면 성도에게는 희망 보다 소망이 바람직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희망이 처음에는 무지개이었지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잿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품으면 품어서, 없으면 없어서,, 크면 클수록 더 크게 낙망하는 이유가 됩니다.
한마디로 희망의 주소는 변하는 세상이고 주인은 나인 탓입니다.
그런데 소망은 다릅니다.
아직 내 삶과 세상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보시기에 이미 이루어진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바라는 일이 소망이 됩니다.
처녀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되었을 때 천사가 전하여준 말이 무엇인가요?
“ 네 친족 엘리사벳이 늙었어도 잉태하였다” 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위 말을 믿고 소망을 가진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시편42편5절을 묵상해 보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무수한 전투를 치른 용사입니다.
전투의 특징은 한번 실패에 죽거나 포로되면 평생 노예살이가 됩니다.
그에게 무슨 생각이 지배적이었을까요? 그 생각의 기초를 어디다 두었을까요?
처음에는 희망을 꿈꾸는,,
그러나 믿음이 성숙해지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소망의 사람이 된 줄 믿습니다.
희망은 가질수록 낙망해도,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면 믿음은 더한 소망을 키운 덕입니다.
삼상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
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전장에서의 이런 경험치가 믿음으로 축적되고 극한의 상항에서도 소망으로 자란 줄 믿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공통이 있습니다.
* 유전자를 닮습니다.
닮는 일이 비단 발가락만이 아니라 성향과 기질도 닮아 마침내 가문이 보입니다.
* 걱정과 염려와 소망과 희망도 훈련이 됩니다.
훈련은 몸이 만들어지며 기술은 기억하는 일이기에 조기훈련이 좋습니다.
그러나 걱정과 염려를 조기 훈련한다면 어떨까요?
또한 습관적으로 한다면 당사자는 물론 주변도 물들어 불행해집니다.
희망과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의 사람이 긍정적이라면 소망의 사람은 감사의 사람으로 주변을 밝게 합니다.
이 둘의 차이를 결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에서 어떨까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합니다,
(철학적인 한 글을 인용합니다.)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고 소멸합니다, 조건이 사라지면 실체 없이 사라지는 것을 무
상이라 합니다. 그래서 나라고 주장할 것이 없다는 것을 무아이며, 이 사실을 모르고 집착하
는 데에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을 고라고 합니다,
어떤가요? 결국은 공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제 복음적인 메시지를 보십시오)
사람은 하나님 닮은 하나님에 의한 관계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함도, 고난도 오
직 하나님 섭리로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계획과 전능하신 팔로 나를 빚으셨고, 이유가
무엇이든 고난과 죽음을 함께 지나시며 흑암과 허무를 통해서도 빛의 세상을 이루심을 믿고
소망 중에 인내합니다.
시103:17~18)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
로다
철학은 내 안에 나를 먹고 자랍니다.
그러므로 고통처럼 희망도 마찬가지라서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주님께로부터 이미 왔습니다.
도우시고 구원하시고 동행하시고,,등,
주 안의 소망은 있다가 없어지는 신기루 같은 허상이 아니라 실제이고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선진들은 참 소망을 믿음으로 대변했습니다.
히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
를 얻었느니라
현대생활은 혼탁한 세상에서의 혼란한 생활의 연속입니다.
기존의 전통이 무너지고 한 순간에서 절망이 오곤 합니다.
50대 남성들에서 치매율이 증가한 현상이 이를 증명합니다.
실버타운 13평자리가 방1개, 거실1개가 보증금 4억5천에 월세220만원이고 수도전기세는 사용하는 만큼의 요금인
데,, 각종 편의와 프로그램이 있고, 매월 50식을 제공한답니다.
늙을수록 너나할 것 없이 이런 곳에서 희망을 찾지만 실제는 그 희망은 불안하기 그지없는 추상입니다.
결론) 그러나 성도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합니다.
실제를 붙들며 실상을 믿고 소망을 둘 수 있습니다.
시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42:5)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
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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