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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부끄럽지 않는 능력 > 설교말씀

소망, 부끄럽지 않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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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7-31 14:32 조회 27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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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힘들어서 동반 자살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희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떤 지도자이든 지도자는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잘 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옛 새마을운동은 국민희망운동이었습니다.

 

1) 희망과 소망

국어나 영어사전은 희망과 소망이 같습니다.

그러나 좀 다릅니다.

희망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개입하면 현실적이기 보다는 도덕적인 것이 되고,, 공상적인 것 보다 인격과 품격이 되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성경에는 희망이라는 말 보다는 소망을 사용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

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희망의 주체는 현실의 나인만큼 내 생각과 마음 따라 희망은 있다가도 없어지곤 합니다.

또 희망은 신기루 같아서 이루면 허탈하고 없으면 좌절하게 됩니다.

현대가 살기가 어렵다는 것은 경제 보다는 희망이 없어서입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주시는 소망은 현실을 초월하게 만듭니다.

믿음의 주체가 성령이신 만큼 강하고 담대하도록 소망을 주십니다.

롬5:1~2)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옛 성도들은 가난은 기본이고 핍박은 옵션이었기에 힘들었지만 담대하고 소망이 있었습니다.

카타콤을 생각해 보십시오.

캠핑이나 피서가 아닌 신앙유지를 위해 동굴을 파고 두더지나 토기처럼 숨어 살아야 했던 생활입니다.

하루나 이틀이 아닌 삶의 전체를 그토록 살았으니,,그 생활을 알만하고 또 그 신앙의 대단함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놀라운 감격과 환희는 로또나 새 아파트나 신형 냉장고나 명품가방이 아니었습니다.

위대하시고 초월적인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은혜였습니다.

영적인 것이고 관계적인 것이었지 물질적인 것과 소유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좀 더 원어에 가깝게 해석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롬5:1~2)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

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은혜 속으로 믿음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

광에 참여하게 될 소망가운데서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소망은 탁월한 희망이고 능력인 것입니다.

 

2) 탁월한 희망과 능력

소망이 탁월한 희망이 되고 능력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는 힘이 오는 것입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이 역시 원어적으로는 더 확실합니다.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소망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고통스럽지만 죄인된 내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장차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거룩한 결과를 믿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영광에 들어가기에 우리 신앙은 우상숭배자들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없다면 신앙은커녕 한갓 뻘짖에 불과할 뿐입니다,

문제는 주 믿는 성도들도 이런 차별화와 탁월함에 무지한 체 그냥 믿는다하니 결국 부실이 와서 요즘은 탈교회와 외면당하는

현상까지 생긴 것입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집사님이 실수를 하여 손님에게 사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집사님은 힘들었고, 며칠 후 또 비슷한 일이 있었고, 다시 또 안 좋은 일이 있었으니 불안했었습니다.

마침 안 좋은 일이 있던 날에는 그 집사님가게 주변에 까마귀 떼가 날아와 울었기에 아는 목사님께 문의를 했더니,, 목사님은

어둠의 권세라면서 “와서 기도 받으라” 했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그 목사님말씀이 이상하여 내게 다시 문의를 해온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기독교 같아도 기독교가 아닙니다.

까마귀가 어둠의 권세가 아니라 어둠의 권세는 광명의 천사와 의의 일꾼으로 가장합니다.

어둠의 권세에 베드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집사님에게 필요한 이길 힘은 기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쉼을 갖는 일입니다.

잦은 실수는 가정의 불안정과 쉬지 못한 피곤이 컸기 때문입니다.

느낌이 아닌 성경을 잘 보았더라면 날아다니며 우는 까마귀에 휘둘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어둠의 권세라던 목사님도 느낌이 아니라 성경을 붙잡아야 했었습니다.

 

3) 부끄럽지 않는 소망,,

목사가 설교 본문을 정하는데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성경을 보다가 설교를 정하는 이유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런 경우입니다.

성경은(개혁개정)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했는데 “부끄럽다” 가 좀 난해했습니다.

 

찾아보니 원어적으로는 더 감동적이었기에 본문이 되고 설교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롬5:5) 소망은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기 때문

입니다.

 

성도가 사방으로 쌓여도 쌓이지 않고, 거꾸러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고, 핍박을 당하여도 죽임을 당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에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개인의 확신이나 인내력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마음속에 하나님 사랑을 부었기 때문인 입니다.

 

즉 부끄럽지 않음이,, 실망시키지 않음이라면,, 소망은 우리 삶에 슬픔을 이기게 하고, 실패도 이기게 할 것입니다.

주 믿는 성도의 삶에도 별일이 다 있고 믿음으로 살기에 더 합니다,.

그러나 부끄럽지도 않고,,실망도, 시키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이겨내는 힘의 공급으로 삶이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 궁극이 부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의 핵심을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했는데 그냥 시인의 말이 아닙니다.

교리이고 성도를 향한 성령님의 계시이고 약속인 만큼 순서가 중요합니다.

 

성령님이 주신 마음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며 믿음을 고백했더니..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내게 들어왔기에 어떤 지경에서든 소망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소망이 내 삶에 향기와 열매를 맺게 되었고,

다시 이 순환이 내 안팎에서 선순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좋은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은 또 부끄럽게나 실망하거나 슬프거나 실패하거나 하지 않는 DNA를 작동하여 소망

을 이루고, 또 이웃과 원수도 사랑하는 참 경건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신앙의 출발은 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정도 마침도 그럴 것입니다.

빌1:6)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 하노라

천국에서의 삶을 소망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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