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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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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03-20 17:42 조회 2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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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요즘 말 많은 챗GPT 사용 소감을 말해주었는데 “한마디로 소름이 끼친다” 했습니다.

또 박집사님은 당신의 물류현장에는 로봇이 모든 분류작업을 한다 하셨고,

뉴스는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 못할 아바타 소녀그룹의 공연을 전하며 몸값이 120억이라 했고,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기

사들이 봉급외 월례비가 상당한데 이 돈을 주지 않으면 움직이질 않는다는 그래서 건폭을 바로잡아야한다는 소식도 있

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이 된다는 소식도 있었고, 동성애커플의 건보료도 인정되었답니다.

 

1) 세상

이처럼 뉴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 주소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주 고대는 어땠을까요?

자세히는 몰라도 전쟁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시대에는 로마의 압제와 유대교의 핍박이,, 그리고 중세에는 하나님자리에 앉은 교황의 횡포가 커서 마

녀사냥도 있었습니다.

18세기에는 계몽주의 영향으로 진화론과 자유주위가 등장했습니다.

진화론은 창세기를 파괴함으로 기독교를 허물려 했고, 또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인간의 합리성으로 해석하여 성

경을 파괴했습니다.

이 탓에 공산주의가 태생했고, 세계대전도 일어났고,, 현대는 자유주의 신학이 더욱 타락하여 ‘퀴어신학’ 이 나왔습니

다.

이런 성혁명사상은 포스트모던니즘까지 왔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해체주의자들은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려 합니다.

 

이런 상황과 진동들이 몇몇 지도자들의 생각이 마귀에게 붙잡혀서 온 것이라면 믿겠나요?

하와 한사람의 생각이 변질되어 아담을 꾀어 선악과를 따먹는 그 타락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모든 사람이 죄인된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과 복음은 언제나 똑같고 유통기한도 없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붙잡고 외칠 주제는 변한다는 사실입니

다.

마치 개인의 상황 따라 각자가 기도하며 붙드는 말씀이 있듯이,,

며칠 전 들은 간증이 있습니다.

한 여집사님이 설교말씀에 순종하기를 작심했는데 청년들을 위한 선교쎈터건축 모금설교를 듣고 1000만원을 헌금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러나 남편이 불신자라서 돈 만들기가 어려워서 기도만 하던 중 마침 건강검진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어 건강에는 이상

없이 보험금을 받았기에 드렸답니다.

이때 여집사님이 붙들었던 말씀이 무엇일까요? 쉽게 맞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복음은 어떤 진리였을까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이요,

중세에는 오직 믿음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요,

18~19세기에는 복음과 성경이 진리라는 것과,. 동정녀탄생과 몸의 부활이었습니다,

이 어둡고 부패한 시대의 성도는 무엇을 붙잡고 외쳐야할까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왜요? 유독 소금과 빛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2) 소금과 빛

소금과 빛은 물과 산소와 함께 생존에 절대적 요소입니다.

이 절대적 요소 절반은 하늘의 하나님 몫이고 절반은 성도의 몫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노조원이라면 어땠을까? 타워크레인 기사라면 어땠을까?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부류였을까? 아님 일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고 돌아섰을까?

최근 연암 박지원아들의 글을 보면서 메모한 글을 소개합니다.

“선비는 농공과 같은 부류이다, 그러나 왕공과 벗이 되고 덕으로 말하면 왕공이 평소 섬기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른이

선을 베풀면 그 혜택이 사회에 두루 비치고 그 공 역시 다음 세대에도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적용한다면 이 선비가 요즘은 어른일 것이고 신앙적으로는 성도가 되어야 맞습니다.

나이만 먹어서 어른이 아니고 교회당만 다닌다고 해서 성도가 아닌 것은 이미 다 아는 일로써 나름의 책임과 역할이 있

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책임과 역할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소금처럼 방부제이며, 꾸미지 않은 기본의 맛을 내주며, 빛으로서 어둠을 몰아내는,, 또한 구별하는 역할입니다.

아다시피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때에 이러한 ‘빛’을 제일 먼저 만드셨습니다.

나중에 해와 달을 만드셨기에 그 자연 빛도 있었지만 먼저 빛 필요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밝게 보여야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은 아닐진대 창조 빛으로 어둠과 나누셨던 것입니다. 

창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같은 빛이라도 햇빛과 달빛과는 달리 사용하셨으니 이럼이 곧 성도의 역할인줄 믿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빛이 있습니다.

종교의 빛, 도덕의 빛, 철학의 빛,,

그러나 성도의 빛은 주 예수께 받은 영생의 빛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빛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을 망각해서 소금인 것을 잊고 빛을 역할을 잃고 삽니다.

형통한 것, 넓은 길로 가는 것, 뿌리지 않고 얻는 것이 하늘 복인 냥 믿으면서 삽니다.

어느 목사님은 무속인들이 귀신 끗발로도 살만한데 성도가 못사는 것은 하나님 끗발이 미치지 못한 탓이고 신앙에 문

제가 있음으로 설교했습니다.

 

이런 것은 기독교가 아니니 속지 마십시오.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환자는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찾아와 주신 주님으로 나았습니다.

삭개오도 그렇고 사마리아여인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훗날의 그들은 잠잠하지 않았을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게 복음의 능력이고 기독교이며 성도입니다.

 

성도에게는 성도의 문화와 삶이 있습니다.

필리핀의 어느 산족은 손바닥만한 다랑 논들을 일구며 사는데 3모작이기에 먹거리는 걱정 안하고 산답니다.

산에서 살기에 불편하고 커피 한잔을 먹기 위해 1시간 동안 땀 흘리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족속의 얼굴에 미소가 있었는데 추장부인은 남다른 말을 했습니다.

“이게 우리 문화이고 삶이지요, 쉽지는 않지만 웃으면서 해야지요.”

 

성도에게도 성도의 문화와 삶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동행이 있고 비밀이 있을 때 태산을 넘어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긍극으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성도인 것입니다.

 

3) 성장과 성숙

모든 여성이 다 엄마가 아닙니다.

자식이 있을 때 모성이 발동하며 자식을 위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성장하고 성숙해야 빛의 열매를 맺고 사회적 책임도 갖게 됩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

리게 하라

 

우리나라 교회역사를 보면 반백년 전만 해도 성도의 숫자는 적었는데 신앙거인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숫자가 많은데 미숙아가 많습니다.

경쟁적으로 교회성장을 빠르게 이루어 거듭나지 못한 날림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만이라도 소수정예를 이룩해야 합니다.

우리만이라도 진짜 소금의 맛을 낼 수 있어야 하고, 빛을 내야하며 좁은 길을 마다하지 않는 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 제자도가 무엇인가요?

제자들을 부르시고 산교육 시키셨던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리라

주님 따름과 자기 부인이 전제가 되었습니다.

살려고 하는 세상에서 죽음도 감수하려니 어렵고 힘들어 찾는 이가 적은 일입니다.

그러나 내 힘이 아닌 주가 주신 힘으로 마침내 이루는데 주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소금의 열매는 빛이고 빛의 열매는 모든 의로움과 진실함과 거룩함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고 제자들이 그랬고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그랬고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주님의 장성한 분량이 목표가 된다면 어떨까요? 주님처럼 지극히 높임을 받을 줄 믿습니다.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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