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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과 한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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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3-04-23 13:24 조회 21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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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보면 볼수록 교회의 본질이 보이고,, 부흥의 원리와 성도의 질과 격도 보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와 같은 연약한 성도들이 구성원이었기에 힘이 되고 본받을 수 있습니다.

 

1) 나의 믿음

여러분은 독일차를 사시겠나요? 아님 국산차를 사시겠나요?

주변을 보면 비싸도 독일차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질의 문제로서 비싸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산 벤츠를 살까요? 독일산 벤츠를 살까요?

이제는 격의 문제로 독일산을 살 것입니다.

 

믿음이란 이렇듯 삶의 방식이 변화로 드러난 현상입니다.

곧 거룩하고 역동이라는 질이 있고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격이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가난한 이웃과 연합했다는 것은 곧 삼위일체하나님의 연합과 같습니다.

행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으로 하는 이

가 없더라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33절)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마르크스는 이런 이상을 모방했으나 주님이 없어서 국가폭력이 대체하는 몹쓸 이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몸은 교회와 함께 있었으나 마음은 주님이 아닌 물질에 있다가 변화하지 못해 죽어 망했

습니다.

 

믿음에는 예수님 믿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삶이 나옵니다.

마치 어린아이 때와 어른의 때가 전인격적으로 전혀 달라야 하듯이,,

최근 나의 목회자 칼럼인데,, 나의 고백입니다.

“그거 아세요?”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이 보인 후 더 많은 것이 보여 문제가 되었지요.

제일 먼저 나와 내 죄가 보였고요.

하나님 형상 닮은 사람,,사람들이 보였고, 또 나도 남도 놀랐던 예언들이 있었어요.

 

봄이면 꽃피우는 손길도 알고요, 세상 속의 마귀활동도 보여요,

저 휴전선너머 동토의 궁핍도, 여기저기의 슬픔과 아픔도 알만하지요.

(중략)

 

2) 나의 변화

이 변화의 이 핵심은 “큰 은혜를 받아”입니다.

복음적인 충격이고,, 기독교적인 변곡점이 됩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주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충만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이 빚어짐을 거듭남이라 하지만 마음의 변화와 안목의 변화입니다.

이 덕에 제자들은 물론 제자들로부터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과,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또 전해 들었던 다른 사람들도

땅이 아니라 하늘소망이 생겼고, 속물이 아닌 영적으로 되었고, 자신이 중심이 아닌, 부활의 주님이 중심이 되어 함

께 모였으며 함께 살고자 했습니다.

자기 입과 배만을 생각했던 평범한 그들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져 이웃을 생각하고 위하는 삶이 되었으니 마치 어른이

되었으니 어린아이 때의 꿈과 버릇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교회와 성도의 진실된 모습의 평가가 나옵니다.

행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행5: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그리고 현대에서는 부러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행15: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무리더라

 

현대의 문제를 알만 한가요?

지난 주일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한 교회에서의 527억의 사기사건은 놀란 만한 사건입니다.

성도들이 천국 소망이 아니라 땅에 소망을 둔 사건이고, 자본이 주님이 된 사건이며, 선교나 구제가 아닌 투기로서 하

나님이 고액수익을 보장한다는 거짓과 탐욕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당한 교회도 지금은 목사님을 지지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로 나누어져서 치열하게 싸운다니 유감입니다.

그 교회당에 걸린 목사님 반대 대형현수막을 사진으로 보았습니다.

이를 본 주변에서는 어떤 말과 표정들을 지을까요?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비웃더라”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무시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던 자들도 많이 나가니 남녀의 무리더라”

 

예루살렘교회 당시 변화를 이루고 있는 믿음을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작정해서 훼방했던 유대교 제사장들과 무리

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거룩 거룩을 중요시했는지 분리주의라는 말을 들었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룩은 모양만 있었고.. 입으로만 있었을 뿐 삶의 열매는 없었습니다.

주님을 죽이려고 가롯 유다와 공모했었고, 거짓말을 앞세웠고, 안식일이 다가왔다고 자신들은 부정 타지 않겠다면서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랐던 무리였습니다.

이들은 또 사도바울이 회심하자 적개심을 품고 사도바울을 죽이려 자객을 보냈던 자들이었고, 스테반 집사가 성령 충

만하여 전도를 하자 거짓 증인을 앞세워 죽이기도 했었습니다.

자칭 하나님을 믿는다 했지만 가짜였던 것입니다.

언제나 이 진짜가 있는 곳에는 가짜가 있고 엉성한 가짜부터 디테일한 가짜까지 있습니다.

이 차이를 분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질과 격입니다.

이렇듯 성도 개개인의 믿음의 질이 교회의 질이고 격이 기독교의 격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3) 거룩한 성도

예루살렘교회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지도자들부터 성령 충만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과 나타남으로 성도를 살피고 교회를 지도했었습니다.

이 성령 충만을 갈망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기도보다 앞선 일은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회개도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이 성령 충만은 신앙의 원동력으로 나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마치 말이 마차를 끌게 하고 마차가 말을 끄는 형국을 그치게 합니다.

 

부활신앙입니다.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기독교신앙의 설문 조사를 보니 종교혼합주의가 비슷했습니다.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느냐는 질문에 과반이 넘게 그렇다고 했고, 또 내세가 있느냐고 했을 때는 과반이 안 되었고, 예

배출석도 그랬습니다.

결국은 부실한 믿음이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했고 그 이름으로 명령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못하고 대체로 자신을 위하고 있습니다.

조용하거나, 똑똑한 것이나, 과학적이거나 현대적인 것이 좋은 믿음인 냥 착각한데서 온 현상인데 반성경적이기에 부

활과 재림이 없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선행과 기도와 말씀이 함께 했습니다.

특별히 선행은 구제와 선교였습니다.

이 모습이 주님이 원하시는 주님의 몸된 교회였고 머리가 되시는 참교회인 줄 믿어야 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진작부터 교회들이 슬픈 변신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당들이 관광처가 됐었는데 이제는 오피스와 에어비앤 숙소가 되었습니다.

헌금 바쳐 교회당을 세웠던 신앙이 있었건만 지금은 유지도 어려운 것입니다.

인본주의와 배금주의와 세속주의에 변질과 타락이 왔고 맛 잃어버린 소금이 된 탓으로 주님이 버리신 것으로 두렵게

 믿어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주의 교회입니다.

떡볶이로 유명한 골목에는 저마다 원조라는 소개와 자랑으로 넘쳐 납니다.

첫째 집은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집”

둘째 집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는 집”

셋째 집은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집”

넷째 집은 어떨까요? “이 골목에서 제일 맛있는 집”

우리는 작아도 당당하게 그 변화를 증거로 삼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룩한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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