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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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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8-02-04 15:40 조회 593회 댓글 0건

본문

세상을 살거나 더는 주를 믿고 따르다 보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때의 문제들을 살펴보면 What 보다 How가 항상 문제였습니다.

 

유명정치인이 대담프로를 했습니다.

그를 본 딸아이가 “아빠, 정치인들이 개인적으로 보면 저렇게 훌륭한데 왜 정치인들이 욕을 먹을까요?”

어디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What 아닌 How 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 당에 속해야했고 그 당은 정권을 잡아야겠기에 당리당략에 따라 정치인들을 움직이기 때문

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개인의 신앙이나 교회 공동의 신앙 목적은 하나님영광인데,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How가 잘못되어 하나님 영광도

가리고 개인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던지 먹던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위는 주가 주신 What 라면 How 는 무엇인가요? 성령으로 말미암는 온유와 겸손입니다.

 

1) 노래하리라

오늘의 말씀을 이를 교훈합니다.

사5:1~2)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

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영광을 받으시고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What 는 확실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되는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사람들의 How가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5:7)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

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악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이런 일들은 지금껏 계속 반복되고 있기에 본문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주님이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하셨을까요?

이 지혜가 없으니 무지한 것입니다.

무지하니 애쓰고 힘써도 발전도 없고 성과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꿈속에서 뛰어가도 제자리인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5:13~14)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이 떠드는 것

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애썼건만 하나님의 기대가 실망으로 가고 하나님의 기쁨이 오히려 분노로 바뀌게 되어

“노래하리라” 하셨음이 “뿔이 나리라” 된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이고 책임인가요? 그의 백성된 성도의 책임이 있습니다.

 

기도 중에 어느 집사님이 걸려 기도를 끊고 전화를 했습니다.

몹시 당황스런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3년 쯤 통화했기 때문입니다.

전화건 이유를 얘기하면서 “무슨 일이냐?” 했더니 “뭐가요?” 하더니 형편을 말해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부인집사는 교회중심이었고 남편은 사업 중심이었는데 부인이 이런 남편 모르게 애들 교육비로 빚을 냈고 이 형

편을 말하자 남편은 “모르겠다.” 한 것입니다.

부인집사는 홧김에 이혼을 애기했고 그 시댁도 알게 되었답니다.

여기에 부인집사는 문제해결은커녕 신뢰마저 잃었으니 서운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 중에 하나님이 “그들을 품으라.” 하셨기에 그 뜻을 따른다 했습니다.

기도했더니 울음이 터졌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것 같다며 고맙다” 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가요?

잘살아보자는 What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How에 이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인집사가 자기 신앙 좋다며 신앙중심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가정중심으로 했어야 했고,

자기중심이 아니라 남편중심으로 했어야 옳았습니다.

즉 남편 신앙 없다고 타박했을 것이 아니라 남편을 존중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칫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남편이나 시댁을 원망하기 일 수입니다.

 

2) 교회주의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주의 몸인데 교회주의는 나쁩니다.

신앙은 아름다운데 신앙주의는 상처를 줍니다.

우리는 숱한 주의에 빠져 편견을 갖습니다.

자칭 예수주의, 복음주의, 성경주의, 성령주의라면서 자기주의, 목사주의, 우리주의, 계명주의, 은사주의, 신비주의, 이성주

의, 종교주의 등이 됩니다.

여기서 편당이 생겼고 다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경계시키고 초월을 강조했습니다.

빌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

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문대통령이 장차관 워크샾에서 공무원들의 혁신을 주문했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라는 주문이 있었답니다.

일의 성과에 따라 진급에 미치는 파장이 다르니 부처간 칸막이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 협조가 안 되고 성과도 미미하게 되고 국가동력에는 악영향을 줍니다.

그야말로 적폐 중에 적폐인데 국가중심이 아니라 부처중심이나 자기중심이었던 것입니다.

내 교회주의로만 가면 어떻게 되나요? 우리 한국은 복음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회가 내 교단 주의로만 가면 어떻게 되나요? 기독교나 기독교방송은 망해야 했을 것입니다.

정치가 내 당의 중심으로만 가면 어떻게 되나요? 정치는 실종되어야겠지요.

그러므로 교회주의 보다는 성경중심이어야 하고 목사주의가 아니라 주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곧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여기에는 가정도 들어 있고, 불신의 남편도 기를 펼 수 있고, 이웃도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의도 목회시절입니다.

미국인 침례교회는 늘 예배당이 닫혀 있는데 비해 우리들의 교회당은 항시 열심이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 오랫동안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과는, 저들은 뼛속부터 정금 신앙이었다면 우리들은 겉피부만 기독교이고 속으론 불신으로

가득 찼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예배를 많이 한 것과 말씀에 순종한 것 중 무엇이 낫다고 여기시나요?

다르게 질문한다면 부모님을 잘 찾아뵙고 절을 잘하는 것과 말씀을 잘 순종하는 것과 무엇이 나을까요?

 

하나님은 전자였습니다.

사5: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

으시리니

 

3) 화있을진저

그러므로 달라져야 합니다.

사5:18)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 진저

사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

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있을진저

예배당 안에서 많이 봉사하고, 기도를 능란하게 하고, 예배를 빠지지 않고 잘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

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상전은 종들에게 공갈을 그치고, 세금을 떼어먹지 말고, 권세자들에게 순복하고, 가난한 자

들을 불쌍히 여기며 꾸었은즉 갚고, 해를 받아도 축복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의와 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의 기를 드는 일이고 이것이 주의 영광과 전도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는 멈추지 않습니다.

사5:26) 기를 세우려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 올 것이로되

 

지혜는 예측하고 예상하여 사전에 예방합니다.

그러나 미련은 당해도 모릅니다.

 

대다수의 성도들이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라 내 아버지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기의 형편을 아시고 도우신다.” 합니다.

그러나 잊는 것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와 거룩함의 우리하나님이십니다.

감정이 있으시지만 결코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일정한 햇빛과 같습니다.

주를 믿는 신앙은 하나님을 내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맞추는 신앙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돕는 분만이 아니라 그 아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으로 호흡돼야 합니다.

 

뉴스를 보니 굴뚝위의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억압받는 이들이고 상대기업가는 먹튀한 악덕기업가였습니다.

반면 그 노동자들이 나쁘다고 지목한 회사대표에게도 기도자가 있었습니다.

이를 안 나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서로 기도할 테니 하나님도 당황하실 듯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편이 되실까요? 기도 많이 하는 편? 아님 주의 뜻을 이루는 편?

 

결론) 남북전쟁은 연방제 탈퇴와 노예해방이라는 What의 문제로 빚어진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북군이 아주 열세했으나 승리했습니다.

북군이 How 라는 위기에서 잘했으니 What 문제도 풀린 것입니다.

주의 뜻에 맞는 기도를 했다고 역사는 말합니다.

성경에서 답을 찾으십시오. 성령의 인도도 여기에 있습니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어느 교회를 다녀서가 아니고 원수를 돌이켜 달라는 간절한 기도도 아니라 사람의 ‘행위’임을 잊지 마십시오.

나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은 나 할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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