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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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베트남에 갔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부지런했고 매우 진취적이었습니다.
남방국가 민족으로서는 탁월하였기에 프랑스식민지시절 독립도 이루었고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
한 저력을 본 듯했습니다.
반면 필리핀은 그렇지 못했기에 비교되었습니다.
기질 혹은 민족성의 차이일 것입니다.
1) 그 사람
오늘 성경에서는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당시에 저주 받았다는 나병환자였지만 주님을 만나 고침을 받았습니다.
막1:23)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 진지라
얼마나 좋았을까요? 또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기쁨도 고마움도 주체를 못해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주님은 그에게 입단속을 시키셨습니다.
막1:43~44)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즉 전통적이고 율례적인 감사를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달랐습니다.
막1: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옴이라
한마디로 그 사람은 불순종하여 사고를 쳤습니다.
하라는 행동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함으로써 예수님을 난처하게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 사람은 불순종은 했으나 전형적인 불순종과는 다른 스타일인 신앙의 아웃사이더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가요? 모범생인가요? 아웃사이더인가요?
여러분은 모범생을 원하시나요? 아웃사이더를 원하시나요? 나의 기질 따라 다릅니다.
이제는 반대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붙들고 일 하시겠나요?
그러면 또 묻겠습니다.
밭 가는데 얌전한,, 기운은 없지만 순한 암소로 갈겠나요?
아님 기운이 넘치지만 받는 숫소로 갈겠나요?
말세에는 누가 주의 일하는 데는 더 합당할까요?
베드로는 국내용이었습니다.
외국어도 못하고 신분도 유대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겁이 많았습니다.
주님 잡히시던 날 밤에도 주님을 배반했고 나중에도 이방인들과 함께 있다가 유대인들이 오니
안 그런 척 했다가 사도 바울에게 공개적인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주의 은혜에 대한 남다른 감사로 죽음도,, 사람도,, 두려움이 없어서 쇠사슬에 매인 채 아그립바 왕
에게 전도도 했고 죽을 것을 알고도 로마로 올라갔습니다.
2) 잃어버린 양
그 사람이 누구인가요?
실제는 나입니다.
문둥병 같은 내죄에서 구원 받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잠하고 누가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과 생각은 은혜가 고맙고 고마워도 기질은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고,, 무엇보다도 무
지하여 내 중심적인,, 열심은 있으나 서투른 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99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한 마리는 어떤 양인가요?
왜 길을 잃고 목자를 잃었을까요? 딴 길로 가서,,왜 딴 길로 가야 했을까요?
무리와 다른 기질,, 혹은 다른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9마리가 만장일치의 모범생이라면,, 집안에 있던 형이라면,, 그래서 이탈이 없었다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이탈과 불순종으로 길을 잃고 목자를 떠난 아웃사이더인 그 사람이고 곧 탕자인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얼마 후 또 집을 나가고 목자를 떠나 자유나 독립적인 삶을 살 것입니다.
그래서 또 고생을 하고,,또 뉘우치고,,그러나 고생은 하지만 새로운 것을 보았고 넓은 것도 경험하였
기에 온몸으로 주님 사랑을 체득하며 하나님 은혜를 찬양할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 앞에서는 우물 안의 범생이신앙이 아니라 세상 속의 아웃사이더신앙도 하나님이 품으시
며,, 말씀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치가 많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믿노라 하면서 잠잠하면 땅의 돌들이라도 소리치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불순종은 그러나신앙인데 그러므로신앙과는 전혀 다른 질감을 갖고 있습니다.
3) 서예가의 붓
서예가는 글씨에 관한 전문가입니다.
다양한 글씨와 질감을 표현하는데 한 두개의 붓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무젓가락, 풀뿌리, 면봉 등,, 온갖 것을 다 사용하여 질감을 나타냅니다.
이 세상은 한 두가지의 질감의 붓을 선호하여 순종하거나 똑똑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육은 “범생이 되어라” 이고 그 범생은 공부 잘하는데만 맞춰졌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공부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축구선수 박지성이가 강요 받은 대로 공부에 주력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 신앙은 달라야 합니다.
물론 주의 말씀 순종해야 함이 당연 1순위입니다.
그러나 경험치가 없다면 어떨까요?
순종이 순종이 아니듯이 경험치가 있다면 불순종은 불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음을 몸소 실감해야 하는데 “그러나”가 없으면 마디 없는 신앙
이고 질감없는 신앙이 됩니다.
신앙에도 나 다움이 먼저 있고 예수 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순서를 착각 마시길 바랍니다.
결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는 진동 없는 나라이기에 안밖으로부터 자극 받지 않습
니다.
보십시오, 불순종했던 아웃사이더인 신앙으로 예수님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막2: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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