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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네 어머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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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5-08 12:49 조회 27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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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코카콜라와 치킨이고,,

가장 많이 불리워지는 단어는 어머니랍니다.

또 어머니는 누구든지 삶의 처음과 나중을 장식하는 단어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 키워 주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이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

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1) 십자가 곁에는

주님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만백성을 위한 희생 양으로 대신 죽음을 맞이하신 일입니다.

의미적으로는 숭고하고,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이고, 인간적으로는 말 할수 없는 고통이 엄습한 때

인데,, 그 십자가 곁에는 다행스럽게 사랑하는 이들이 연민의 눈길을 보내며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 보았나요?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갖고 생사를 달리하는 이별의 자리이기에 힘들고 슬프기 그지없습

니다.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대감에게는 에피소드가 참 많습니다.

자신이 죽어 가는데 옆의 사람들이 물었답니다.

“대감 어떠신지요?”

대감은 대답했답니다.

“아직은 모르겠어 처음 죽는 일이라서,,”

 

곁의 사람에게는 슬프고,,

죽어가는 자신에게는 숨차며 두려운 그 차가운 죽음시간을 따뜻하게 날린 멋진 말이었습니다.

유머의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김영삼대통령의 국가장례가 있던 날,, 병원 영안실에서 유족들만 먼저 예배를 드릴 때 나도 있었

습니다.

그때의 소감은 “산개가 죽은 사자 보다 낫도다” 였습니다.

이처럼 마지막자리는 언제나 산자들의 자리이기에 고인의 관계 따라 소감과 감정은 판이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에서도 살아 있는 동안에 부모 공경이라는 모범을 또 보이셨습니다.

 

2) 예수님의 모범

예수님의 모범은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했던 일입니다.

왜 요셉에게 부탁했을까요?

성경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부친 요셉은 이미 별세했을 것이고. 동생은 여럿이었지만 아직 어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어머니의 남은 여생을 부탁했기 보다는 부활의 날까지의 안전을 부탁했다고 봅니

다.

당시는 로마의 공권력과 유대교의 핍박이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미쳤기 때문인데,

효자 예수님은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믿는 제자에게 부탁했고, 어머니 마리아 역시 아들

의 말을 따라 준것이니 하나님 믿는 신앙이 신뢰를 이룬 것입니다.

요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

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우리들의 신앙은 거창한데 있지 않습니다.

생활 속에서 특별히 인간관계 속에서 있습니다.

“ 하나님을 공경하니 부모를 공경하고. 나를 사랑하니 이웃을 사랑하고, 내가 대접받기를 바라듯

이 남을 먼저 대접하고,,” 단순합니다.

맞습니다.

이처럼 단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니 정직은 기본인 체 성실해야 하고,

내가 주님이 주신 부활의 생명을 받아 천국의 소망이 있다면 삶의 인내를 이루어야 하고,

내가 받은 구원이 사랑의하나님 선물이라고 고백하면 나도 그 사랑을 이루는데 죄와 허물을 덮어

주는 용서가 있는,, 이 모든 일이 계명이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성품으로서 내 안에서 나타

나고 더 지향하거나 목마름이 있을 때 거듭남과 성숙이 있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성품을 잃어버린 사람으로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품

을 회복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어 하나님과 화목하여 평화을 이루고, 이웃과 환경과 화해하여 평화를 이루고,

나와도 평화를 이루어, 자유와 평강을 누리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자본주의 신앙이 부자되기로 바꾸었고,, 개인주인 신앙이 나만 잘되는 신앙

으로 치부하게 했습니다.

아,, 또 있습니다

성공주의 신앙으로 모든 것은 다 커야 되는, 이러는 과정에 절실함이 없으니 감사역시 없어서,,감

격도 없이 되었습니다.

 

3) 감사신앙

요즘 황성주목사 신앙을 읽고 있습니다.

그가 의사이고, 목사이고, 저술가이고, 기업의 대표이기도 한데 이처럼 다양한 일들은 주 안에서

주 믿는 일로 시작에서 주 선교하는 일이 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일찍이 주를 만났기에 삶의 목적과 목표가 분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번에는 어머니에 대한 고백이 있었습니다.

편찮으신 어머니가 몇차례 자녀들을 불러 모을 만큼 위독했는데,, 자신은 하와이로 공부하러 가기

에 난감했답니다.

그런 어머니께 10가지 감사제목의 감사편지를 써서 붙여놓고 출국했는데,, 얼마 후 이 편지를 본

어머니가 완전히 건강이 회복되어서 마침내 기품까지 회복된 기적이 왔답니다.

 

이 일로 감사의 충격적인 임상효과는 물론 어머니로 인한 절대감사와 모든 만남의 감사하는 이중

감사의 날개를 달게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신앙은 이처럼 감사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시75: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오늘 군교회가 대면예배로 계획했었으나 확진자 증가로 아침에 급하게 비대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오전에 준비한 빵과 음료를 급하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용사가 “목사님, 빵 잘 먹겠습니다” 하며 인사를 카톡으로 해왔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기에 감동이었습니다.

캡쳐해서 대대장에게 보냈고 중대의 선임에게 챙겨주라 했습니다.

잠시 후 대대장은 “요즘 젊은 친구들이 받는 것만 알고 감사를 못해 가르친다” 했습니다.

동물도 가르치면 낫습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요?

신앙도, 예절도, 감사도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특히 감사는 신앙과 예절의 합침이기에 꼭 있어야 하고, 이 감사가 주변에도 미쳐야 하며, 내 얼

굴은 물론 부모형제 간에도 나타나야 합니다.

 

결론) 5월은 가정의 달이기에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가정과 관계를 어떻게 가꿀까요? 꽃도 좋지만 감사로,, 가꾸어야 합니다.

특히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에게 어떻게 고백할까요?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선물 보다는 마음으로부터의 감사가 앞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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