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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오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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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5-15 12:01 조회 29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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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르지만 또 같기도 하여 같은 것들을 좋아하고 싫어하기도 하여 유행을 낳고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에 세계는 러시아를 비토하고 있지만 반면 러시아를 지지하는 소수의 국가도 있는데 체제가

같아서 그렇습니다.

 

1) 심히 기쁜 일

사도요한은 “심히 기쁘다”고 했습니다.

무엇일까요?

가이오 라는 성도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입니다.

그런데 ‘심히 기쁜 것’ 은 부모나 선생의 마음으로 와 닿은 경우입니다.

뉴스에서도 좋은 소식을 들으면 괜히 좋습니다.

그러나 심히 좋은 경우는 내 자식이 뉴스에서 좋게 소개되었다면,, 내 제자가 수석으로 졸업하거나 취직했다면 심히 기쁠 것입

니다.

이런 일이 생애 얼마나 있을까요?

주님께 늘 기도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님,,손녀가 울면 춤을 추고 퇴원하면 잔치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희망하지만 기쁨의 비결을 모릅니다.

직접적인 기쁨은 얕은 기쁨입니다.

옛컨대 먹고 싶은 것을 먹었더니 기뻤다.

놀지 않고 공부했더니 성적이 올라서 기뻤다.

이 기쁨은 곧 스러질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기쁨은,, 심히 기뻐할 기쁨으로써 노력과 시간이 들이는데서 옵니다.

자식이 잘 커주고 잘살아 주니 보기만 해도 심히 기쁜 일처럼,,

요3서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그러므로 가이오는 사도요한에게 복음을 듣고 신앙지도를 오랫동안 받았을 것입니다.

 

지도했던 탈북민 중에서 목사가 된 인물이 있습니다.

북한을 향한 라디오방송도 했고, 큰 교회에서 탈북민 지도 사역도 했고,,지금은 지방에 살며 자칭 ‘지극히 작은 교회를’ 목회하

며 종종 산나물도 보내오곤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밝혀진 바로는 김익두목사님의 외손자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생김이 닮았고, 성품에는 익살기가 있고, 의리와 불의를 싫어하고,, 북한의 거짓 선동과 감시 체제를 마귀사상이라

고 아주 거부하는 장본인입니다.

그러한 그가 북한에서의 삶은 그 체제에서 살기위한 도둑의 삶이었다면 이곳에서의 삶은 성자가 된 것이기에 조선일보에 소개

했었고 지난 주간에는 국민일보에 소개했습니다.

이는 나의 기쁨이고 자랑이어서 입니다.

또 연변에만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오랫동안 왕래하며 수고한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에 기쁨을 느끼며 심히 느끼나요?

 

2) 가이오

사도요한이 편지를 보낸 가이오는 기쁨이라는 뜻으로 남자로는 흔한 이름입니다.

성경의 가이오는 사도바울과 관계가 있지만 그 사람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그가 나그네를 잘 대접했다는 내용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은 대접 받기를 바라지 대접 잘 하기가 쉽지 않아서 주님도 “먼저 대접하라” 하셨으니 가이오가 나그네를 잘 섬긴 신앙은

인간적 이상입니다.

 

기독신앙은 교회를 다니는 신앙이 아니라 주 믿는 신앙이고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성령을 받으면 거룩해

지는 만큼,,그 거룩에서 사랑의 사람, 친절한 사람,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신앙입니다.

 

이 변화가 크면 큰 만큼 강력한 효과를 냅니다.

사도바울이 그랬기에 핍박자가 전도자가 되어 주변을 놀라게 했고 복음의 능력이 강했습니다.

또 변화가 길면 사랑의 폭도 넓어 혈통을 초월하는 박애가 되는데 오지 선교사들이 그렇습니다.

 

가이오는 신분을 초월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여기에 좋은 소문을 얻었는데 자기 PR시대가 아닌 시대에서,, 소식이 늦게 전달되는 시대에서 “나그네를 잘 대접한다.”는 소문

을 들었으니 알만 합니다.

 

꽃은 꽃마다 향기가 있듯이 사람은 저마다 소문을 얻습니다.

지각대장, 허풍이, 옷 잘 입는 사람, 기도 잘하는 사람, 기도 많이 하는 사람, 인색한 사람, 화 잘 내는 사람, 평화의 사람,,

가이오는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사람이었으니 좋은 신앙인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도 어떤 류의 교우들로 구성되었느냐 따라 소문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릅니다.

 

어느 후배목사는 현재의 교회에서 자꾸 떠나려고 하는데 담임목사님이 놔주질 않는다며 걱정했습니다.

앞선 교회는 사랑이 많아서 떠나 올 때 교인들이 로비에서 울어주었는데, 지금 교회에선 부임 몇 개월 만에 목사임직을 받았는

데도 딱 한 사람만이 “목사님,,목사임직을 축하합니다.” 하며 인사 했다니 앞선 교회가 생각난 것입니다.

즉 온기교회와 냉기교회의 차이로써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체온이 1도만 높아도 면역력이 생겨서 건강해 진답니다.

모든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시스템 보다 사랑의 온도에 유념해야 합니다.

 

세상은 온기와 냉기로 확연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인정도 없이 잔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 믿는 곳에는 온기로 살맛나고 가축들도 대우가 다릅니다.

잠12:10)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신앙은 사랑을,, 사랑은 성숙해져서 진리 안에서 섬기고 나눔이 많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고아들을 돌보는 단체나 개인을 소개해 주세요.” 하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탈북민 고아들을 돌보는 선교사님을 소개해 주었더니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말라”고 또 부탁해 왔습니다.

 

3) 가이오 신앙

가이오 신앙은 이름 값 하는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3서5~6)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이런 신앙은 힘든 삶이고 외로운 신앙이 됩니다.

사람의 시선과 말을 의식하지 않고 “교회 앞에서” 와 “하나님께 합당하게” 라는 불꽃같은 눈을 의식해서입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석청을 먹고 낙타털옷을 입고 생활하다 헤롯에게 옳은 소리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죽은 삶이고,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갈멜산에서 기도하며 하나님 뜻을 구한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옳고 주님 가신 길이라면 우리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내의지로 가는 듯해도 실제는 성령님께서 붙드시며 동행하시기에 하나님을 실감나게 동행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진수는 많은 사람을 의식하기 보다는 한 분 하나님이어야 언제나 옳게 됩니다.

극동방송을 퇴직한 여성아나운서는 집을 팔아 고양시로 이사하면서 전파선교사 헌금으로 1억원을 드렸습니다.

봉급자생활로써 큰 헌금이었는데 이유가 간단했습니다.

그동안 남에게 헌금을 드려라 했기에 이제는 자신도 드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선된 신앙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보이지 않는 담이 세워져 기도든 예배든 막혀 상달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먹는 데는 나부터이고,, 책임지는 데는 나는 빼고 라서 입니다.

기독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영광은 주님께 드리고 멸시천대는 내가 받습니다.

 

결론) 모든 신앙은 신을 찾는 일이지만 기독신앙은 이미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하고 따르는 일입니다,.

주님을 어떻게 영접했느냐가 어떻게 따르냐로 귀결됩니다.

사람에 대해서,, 가축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죽음에 대해서,,주님을 닮아야 좋고 확실합니다.

신앙생활은 그 훈련이고 반복인 만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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