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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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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2-07-17 14:34 조회 24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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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왕과 같이 기름부음을 받은 직분자입니다.

이 기름부음 받은 직을 그리스도 라 하는데,, 훗날 주님이 이 3직을 이루셨습니다.

이 존귀는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히5: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래서 이 존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역설적으로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고, 사도 바울은 목 베임을 받

아야 했습니다.

 

1) 존귀

존귀가 어디에 있나요? 삶과 죽음에 분명 있습니다.

존귀한 삶은 무엇일까요? 많은 재산을 있거나 자식이 많거나 책이나 업적을 남긴 것인가요?

존귀한 죽음은 편안히 죽는 죽음일까요?

 

그렇다면 아베 전 일본총리의 죽음은 존귀한 죽음일까요?

그가 생전에 큰일을 많이 하고, 그의 죽음에 세계정상들이 조문을 했다 해도 그처럼 죽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존귀는 죽음만이 아니라 훌륭한 삶의 궤적이 따라주어야 합니다.

안중근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나 전쟁이나 민주화를 위한 인물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을 의사, 열사, 전사, 투사라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존귀한 직에 있었으나 자신만 치부하여 말년에 도망치고 죽을 때도, 죽음 후에도 욕먹은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최근 스리랑카 대통령이 그랬기에 사직서는 E-메일로 넣고 몰티브로 도망갔습니다.

모든 존귀를 자신에게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참 좋은 교육은 존귀를,,즉 출세나 성공을 이루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긍휼을 이루는 존귀한 사람을 만

드는 교육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부모님들이 참교육자셨습니다.

“형제간에 싸우지 말아라” “이웃들과 나누어 먹으라” 며 우애와 협동을 가르치신 밥상머리교육이었는데 현대는 그렇지 않고

있습니다.

“남 생각하지 마라” “꼭 성공하라” “어떻게든 이겨라” 얼마나 다른가요?

산업화가 되는 구조 속에서 뒤쳐지면 낙오되고 낙오되면 일어서기 어려우니,,

존귀한 사람만 강조한 나머지 존귀한 삶은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현대 교육의 비극이고 사회적 불행의 서곡을 만든 것입니다.

 

2) 사무엘이 죽으매

“삼상25:1) 사무엘에 죽으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이들은 동원한 사람들이 아니고 훌륭한 지도자를 잃었으니 슬퍼서 운 것입니다.

 

우리가 꼭 고쳐야 할 속담이 있습니다.

“대감이 죽으면 문상 안 가도 대감 집 개가 죽으면 문상 간다.”

이 속담은 훌륭한 대감이 없다는 말도 되지만 문상조차도 상대적인 바람을 갖고 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도 ‘외교문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대통령 조차 일본대사관에 아베문상을 한 이유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이 존귀하려면 삶이 존귀해야 합니다.

명품을 걸치고 호의호식이 아닌 삶이여야 합니다,

성경은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 보다 낫도다.” 했습니다.

학자나 예술가,,정치가, 어머니,,아버지, 다 존귀한 이름이기에 먹칠하지 말고 빛내야 합니다.

잘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무엘은 부자나 권력자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사람’이었기에 아름다운 이름,, 존귀한 이름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사무엘은 여기에 만족했고 여기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기에 훗날 그가 죽자 울어주는 사람들이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무엘에 대해서 모를 것 같았는데 알고 있었다는 증거 아닌가요?

우리는 알아주길 바라서 행동이 커지고 내 목소리가 잘 듣게 하려고 소리를 크게 냅니다.

그러나 개들도 냄새와 눈치로 알고 애들도 다 압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요?

그러므로 존귀한 사람의 절대적 요소는 사람 보다 하나님을 인식하며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기독 신앙은 이를 배우는 일이고 믿음은 이를 구체화 하는 삶입니다.

 

사울 왕과 다윗은 사무엘과 동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그 역시 왕이었기에 사무엘선지자처럼 존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삶은 존귀하지 못했습니다.

믿음 보다 잔인이 있어서 이방민족을 잔인에게 죽였고, 시기가 있어 다윗을 질투했습니다.

그리고 점치는 사람을 은밀히 찾았습니다.

결국 그는 죽음도 비참했던 것입니다.

시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다윗은 비천한 집안의 막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지혜가 넘쳤습니다.

시2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마침내 존귀한 믿음으로 존귀한 삶과 죽음과 이름을 지금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3) 주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님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에서 가장 존귀한 신분으로 변화된 대표적인 분이십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나사렛산동네에서 가난하게 사셨고, 제자에게 팔려 십자가에서 처형되셨고, 남의 묘에 묻혀야 하셨습

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으로써 죽기까지 충성하신 그 아들을 지극히 높여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부활시키셨고, 승천시키셨으며,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으며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과거의 출생과 신분이 비천해도 주 앞에서는 상관없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안에서 천사도 흠모하는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이런 일에 보증으로 계시고 보혜사로써 내주하시며 동행하십니다.

존귀한 사람은 어떤가요?

 

*말이 다릅니다.

우리말도 지역 따라 다르고 영어도 사용 국가마다 다르듯이 존귀한 말이 있습니다.

인자한 말과 감사의 말입니다.

국민일보 토요면에는 전국교회 예배안내면이 있습니다.

예배시간과 설교 본문과 제목이 실리는데 이제는 감사면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귀뜸했었습니다,

또 찬양과 주님 증거인 전도인데 여기서 성숙과 미숙을 증명 받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삶의 모양이 다릅니다.

온유와 겸손이고 진실입니다.

고인이신,,평양에서 피난 오셨던 장로회 신학대의 주선애 교수는 돌아가기 전까지 고아와 탈북민의 어머니로 불렸고,

은퇴여교역자를 위한 주택들도 지었는데 이 사업이 마지막 사업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교육학 교수답게 사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녀는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고 25세에 남편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을 생활화 했던 것입니다. 


결론) 믿음도 천박함이 있고 존귀함이 있습니다.

자신의 입과 배를 위함 보다 하나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존귀한 믿음만이 존귀한 사람을 만들어 갈수록 존귀하게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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