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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있는 성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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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10-10 10:06 조회 36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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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부분 소개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

도 너의 꽃이 되고 싶다.“

 

1) 아무개

룻기를 보면 이름은 있으나 “아무개야” 로 불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유력한 사람이었지만 당장의 이익을 따라 문중의 가난한 여성가족을 외면했던 사람입니다.

 

또 예수님이 비유로 부자와 거지나사로를 말씀하셨을 때 거지가 나사로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진 반면 부자는 “얘”로 불리

었다고 하셨습니다.

실제 부자에게 얼마나 많은 이름이 있었을까요?

큰 이름, 좋은 이름, 높은 이름, 덕망 있는 이름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거지는 그냥 거지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이후에 다른 평가를 받은 것은 생전에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달라서였습니다.

주님의 교훈은 사람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이 다른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보고 재물을 보고 판단합니다만 하나님은 행위를 보십니다.

물론 그 행위의 결정은 믿음인데,, 행위를 만들어 냅니다.

 

개인적으론 “먹사” 와 “개독교”라는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이는 “너희 속에 예수님이 없다”는 비난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번지르하게 잘해도 삶을 보니 예수와 동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냥 싫어서 비하하는 것이 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주관이 있습니다.

누구는 전라도를,, 경상도를 아주 싫어하고 또는 러시아동포는 괜찮은데 조선족을 누구는 일본인을,,또 지지하는 정당도

다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평가로 좋고 싫은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좋고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금번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그 게임에서도 성도와 목사가 그릇된 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이는 연출자의 감정일 것이며 의도된 기획일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그냥 싫어했기에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이유는 못생겼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만한 것이 없어서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니,, 신성모독 했다면서 억지로 죽인 것입니다.

비슷하게는 세계2차대전 때 나찌는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싫어해서 학살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단한 이들과 유대인들을 처단한 나찌의 공통된 점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하나님의백성이라면 하나님이 구원하시지 않겠냐? 는 조소였습니다.

이런 일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중권세 잡은 자는 마귀이고 언제나 변장의 귀재이기에 이념과 문화와 종교에 숨어 활동하는 것입니

다.

 

지금 중국공산당이 교회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큰 교회를 하더니 외국인교회를 하더니 지금은 작은 가정교회까지,, 보통 핍박이 아닙니다.

배후는 누군가요?

 

2) 이름 값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는 우리들에게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다’ 는 뜻입니다.

나에게 맞는 이름으로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나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이름을 보십시오.

벧전2:9) 그러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하려 함이라

히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예수님의 신부, 편지, 향기,.,등

성도는 이처럼 존귀한 자들이기에 자존감이 높아야 합니다.

시16: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개들을 보면 자존감이 높은 개들이 있습니다.

주인사랑을 많이 받는 개들인데 걸음이 당당하고 표정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때야 하나요?

이름에 합당한 빛깔과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생각부터 말과 표정과 행동과 마침내 삶이 달라야 합니다.

흔히 개살구,,개망신,,개떡,,이처럼 개가 들어가는 것은 본래는 가짜라는 뜻입니다.

그 반대는,,“진”인데 성도된 우리에게는 “개”가 없어지고 대신 “찐”이 나와 찐성도, 찐집사. 찐교회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곧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는 일입니다.

 

믿으면 믿을수록, 성경을 보면 볼수록, 기독신앙의 확실함은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는 거룩함을, 주변의 이웃들에게는 인

자함을, 자신에게는 맑고도 푸른 청결함을 이루는 일입니다.

주님과 옛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하며 마침내 그렇게 됩니다.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이 그처럼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암닭은 알 낳는 일이,,숫닭은 새벽에 “꼬끼오”하며 새벽을 깨우는 일이 고유의 일입니다.

이 닭들에게는 숙명처럼 주어진 일이라서 자연스럽고 비교적 쉬운 것처럼 성도가 그렇습니다,.

새로 빚어졌기에 새 성품과 새 패턴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시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를 나의 오른 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내가 하나님의 꽃이 되었다면 나의 꽃은 하나님이셔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이 꽃이 되시길 바라십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

도 너의 꽃이 되고 싶다.“

 

이런 성도에게는 다른 신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시16: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 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

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이는 배우거나 훈련되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생명의 속성인 성향으로 된 일입니다.

만약 배움과 훈련으로 이처럼 되었다면 속성과는 다른 모습이기에 위선이 됩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몰랐기에 예배를 거부했는데 이젠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 찾거나 찬송도 배워서 하면 어떨까요?

전에는 이웃에 대해서 무심했는데 이제는 관심이 간다면 어떨까요?

역시 앞선자들의 모습을 본받아서 해야 좋습니다.

 

3) 안전지대

내가 하나님의 꽃이고 나의 꽃이 하나님이실 때 나의 신앙은 꽃밭이 될 것입니다.

시16: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미래도 꽃밭이 됩니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글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위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

이 있나이다

 

이쯤되면 평생이 어떨까요? 만사형통인가요? 그 뜻이 아닙니다.

삶의 우연곡절은 다 있습니다.

그럼에도 안전하며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평강이 생수처럼 차올라 세상을 이기며 견딜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후4:8~11)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

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무료하지 않고 역동적이며 우울 보다는 감사와 감동이 연속입니다.

동네 아이스크림 집에는 복권도 파는데 최근 연금복권 당첨을 찾아가라는 공지가 있었습니다.

월 500만원씩 10년짜리인데 누군가는 횡재한 것인데 어느 당첨자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부러운 횡재여도 성도의 삶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되레 구차한 중에도 이웃에게 인자를 베풀었더니 상대가 감동 받아 더 큰 것으로 보답하는 것, 기도해달라며 머리 내미는

것, 다 주 동행을 실감하는 삶으로 주의 꽃이 된 향기인 것입니다.

 

결론) 내가 누굴 사랑하고 내가 사랑한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일은 기적입니다.

내가 누굴 사랑하는 일은 내 마음이기에 가능해도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이와는 다른 무조건적이고 먼저 찾아주신 사랑입니다.

기독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아주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꽃으로 여겼으니 나도 하나님을 나의 꽃으로 여긴다면 큰 기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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